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 경기침체 우려로 하반기 부실 가능성↑
컨콜에서도 미래 부실 대비보다는 주주환원 관심
금융권, "대손충당금 적립 불충분한데 미래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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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분기 국내 4대 대형금융지주들이 '낙관적 충당금 쌓기'를 통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와 자산 부실화 위험 등을 고려해 미리 충당금을 대폭 쌓은 미국 은행들과는 정 반대의 행보였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강제로 배당을 틀어막은 반대급부로 인해, 시장 역시 당장의 주주환원에만 신경을 쏟고 있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고, 900조원에 달하는 소상공인 대출 부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지금의 '주주환원 파티'역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란 경고음이 나온다.
올해 1분기 금융지주 실적 바로미터는 '충당금 규모'였다. 하반기로 갈수록 자산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은행들이 충당금을 대폭 쌓을 수 밖에 없는 조건이 됐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으로 인한 대출 부실이 우려되는 것은 물론 경기침체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딴판이었다. 국내 4대금융은 시장의 컨센서스(평균 예측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충당금을 적립했다. 1분기 KBㆍ신한ㆍ하나ㆍ우리 등 4대금융이 회계에 반영한 대손충당금 총액은 7100억여원이었다. 실적 발표를 앞두고 시장에서는 적어도 8000억~8300억원 가량을 충당금으로 쌓을 것을 예측했다. 시장의 보수적 예측치보다도 15% 이상 덜 쌓은 것이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시장 전망보다 충당금을 조금 더 쌓았다. 시장 예상보다는 많았지만, 전년동기 대비 충당금 확대 폭은 20%대에 그쳤다. KB금융과 하나금융은 아예 충당금을 지난해 1분기보다 25~30% 덜 쌓았다. 안정적으로 자산건전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자체 평가 따른 결과물이었다.
은행만 따져도 상황은 비슷했다. 국민은행은 올해 1분기에 195억원을 적립했는데 이는 작년 1분기 662억원에 비해 대폭 줄어든 수치다. 우리은행의 충당금 적립액 역시 같은 기간 755억원에서 729억원으로 소폭 감소했다.
그 결과 4대 금융은 빠짐없이 올 1분기 '분기 사상 최대 이익'을 경신했다. 자산 확대와 금리 상승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긴 했지만, 충당금도 '낙관적'으로 쌓은 탓이다. 이는 올 1분기 경기 침체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미리 쌓으며 '어닝 쇼크'를 자청한 미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미국 은행들은 오히려 충당금 쌓기에 한창이다. 미국 상업은행인 JP모건체이스가 1분기 대손충당금 규모를 예상보다 대폭 늘리며 신호탄을 쏜 상황이다. JP모건은 올 1분기 14억6000만달러(1조8000억여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진 점을 감안해 당초 시장의 전망치였던 6억1700만달러의 두 배가 넘는 규모를 적립했다.
올 1분기 골드만삭스는 5억6000만달러(약 7000만원), 웰스파고도 11억달러(약 1조3700억원)의 충당금을 쌓는 등 다른 은행들도 JP모건의 선례를 속속 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국내 대형금융지주들이 미래의 부실을 충분히 대비하고 있는지 회의적이라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하반기에 부실이 현실화할 경우를 대비해 은행들에 보수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하라고 끊임없이 말은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지주들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충당금을 쌓았다는 입장이다. 국제회계기준(K-IFRS) 및 금융감독원 충당금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국내 금융사는 구조적으로 미국회계기준(US-GAAP)만큼 충당금을 쌓아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절대 규모의 차이도 있다. 올 1분기 국내금융지주 중 가장 많은 충당금을 쌓은 신한금융의 경우 충당금 적립 전 이익 대비 충당금 적립 비율이 11.2%로, JP모건 12.7%와 비교해 크게 적지 않았다.
미국 은행 중에서도 경기에 대한 전망에 따라 충당금 적립 규모가 달라지기도 했다. 모건스탠리의 경우 올 1분기 충당금이 5700만달러(약 710억원)에 그쳤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아예 적립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국내 투자자들의 국내 금융지주에 대한 일차적인 관심은 여전히 주주환원에 쏠려있었다. 실적발표와 함께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핵심 질문은 모두 배당과 자사주 매입 소각 등 주주환원에만 집중됐다.
하나금융 컨콜에서 한 기관투자자는 분기 배당에 대한 계획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KB금융 컨콜에서도 이번 분기배당 말고도 총괄적인 주주환원 정책에 대해 설명하라는 요구가 많았다. 우리금융 컨콜에서도 총주주환원율과 관련해 어떤 전략이 있느냐, 자사주 매입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금융지주들도 '최선을 다해 주주환원에 임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하나금융은 컨콜을 통해 '첫 자사주 소각'을 언급하며 "다양한 주주가치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KB금융은 주당 500원의 분기배당을 일관되게 실시하겠다는 방침에 더해 자사주 소각 가능성을 내비쳤다. 우리금융은 "중장기 배당정책은 점진적으로 30%까지 상향할 계획이고 필요하면 자사주 매입을 하겠다"라며 주주 환원 정책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어닝 서프라이즈가 나오면서 금융지주들이 표정관리에 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라며 "실제 내부에서는 상황을 더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주환원'에 대한 쏠림의 배경으로는 국내 은행들이 역대급 실적을 내고 있는 점과 지난해 금융당국이 한시적 규제를 통해 억지로 배당을 막은 점 등이 언급된다.
올 1분기 은행들은 '최고의 실적'을 냈다. 2020년 이후 대출자산이 크게 늘어난데다, 순이자마진(NIM)은 분기 상승률이 지난 2년간의 상승률을 웃돌았다. 4대 금융의 1분기 이자 이익은 총 9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15% 이상 늘어나며 사상 처음으로 9조원을 돌파했다.
여기에 지난해 충분한 배당을 받지 못했다고 느낀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주주환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1월부터 6월까지 한시적으로 배당성향을 20%로 제한했다. 이로 인해 배당이 예상보다 크게 줄었고, 금융지주 주가 역시 약세를 기록했다.
한 운용사 운용역은 "지난해 6월 배당 규제 해소 이후 주주들에겐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며 "당시 주가하락으로 곤란에 처했던 경영진 역시 주가 부양을 위해 이런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지금의 낙관적 충당금 적립과 호혜적 주주환원 정책이 올 연말 독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가 오는 9월 만료된다. 정치권에서는 추가 연장을 시사하고 있지만, 금융당국과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인수위는 유예 조치 만료시 상당한 부실이 나올 수 있다고 보고 '배드뱅크' 설립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한 금융 담당 연구원은 "지표상으론 고정이하여신비율 등 부실이 크지 않으니 현 경영진 입장에선 무리하게 충당금을 쌓아 이익을 줄일 이유가 없다"며 "만약 올 연말 경기침체와 자산 부실화로 인해 충당금을 갑자기 많이 쌓게 된다면, 그 때 주가와 주주가 받을 충격은 훨씬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