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건설사 보유 현금만 14兆…놀리느니 투자하자 분위기
신기술 확보·이익 실현 기대…시장 내 존재감 키울지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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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의 신사업으로 벤처 투자가 떠오르고 있다. 종전에는 중견 건설사를 중심으로 벤처투자가 이뤄졌는데 이제는 대형 건설사들도 속속 시장에 진입하는 모양새다. 스타트업에 직접 지분을 투자하거나 펀드 출자자(LP)로 나서고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설립까지 투자 형태도 다양화되고 있다. 건설 신기술을 얻을 수 있고 미래 먹거리 발굴을 통해 투자 이익도 실현할 수 있어서다.
GS건설은 올해 초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설립 계획을 밝혔다. 이종훈 전 롯데벤처스 상무를 대표로 내정하고 조직 구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룹 지주사 ㈜GS 직속 CVC인 GS벤처스와는 별도로 건설 산업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법인이 설립된 후 구체적인 전략 방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호반건설은 투자회사를 꾸려 벤처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6년 신기술사업금융사 코너스톤투자파트너스, 2019년 액셀러레이터 플랜에이치벤처스를 설립했다. 그룹의 현금동원력을 등에 업은 코너스톤투자파트너스는 산업에 구애받지 않되 단기간에 투자회수가 가능한 기업 위주로 재무적 투자를 하고 있다. 플랜에이치벤처스는 스타트업 및 주력 사업과 관련된 전략적 투자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스마트팜 기업 쎄슬프라이머스, 안면인식 솔루션 씨브이티, 아파트 매매 정보 제공 서비스 지인플러스 등에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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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의 회사들이 기술 기업으로 거듭나려 고심하는데 이는 건설사라고 다르지 않다. 건설사들은 인공지능(AI), 드론 등 신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건설은 호반건설과 함께 AI 건축자동설계기업 텐일레븐의 지분(6%)을 인수했다. GS건설, 대우건설도 드론 제조 스타트업에 지분을 투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으로 건설 현장의 안전과 생산성을 담보하는 첨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금성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그룹의 사업 다각화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고 있다"며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회사 안에 연구조직을 만들지 않아도 산업 트렌드를 파악하고 신기술을 먼저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 중견 건설사들은 대기업보다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우미건설은 2019년부터 AI 부동산 스타트업 데이터노우즈, 부동산 핀테크기업 카사코리아, 부동산 P2P 금융 플랫폼 테라핀테크 등 다양한 기업에 투자했다.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공학을 전공해 벤처 창업에 뜻이 있던 이석준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대형 건설사는 대형 건설사와 달리 내부에 기술 연구조직이 없는 경우가 있다”며 “건설 업황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부동산 전 과정에서 다양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져 스타트업이나 VC에 투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 회사들의 주머니 사정도 좋아 앞으로 스타트업 투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건설사들이 보유한 현금만 14조원에 이른다. 국내는 부동산 정책, 해외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기존 산업의 정체가 지속되자, 사업을 다각화할 필요도 늘고 있다.
한 증권사 건설 담당 연구원은 “건설 산업도 사이클(주기)를 타기 때문에 올해 투자를 해도 이듬해에 이익을 볼지 불확실하다”며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기존 건설산업에 투자하기보다는 보유현금을 늘리거나 이를 활용한 스타트업 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건설사의 신산업, 벤처 투자가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끌어올릴 핵심 카드가 될 것인지는 좀 더 살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벤처투자 조직이든 CVC든 결국 기업의 일부고 결국 성과를 내야 존속할 수 있다. 경영진이나 오너가 장기적 안목을 갖고 지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무리한 행보를 보일 수도 있다. 건설사가 투자 조직에 할당하는 금액이 민간 시장과 경쟁할 수준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투자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