치열한 경쟁 속에 씨티 보수적 가격제시로 참여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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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일가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서 대규모 블록세일을 연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블록세일의 강자로 손꼽히는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이하 씨티증권)이 해당 거래에 참여하지 못한 점이 화제가 되고 있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지난달 24일 삼성전자 보통주 1994만1860주(지분율 0.33%)를 시간외매매(블록딜)로 매각 처분했다. 해당 거래는 해외증권사로는 JP모건과 골드만삭스가 맡았다. 앞서 지난달 22일에 거래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삼성SDS 주식을 처분(약 1900억원)은 모건스탠리가 담당했다. 지난달 12월 이서현 이사장이 삼성생명 주식을 약 2200억원어치 매각한 바 있는데 이 거래는 JP모건이 맡았다. 이 거래들에서는 국내는 KB증권이 도맡아 했다. 해당 거래들은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상속세 마련을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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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건의 거래에서 씨티는 이름을 몰리지 못했다. 씨티증권은 블록세일의 강자로 꼽힐 정도로 그간 주요 블록세일 거래를 도맡아 했다. 씨티증권은 삼성의 주요 딜마다 참여하면서 삼성과의 끈끈한 관계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2018년 삼성그룹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서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대규모 블록딜이 단행된 바 있는데 당시 삼성전기, 삼성화재,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블록세일을 씨티증권이 담당했다. 이외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그리고 올해 이뤄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젠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인수 등 삼성그룹의 굵직한 딜에는 씨티증권이 함께했다.
하지만 정작 삼성 일가의 상속과 관련된 주요 거래로 꼽히는 이번 블록딜 거래에 씨티증권이 참여하지 못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계 증권사에선 블록세일 거래는 해당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가늠하는 하나의 지표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상장 주식과 관련된 거래이다 보니 보안이 중요하고,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즉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우선적으로 선정된다는 뜻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블록세일은 워낙 보안이 중요해서 해당 거래를 인지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본사에서 난리를 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삼성 일가의 개인적인 거래라는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즉, 회사와의 관계뿐 아니라 삼성 일가와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삼성 일가 블록세일을 따내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다. 경쟁입찰 방식을 통해서 주관사 선정이 진행됐는데, 통상의 블록세일과 달리 주가에 일정 부분 프리미엄을 붙인 가격에 매각을 성사시키겠다는 제안이 이어지기도 했다. 실제 이서현 이사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시가에 4.5% 프리미엄이 붙여 매각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국내의 KB증권은 KB국민은행이 신탁사라서 딜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나머지 외국계 IB들에겐 자칫 놓쳤으면 본사의 ‘불호령’이 떨어질 사안이었다.
거래를 놓친 씨티증권에선 어쩔 수 없었다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블록딜 주관을 많이 하는 씨티증권으로선 상대적으로 타 IB 대비 보수적으로 이번 거래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블록딜 주관사는 공개 입찰 방식으로 선정을 진행했다. 과거 사례처럼 특정 거래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낙점받지 못했다고 본사에서 불호령을 내릴 사안도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삼성 일가 딜에 참여하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경쟁사인 골드만삭스는 홍 전 관장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에 이름을 올리면서 체면치레는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작년 9월 조 단위로 진행된 우정사업본부의 카카오뱅크 블록딜 거래에 참여한 것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삼성에서 예상 디스카운트를 제출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프리미엄을 붙여서 제출한 증권사들이 있었다”라며 “그만큼 이번 거래의 경쟁이 치열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