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에 레버리지 전략 부담…펀드 수익률 고민
장기 분산 투자로…'검증된' 운용사 위주 출자 전망
목표 IRR도 햐향 조짐…"IRR 10% 초반만 돼도 선방"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사모펀드(PEF)들이 중장기 전략을 다시 수립하고 있다. 국내외 각종 변수로 이전처럼 공격적인 투자 활동에 나서기엔 위험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PEF 목표 수익률을 하향 조정하더라도 안정성에 방점을 찍는 운용사들이 많아지는 분위기다.
작년 글로벌 M&A 시장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에 위축됐던 투자 수요가 폭발하며 큰 호황을 누렸다. 베인앤컴퍼니가 지난 2월 낸 M&A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20년 세계 M&A 규모는 4조달러(약 5000조원) 안팎이었는데 작년엔 5조9000억달러(약 7400조원)에 달했다. 2021년 국내 M&A 규모도 전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커졌다.
작년 하반기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자 각국 정부가 유동성 회수 신호를 보냈다. 거품 낀 자산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했다. 올해 들어선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며 시장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고, 기업과 투자자들의 보폭은 좁아졌다.
최근 투자 업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은 금리다. 금리가 오르면 투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투자 대상 기업의 실적이나 자산 가치의 하락을 불러오는데 올해 금리 상승세는 지나치게 가팔랐다. 국채 3년물 금리의 경우 두 달 사이 1%포인트가 오르기도 했을 정도다. 앞으로도 상승 추이는 계속될 전망이다.
PEF 입장에선 최종 수익률을 높이려면 레버리지 전략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이런 시기엔 차입금을 일으키기 부담스럽다. 이자를 떼주고 얼마를 남길 수 있을지를 면밀히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대형 운용사가 아니면 금융사에 고정금리 조건을 요구하기 어렵다. 하루에도 금리가 0.1~0.2%포인트가 출렁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거래 조건을 확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금리가 너무 올라 PEF로선 돈을 빌리기도 신규 거래를 하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이자 비용이 늘면 기존에 생각한 수익률을 맞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대체투자에서 쏠쏠한 성과를 낸 대형 출자자(LP)들도 올해는 돈줄을 죄는 분위기다. 부동산 대출 규제 여파로 회원이나 고객의 자금 수요가 늘며 투자할 자금이 부족해진 것도 있지만, 투자 시장을 불안하게 보고 있는 면이 크다. 올해는 금리 상승으로 인한 채권 평가손 부담도 늘었다.
한 대형 PEF 파트너는 "시장 변화에 민감한 미국 유수의 LP들은 이미 반년 전부터 보수적인 출자 전략으로 선회했다"며 "국내 LP들도 돈줄을 죄기 시작하면서 투자 시장에 돈줄이 마르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이 불안정한 만큼 장기 분산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KKR, 칼라일그룹 등 글로벌 큰손들은 짧게는 15년, 길게는 30년까지 펀드 만기를 설정해 다양한 산업과 지역에 나눠 투자하며 위험을 줄이고 있다. 국내서도 '검증된' 운용사에 대한 출자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주요 LP들도 정기 콘테스트보다 수시 출자 비중을 늘려가는 분위기다.
작년 스틱인베스트먼트는 하이브 투자 회수로 IRR(내부수익률) 100% 이상의 기록적인 성과를 냈고, 다른 운용사들의 회수 성과도 좋았다. 한때 IMM PE의 발목을 잡던 대한전선조차 회수 IRR이 20%에 달했다. 그러나 올해는 그런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다. 자연히 목표 IRR을 낮추려는 기류도 있다. 지금 상황에선 성과보수를 받을 수 있는 기준(IRR 7~8%)을 살짝 넘겨 IRR 10% 초반 정도만 돼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대형 PEF 관계자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빨리빨리'가 아니라 돌다리도 두드려보면서 '베이비 스텝'(Baby Steps)으로 가자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며 "대형 블라인드펀드를 만들어 분산 투자를 하면 큰 수익은 내지 못하더라도 10% 초반대 IRR은 안정적으로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운용사 입장에선 일단 블라인드펀드를 만들어 두면 위험 분산 투자를 할 수 있고, 안정적인 관리보수도 챙길 수 있다. 무리한 투자를 단행하기보다는 눈높이를 낮추더라도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최근 운용사들이 크레딧펀드, 인프라펀드, 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 등 다양한 수단을 만드는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IRR 눈높이를 낮추는 것도 한계가 있다. 태생적으로 고수익을 꾀하는 PEF가 안정적인 채권성 투자만 한다면 LP들이 돈을 맡길 이유가 없다. 가뜩이나 최근엔 시장 금리가 상승하며 안정적인 선순위 대출 수익률도 많이 올라간 상황이다.
한 LP 관계자는 "최근 금리 상승으로 선순위 대출만 해도 6~7% 이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라 수익 목표치가 낮은 투자는 반려하고 있다"며 "목표 IRR이 10% 중반대는 되어야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