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맞춰 재계도 역할 부여…반도체 견학·車공장 투자
반도체·전기차 등 핵심 산업 양국 협력 강화 기대감에도
미중 갈등 불똥 등 향후 5년간 투자계획 변수 늘어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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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과 현대차를 비롯한 주요 그룹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만남을 빛내주는 조연 역할을 맡게 됐다. 시장에서도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양국 협력 관계가 한층 더 강화할 거란 기대감이 전해진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이 곧 출범할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의 사전 행사 격으로 풀이되는 만큼 향후 5년간 재계 투자 계획의 변수는 한층 더 늘어날 전망이다.
20일 바이든 대통령은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 일정을 한국에서 시작하는 데다 ▲윤 대통령 취임 11일 만에 성사된 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한미 관계 재설정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 정상은 바이든 대통령 방한 이튿날인 21일 회담에서 글로벌 공급망 문제를 포함한 경제 안보와 역내 협력, 북핵 대응 등 3대 의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방한 일정에 맞춰 재계에서도 일찌감치 여러 역할이 부여된 상황이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타고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로 입국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으로 향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부당 합병 혐의에 대한 재판에 불출석하고 양국 정상의 공장 견학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일정에는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 등 임원들도 총출동해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에 들어가는 3나노미터(㎚) 반도체 공정 기술을 선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일정 마지막 날인 오는 22일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의 만남이 예정돼 있다. 외신에 따르면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정 회장을 만나 현대차그룹의 미국 조지아주 70억달러(원화 약 8조9000억원) 규모 투자 결정에 감사를 표할 것이라 전해진다. 앞서 지난 18일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분야에도 총 21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정 회장의 만남을 통해 현대차그룹의 미국 현지 전기차 공장에 대한 투자 계획과 함께 배터리셀 합작법인(JV) 설립 내용도 공식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현대차그룹은 SK온과 함께 미국 현지 첫 배터리셀 JV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인 투자 규모나 시기가 함께 발표될 가능성은 불투명하지만,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막바지 검토가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이후 반도체 공급망 편중 문제를 국가 안보 문제로 띄우고 친환경 정책을 내세워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의 현지 투자를 유도해온 만큼 새 정부가 미국과 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어 주요 그룹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라며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올 초 대선을 치르기 전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범 자료를 준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춰온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말했다.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현재 글로벌 시장은 금리 인상과 코로나로 인한 지역 봉쇄,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인한 전방위 생산차질 등 공급망 불안이 지속 중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는 이 같은 글로벌 산업 생태계의 핵심 부가가치 영역으로 꼽힌다.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 아닌 한국을 첫 방문지로 택한 만큼 핵심 산업 영역에서 양국 경제 협력이 한층 더 강화할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인 배경이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관계가 더 돈독해지면서 재계의 해외 현지 거점 투자 계획에는 변수가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선 반도체 산업에서 한미 협력 강화는 미국 정부의 중국 반도체 굴기 견제와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계획에 자동 동참하는 모양새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20년 미국 상무부는 수출관리규정(EAR) 개정안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 추격을 저지한 데 이어 자국 반도체 기업에 막대한 지원책을 쏟아냈다. 공교롭게도 오는 2024년엔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미국 인텔의 미국 현지 신공장이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의 중국 반도체 산업 견제가 민간 기업의 이해관계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을 꾸준히 거론해왔다. 지난 10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TSMC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선단공정 경쟁을 이어가면서 미국 현지 팹리스와의 분업 체계가 큰 무리 없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 차원에서 한국과 대만, 일본을 끌어들여 공급망을 재편하는 시도가 이미 투자 계획에서 왜곡을 일으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십년 동안 중국은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핵심 시장으로 부상했는데,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에 동참하면서 전체 파이가 줄어드는 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게 됐다"라며 "특히 미국 현지 투자를 독려하면서 단기간 내 반도체 기업의 설비투자(CAPEX) 규모도 불어나면서 갑작스러운 과잉공급으로 이어질 거란 우려도 늘어났다"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전기차 신공장 투자 계획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이후 미국과 유럽이 친환경 규제를 이유로 사실상 관세장벽 격의 보조금 정책을 쏟아내며 현지 거점 투자를 강제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현지 배터리 파트너로 낙점된 SK온을 포함한 국내 배터리 3사는 물론 관련 협력사도 지난해 이후 미국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더군다나 방한 일정을 마친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으로 건너가 IPEF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공식 출범을 선언할 예정이다. IPEF는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미국 주도 경제연합체다. 미국과 일본 등 8개국이 참여를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국도 포함돼 있다. 삼성전자는 물론 SK그룹 등 주요 대기업 전반이 중국 현지에 진출해 있는 만큼 미중 갈등의 불똥이 튈 가능성은 늘어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도 윤 대통령이 구상하는 경제정책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 점검이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차원에서 점지한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향후 5년간 힘이 실릴 거란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 외교 문제가 추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기업의 국내 투자를 독려해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목표를 세울 거란 전망이 나오는데,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부터 미국 정부의 뚜렷한 의중이 읽히지 않는다는 말도 돌고 있다"라며 "반도체를 포함한 국내 대기업의 핵심 산업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