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도 ‘소멸’ 가능…합병 법인 세금부담 ‘뚝’
증권사 스팩 직접 투자도 증가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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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공개(IPO) 시장이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수요예측·공모가 산정 등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직상장 부담이 커진 바이오 기업들이 주로 스팩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스팩 우회상장에 대한 한국거래소의 규정이 올해 초 완화하면서 투자처를 물색하는 증권사·발기인은 물론 스팩합병을 고려하는 기업들의 부담도 한층 줄어들게 됐다. 국내 증권사들은 스팩에 대한 투자금을 늘리고,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처를 물색하는 등 공격적인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 5호 스팩’은 생체신호 전문의료기기 제조업체 비스토스와 합병하기 위해 지난 6일 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했다. 합병은 비스토스가 존속법인으로 남고 스팩이 소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거래소가 최종 승인하면 ‘스팩 소멸 합병 방식’으로 상장하는 첫 사례가 된다.
과거에 스팩이 기업과 합병할 땐 반드시 존속법인으로 남아있어야 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2월 스팩이 소멸하고, 합병 대상 기업이 존속법인으로 남을 수 있도록 개정안을 마련했고 이를 통해 스팩에 대한 문턱을 한층 낮추는 효과를 봤다는 평가다.
과거 스팩 합병으로 인해 기업의 법인이 소멸하게 되면 서류상 업력이 짧아지는 역효과가 있었다. 상장 이후 신규사업자로 등록하면 기존 금융기관에서 받던 각종 우대혜택이 사라졌고, 거래처와의 서류상 계약을 새로 맺어야 하는 부가적인 업무가 불가피했다. 또한 법인이 변경하는 과정에서 부동산·동산 등의 취득세 비용이 발생함은 물론 임금 계약서 등을 다시 작성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올해 증시 입성을 노리는 기업들이 스팩 합병을 꺼리는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지게 되면서 스팩 시장은 다시 활기를 띌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들어 8개의 스팩이 상장을 완료했고 이달엔 3개의 스팩이 청약을 진행해 다음달 상장을 추진 중이다. 현재까지 공모 청약을 실시한 스팩 8개의 평균 경쟁률은 약 737대 1이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스팩 합병이 성사돼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가 나타난 점도 스팩 시장이 주목받는 요인이 되고 있다. 스팩의 합병 이후 주가가 급등하면 기존 스팩 투자자들의 투자 회수 기회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올해 3월 대신밸런스7호스팩과 합병해 증시에 입성한 비료 전문기업 누보의 주가는 상장 직후 급등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스팩 합병·상장과 국제 정세의 불안함 속에서 비료주의 강세가 이어지는 시점이 잘 맞아떨어졌다. 지난해에 합병에 성공한 엔피(XR 콘텐츠), 제이시스메디칼(피부미용의료기기) 등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키웠다.
이에 스팩 상장을 위한 실무를 담당하는 국내 증권사들은 직접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기업과의 합병 이후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들이 종종 나타나면서 국내 증권사들이 투자 수익을 확대하기 위해 자본 투자를 늘리는 움직임을 보인다”며 “기업들이 직상장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스팩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했기 때문에 투자처를 물색하는데 과거에 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스팩의 규모가 점차 대형화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엔 NH스팩19호가 960억원 규모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고, 연이은 NH20호스팩은 400억원 규모로 공모청약을 진행했다. 스팩의 대형화는 그만큼 합병 법인의 규모도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추후 스팩의 합병을 통한 대기업 계열사들의 유가증권시장 우회상장, 기술력을 인정받은 우량 테크 기업들의 코스닥 상장에 대한 기대감도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초까지만해도 광풍으로 여겨졌던 미국 스팩의 상황은 올해 들어 반전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말 스팩 상장과 관련해 기업공개(IPO) 수준의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감독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엔 스팩거래를 주관하는 투자은행의 책임 범위를 구체화하는 내용도 포함하면서 미국 스팩시장은 급격하게 경색하는 모양새이다.
현재로선 국내에서 상장하는 스팩에 대한 규제가 강화할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지만, 일반 투자자들의 지나친 투자열기에 대해선 주의가 필요하다는 게 투자금융업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