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ㆍ컬리ㆍ쏘카ㆍ원스토어 등 '적자' 회사들 연이어 IPO
롤모델은 '쿠팡'…비싼 몸값 근거는 "당장 이익 못내도 매출 크다"
애매한 흑자는 되레 걸림돌?…차라리 덩치 큰 적자가 유리할 수도
목표는 결국 '대마불사'…상장은 규모 더 키우기 위한 판돈 모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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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토스ㆍ컬리ㆍ쏘카ㆍ원스토어 등이 줄줄이 상장(IPO) 진행 중이다. 모두 시가총액 조 단위를 훌쩍 넘기는 대어(大魚)들이고, 하나같이 이익 한 푼 못내는 적자 회사들이다.
이들의 '누적 적자'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상장을 앞둔 터라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다시 고민거리가 됐다. 토스(비바리퍼블리카)는 작년 매출 7808억에 영업적자 1796억원으로 1년 만에 적자가 1000억원 넘게 늘었다. 컬리는 연간 2138억원으로 전년대비 적자가 두 배 증가했다. 쏘카는 200억원대 영업적자(연결기준) 중이고, 원스토어는 회사 설립 이후로 단 한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상장 준비회사는 아니지만 코로나 특수를 누린 배달의민족도 한 해 배달료만 5700억을 쓰면서 3년 만에 적자로 전환, 화제가 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매출이 급증했는데, 그만큼 적자도 늘어났다"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 회사는 눈 앞의 적자만 보지 말고 자신들의 매출 성장세에 주목해달라고 요청한다. "1년 만에 매출이 무려 2배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들의 시장 점유율 이 커지고 대체 불가능성이 늘어났다는 의미인데 그게 매력 포인트라 주장한다. 이를 수치화하려고 PERㆍEV/EBITDA 등 과거 잣대는 놔두고 PSR(매출액 대비 주가)ㆍ GMV(총판매액) 배수를 내세운다.
전통적인 잣대로 따지면 "인건비나 판관비ㆍ물류비 일절 아끼지 않고, 매년 적자를 내도 된다면 누가 매출을 못 늘리나"라는 비판이 나올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 '적자 유니콘ㆍ데카콘'이 자신들의 성장세를 주목해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앞에 쿠팡과 아마존(Amazon)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 결국 아마존의 성공 방정식은 '지배와 독점'으로 요약된다. 아마존이 일단 진입한 시장에서는 절대적으로 낮은 가격과 편리한 서비스를 무기로 경쟁사들을 과감히 배척한다. 경쟁사 서비스도 모방하고, 저가판매로 인한 대규모 적자도 감내한다. 이 험난한 과정을 거쳐 일단 시장 지배적인 사업자가 되면 그때부터 독점력을 활용, 물품 혹은 서비스 공급자들을 압박해 단가를 낮추고 이익을 유도해낸다. 그간 쌓인 적자는 독점력을 확보한 이후부터 빠르게 상쇄되고, 이때부터 다른 경쟁사의 진입은 불가능해진다. 여기에 5년 전 홀푸드(Whole Food)부터 최근 MGM 인수까지 무차별 M&A로 지배 영역과 카테고리를 넓혀간다. 아마존 사례는 플랫폼 기업이 '제국'으로 성장했을때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지를 보여줬다.
쿠팡은 이를 변형한 성공 사례다. 아마존의 AWS처럼 막강한 서비스를 내놓거나 글로벌한 시장지배적 독점 사업자로 군림한 것도 아니고, 영역도 국내에만 국한된 플랫폼기업이었다. 그러나 작년 3월 나스닥에 상장, 시가총액 100조원의 숫자를 보여주며 또 다른 모델을 보여줬다. 절대로 쉽지 않을 거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의 쿠팡 초기 투자금 회수가 상장 성공으로 일반 투자자들을 통해 가능해졌다.
그러니 적자 유니콘 기업들에게 있어 아마존은 '메시아'고, 쿠팡은 '선지자' 같은 롤모델이다. 자연히 아무리 적자 폭이 크더라도 "쿠팡을 보라"며 적자라도 얼마든지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1700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는 토스에 대해서는 올해 프리-IPO에서 많게는 20조원에 달하는 기업가치가 거론된다. 연간 영업이익 6조원을 낸 KB금융지주 시가총액이 24조원으로 비교하면 황당무계한 숫자로 보이지만, 현재 카카오뱅크 시총 21조원임을 감안하면 마냥 무리한 수치라 비난하기도 어렵다. 그만큼 투자자와 시장이 높게 밸류를 쳐주면 그만이다. 적자 유니콘과는 궤를 달리하지만 역시 상장이 한창인 SK쉴더스는 업계 1위 에스원 시가총액이 2.6조원인데, 예상 시총을 3.5조원까지 잡아놨다. 한해 5000억원대 이익을 내는 신세계 시총이 2.5조원인데 만성적자 컬리에 4조~6조원의 시총이 거론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지난 수년간 벌어진 글로벌 유동성 파티, 그리고 이것이 만든 테크산업과 플랫폼 기업에 대한 따뜻한(?) 시선들 때문이다.
기존 대기업들이 전통 산업에만 치중해 있을때, 플랫폼 기업들은 '혁신'을 일궈냈고 그간 없었던 서비스를 인류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혁신은 우리 일상을 바꾸며 없어서는 안될 서비스를 제공했고, 소비자들이 이에 대한 비용 지불을 당연히 여기기 시작했다. 이들의 성장세에 따라 신산업의 국내총생산(GDP)기여도가 자동차ㆍ조선ㆍ화학 같은 전통 산업만큼이나 높아질 수 있다.
그러니 당장은 황당해보이는 적자 유니콘의 고밸류에이션 요구는 결국은 '변화하게 될 미래'를 확신하고 일궈내는 이들의 자본 유치 노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마치 1970년대 한국 조선업 성공을 확신한 고(故) 정주영 회장이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을 보여주며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에서 조선소 건립용 차관을 따낸 것처럼.
이런 차원에서는 적자 유니콘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상을 지배할만한 필수불가결한 재화ㆍ서비스'가 됐느냐 여부다. 컬리와 쏘카와 토스의 서비스가 마치 대중교통이나 자동차가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우리 생활을 지배했느냐에 자사의 미래 생존여부가 직결돼 있다.
그렇기에 이들이 강조해야 하는 것은 "1년, 2년 사이에 매출액과 판매액이 급증하고 있고 시장에서의 서비스 점유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라는 이슈다. 플랫폼 기업은 광고를 통해, 채용공고를 통해, 여러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일상 깊숙히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토스는 "돈의 이동에 자유를" 광고하고, 배달의민족에 대해서는 "세계 1위 삼성전자보다 배민의 고용효과가 더 뛰어나다"라는 얘기들이 나온다. "과연 상장이 될까요"라는 우려에도 불구, 컬리는 "000명의 개발자를 대규모로 채용하겠습니다"라는 광고를 내걸며 적자 비판에 주눅(?)들지 않고 더 큰 비용을 쓰고 더 시장을 점유할 태세를 보인다.
결국 매출과 덩치를 더 키우는 게임으로 귀결된다. 어찌보면 '대마불사'(大馬不死) 전략의 기미가 보일 정도다. 그러니 PSR(매출)과 GMV(판매액)이 이들이 용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밸류에이션 기법이 된다. 거꾸로 갑자기 소액의 흑자로 전환했다고 해서 가치평가 기준을 PER이나 EV/EBITDA로 전환할 경우? 수조원이라고 자부하던 기업가치 혹은 시가총액이 불과 몇백억, 몇천억원에 불과한 기업으로 쪼그라든다.
자칫 애매한 흑자가 되레 거대한 적자보다 '마이너스'인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적자 상태로 나스닥에 상장해 결국 성공한 테슬라의 사례에 비춰보면 대규모 공모자금이 결국 열쇠가 될 것이라는 희망도 남아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리스크도 여전하다.
선지자 쿠팡은 뉴욕타임스 딜북(Deal Book) 창업자ㆍ투빅투페일(Too Big to Fail) 저자인 저 유명한 앤드류 로스 소킨(Andrew Ross Sorkin)의 질문에 단 하나의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다 좋은데..그래서 언제쯤 흑자 전환할거 같냐", "아마존은 (흑자전환의 1등 공신인) AWS라도 있었지만 다른 사업이 있느냐" , "기존 주주들이 엑시트하면 어쩔거냐".
투자자들의 증자 대금을 비용으로 무한정 써댈게 아닌 다음에야… 언젠가는 모두 이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답을 못한 쿠팡의 현재 주가(주당 16달러 수준)는 공모가 절반 이하로 고꾸라졌다.
'승자독식'이라는 공식을 세운 메시아 아마존도 마찬가지. "과도한 독점 지배력 아니냐"는 비판에 "우리 덕분에 서비스 가격이 더 낮아졌고 소비자들의 편익은 높아졌다"며 피해 왔지만 슬슬 한계에 부딪치는 모양새다. 소비자들의 편익은 결국 중간공급자의 마진 저하 덕분임이 드러나고 있고, '아마존 킬러'로 불린 리나 칸(Lina Khan) 위원장이 이끄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아마존 사업들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기업들에 얼마나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댈지는 미지수지만 언제까지고 따뜻한 시선을 보낼 것이란 보장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