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중국 감산 조치 장기화 시, 가격협상력 약화
달러로 원자재 사는 철강사…고환율에 원가 부담도 높아져
탄소중립 압박에 투자 부담 높아져…현금흐름 변동성 확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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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철강업계가 1분기에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고 중국의 코로나 도시 봉쇄와 철강 감산 정책으로 수급 여건도 우호적이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미국 등 각국에서 금리 인상을 서두르자 환율이 급등하고 탄소다배출 업종인 철강산업에 대한 에너지전환 설비투자 압박에 거세지면서 철강업계의 손익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26일 현대제철은 1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129.5% 증가한 6974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6조9797억원으로 41.7% 늘어났다. 현대제철은 "글로벌 철강 시황 회복세라는 외부적 요인과 주요 전략제품별 영업활동을 통한 판매 확대로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선 25일 포스코홀딩스도 1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2조3000억원, 매출액은 21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동기보다 43.9%, 32.8% 늘어난 수치다. 포스코홀딩스도 역시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면서 수익성을 지켰고 주요 전방 산업에서 철강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두 회사는 모두 주요 증권사의 실적 전망치를 크게 웃돈 성적표를 내놓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들은 포스코홀딩스의 1분기 매출액 19조9987억원, 영업이익 1조6954억원으로 예상했다. 현대제철은 매출액 6조5892억원, 영업이익 5985억원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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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실적에도 불구, 시장에서는 기대보다는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다. 연초부터 철강재 주재료 가격이 급격히 올랐는데 이 인상분은 2, 3분기 실적에 반영돼서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번 포스코홀딩스의 1분기 실적은 원재료 가격의 급격한 변동성과 자회사들의 실적 개선이 만들어 낸 해프닝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급등한 원가 부담을 뒤로 미룬 덕을 봤다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철강 감산 정책 등으로 철강 수급이 타이트해지면서 급등한 원자재 가격을 철강 가격에 적극적으로 반영했지만, 현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가격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철강제품의 가격은 수요처 계약에 따라 최대 3개월씩 고정돼 원자재 가격 변동분이 제품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1~6개월까지 시차가 존재한다.
정익수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인플레이션이나 정세 불안 상황이 지속되면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수요산업의 생산 제약 및 구매력 감소로 이어져 철강업계의 가격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다”며 “또, 국가 간 자원자급화 심화로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철강사의 조달 환경에 불리하게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철강산업의 생산과 소비 규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의 정책 변화도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은 작년부터 탄소중립과 내수 안정을 목적으로 철강 생산을 억제하고 수출을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 그 덕에 장기간 공급과잉을 보였던 철강시장은 중국산 저가재와 경쟁이 완화되면서 우호적인 환경을 누렸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코로나 확산에 따른 봉쇄정책과 서방국가들의 대중 견제 흐름 등이 중국 경제활동을 제약하면서 철강 소비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 수석연구원은 “큰 흐름에서는 중국의 생산통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대규모 공급 능력을 흡수했던 중국 철강 소비가 빠르게 감소한다면 인근에 위치한 국내 철강 산업부터 교섭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기 상황이나 수요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가격 인상 폭의 제한 등으로 철강업체들의 수익성 개선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는 환율도 철강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철강업계는 원재료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해오는 만큼 환율 상승에 대한 압박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마저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달러 강세까지 더해지면 원가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 관련 설비투자 비용이 철강사의 현금흐름 변동성에 미치는 영향도 관건이다. 최근 주요 연기금사가 철강업계에 주주서한을 보내며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압박을 높이고 있어서다.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의 기금운용 자회사인 APG(All Pension Group)은 현대제철에 철강 생산과정에서 다량의 탄소 배출이 불가피하지만 절대적인 탄소 배출량이 높다고 지적했다. 포스코도 이미 APG가 오랜 주주관여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10월 국내 정부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목표치를 35%에서 40%로 상향하며 철강산업에 대한 탈탄소 대응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수소환원제철 기술 등을 개발하기 위한 투자 규모는 약 68조원에 달한다. 장기적으로는 저탄소와 에너지 효율화 수준이 사업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지만, 관련 투자가 가속화할 경우 철강사들의 현금흐름변동성도 확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