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딩 어려워진 중·소 운용사 PI대출 증가
저축은행 사태와 비슷한 경기 환경에 우려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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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형 신생 운용사들이 토지계약금대출(PI)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매크로 환경 변화에 투자할만한 자산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까닭이다. 다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단계에 앞서 자금을 대는 PI대출은 최악의 경우 전액 손실까지도 가능해 바람직하진 않은 상황이란 평가다.
11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생 운용사들 사이에서 PI대출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PI대출은 비교적 자본력이 탄탄한 증권사들이 주로 진행하는 사업이었다.
PI 대출을 실행하면, 토지 계약 후 부동산PF로 전환할 때 받게 되는 대출 이자가 원금의 2~10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 PI대출을 해주면 부동산PF 등 이후 공사 단계별 대출 계약을 맺기에도 용이하다. 이 때문에 부동산 사업을 하는 대부분의 증권사가 PI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설명이다.
올해 들어 매크로 시장 변수가 대두하고, 부동산 시장 역시 냉각기에 들어가자 증권사들이 하나둘씩 발을 뺐다. 이 틈바구니를 중소형 신생 운용사들이 치고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운용사 입장에선 높은 수익성과 더불어 부동산 투자 부문에서 트랙레코드를 쌓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한 운용사 운용역은 "실질적으로 시행사한테 자기자본으로 대출을 내줘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구조"라며 "특히 이름없는 운용사는 투자자들이 모이지 않아서 첫번째 딜이 중요한데, 성공 사례가 쌓이면 이후 수십억원 규모의 딜은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중소형 운용사들이 PI대출 사업에 발멋고 나서는 원인으로는 최근 자산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운용사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금리인상기로 접어들면서 신생 운용사들은 자금모집(펀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동안 자금줄 역할을 해왔던 캐피탈 회사들이 보수적인 투자 집행 기조가 강화되면서다. 은행과 달리 수신 기능이 없는 캐피탈사는 금리가 오르면 조달 비용이 증가한다. 조달금리 상승 폭을 운용금리에 반영하기도 어려운 구조다. 캐피탈 회사 운용자산은 대부분 고정금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투자처가 없어진 중소형 운용사들이 PI대출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로 자기자본을 많이 집행하지만, 사모펀드 사태 이후 투자처가 마땅치 않아진 고액자산가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하는 사례도 많다. 이르면 3개월 안에도 투자금 회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일부 자산가들은 PI대출 투자를 선호하기도 한다.
'선례'도 있다. 중소형 신생 운용사인 T자산운용은 출범 첫해 영업이익 50억원을 기록했다. 회사 설립에 사용된 자본금 25억원의 두배를 벌어 들이는 데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PI대출을 비롯, 부동산 에쿼티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문제는 리스크다. PI대출은 해당 사업의 인허가도 나기 전 토직를 사기 위한 토지계약금을 대출해주는 것으로 오로지 시행사만 보고 해주는만큼 리스크가 크다. PI대출 규모 확산세가 부동산 부실로 이어진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한 미분양·원자재 증가 영향까지 겹치면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2020년까지 1톤당 6만 원대로 안정세였던 레미콘 가격은 현재 8만 원대에 진입했다. 레미콘의 주재료인 시멘트 제조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유연탄은 지난해와 비교해 3배 넘게 급등했다. 같은기간 철근 가격도 64% 급등하는 등 최근 건설 원자재 가격은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여기에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10년 전 시작된 저축은행 사태 때와 비슷한 경기 환경이 이어지고 있어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당시에도 고수익을 노린 부동산PF 대출이 부동산 경기 침체와 겹치며 수익은커녕 손실이 커지게 되면서 저축은행이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운용사 운용역은 "한 번이라도 PI대출 프로젝트에 실패하면 투자원금 자체를 날려 고객들과의 거래 관계도 끊기고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일단은 CBD(서울 도심업무지구) 투자 진입을 위해 트렉레코드를 쌓으며 회사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