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공제회 출자 여력 줄고
금리 상승에 고스란히 타격입은 금융사
자본시장법 개정, 기업 LP참여 사실상 불가
블라인드 출자 사업도 위축
“사실상 중소형 PEF, VC 호황도 끝 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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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자본시장의 유동성 파티가 끝났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기조, 모든 분야를 망라한 인플레이션은 국내 기관투자가와 금융기관, 일반 기업들의 대외 불확실성을 확대하는 요인이다.
사실 시장의 유동성에 가장 큰 수혜를 본 업종 중 하나는 사모펀드(PEF) 운용사이기도 했다. 투자처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평가) ‘버블’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관투자가들은 매년 출자 사업을 이어갔고 저금리 시대에서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PEF에 대한 금융기관의 직접투자와 대출이 손쉽게 이뤄졌다. 실제로 지난 수년 간 수천억원 이상의 펀드를 보유한 국내 운용사들이 크게 늘었고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성공적인 투자금회수(엑시트) 사례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올해는 분위기가 반전했다.
출자자(LP)들은 돈 줄을 죄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자본시장법이 도입됨에 따라 비상장회사를 포함한 등 일반 기업들이 PEF 출자자로 나서기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그만큼 펀드레이징에 나서야 하는 PEF 운용사들의 고민도 깊다.
현재 공제회를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투자 재원이 점차 말라간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기준 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대부분 기관투자가들에 가장 큰 포트폴리오를 형성하고 있는 채권의 평가 손실이 늘고 있다. 주식시장이 횡보 또는 하락세를 보이면서 채권 부문의 수익률 하락세를 방어하기엔 역부족이다. 인프라 또는 대체투자 시장에 투자해야 그나마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해볼 수 있지만 해당 분야에 투입할 재원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게 문제다.
PEF의 주요 출자자인 국내 공제회들은 최근 가입자들의 대출 문의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제회의 대출 금리는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 상승 속도보다 상대적으로 느리기 때문에 최근 금리 대세 상승기에서 가입자들의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까지 대부분의 국내 연기금, 공제회들은 컨테스트를 통한 위탁운용사 선정 사업을 진행해왔다. 매년 수 천억원, 최대 조 단위까지 거론되는 사업들을 진행했고 선정한 운용사들의 요청시 캐피탈콜 형식으로 자금을 출자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심화하던 지난해까진 PEF들의 대외투자 활동이 다소 위축돼 있었는데 최근 들어선 출자요청이 급격히 늘며 자금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한 공제회 투자운용본부장은 “수익자 대출을 축소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운용사들의 캐피탈콜 요청도 갑자기 몰려오기 때문에 국내 주요 공제회들은 자금 경색에 대한 고민이 상당히 깊다”고 말했다.
블라인드펀드 출자를 위한 위탁운용사 선정작업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정권 교체기를 맞아 사업 방향성을 재설정해야하는 탓도 물론 존재한다. 현재는 국민연금의 PEF 운용사 선정작업만이 진행중인데 이마저도 지난해에 비해 규모가 축소했다. 국민연금은 향후 예년과 같은 컨테스트 방식의 출자사업을 줄이고 검증된 운용사들 위주의 수시출자를 확대하는 기조를 세웠다. 국내 기관투자가의 맏형 격인 국민연금의 기조는 기타 LP들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연기금, 공제회 등 대형 기관투자가들의 출자사업의 축소 등은 그나마 대형 기관에 출자를 받을수 있는 운용사에 해당하는 이슈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초대형 PEF들은 사실 LP군이 국내에 국한하지 않기 때문에 여파가 덜하다.
문제는 소규모 블라인드펀드를 운용하거나 프로젝트펀드로만 살림을 꾸려야하는 중소 PEF 운용사들이다.
금리의 인상은 역시 큰 손으로 분류하는 국내 보험사들의 수익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익률를 방어한다기 보단 대규모 적자를 면해야하는 처지에서 대외 출자사업은 진행하기 쉽지 않다. 이는 보험회사뿐 아니라 은행, 증권 등 대부분의 금융기관에 해당한다. 저축은행과 캐피탈사들은 기존 중소형 PEF의 주요한 자금마련 창구였으나 갈수록 증가하는 조달비용에 PEF에 기대하는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어 괴리감을 줄이기가 쉽지 않다는 평가다. 이는 펀드결성을 위한 자금의 출자 그리고 PEF 인수금융을 일으키는데도 녹록지 않은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서 저축은행과 캐피탈사들을 활용한 펀드결성, 대출 등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소형 PEF들이 괜찮은 투자대상을 찾는다 하더라도 프로젝트펀드를 결성하는데 굉장히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PEF들의 펀드결성을 더욱 어렵게하고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사모펀드의 출자자수를 기존 50인에서 100인으로 늘리되 일정수준 이상의 요건을 갖춘 기관들만 출자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상장회사는 100억원, 비상장회사는 500억원 이상의 금융투자상품 잔고를 보유해야한다. 이 때문에 과거 PEF 운용사들의 주요한 자금줄이었던 중소기업, 또는 고액자산가들이 직접 출자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실제로 법 개정을 전후로 포트폴리오 투자를 추진하던 PEF들의 펀드 결성이 지연되거나 무산된 경우도 있었다.
기업과 부동산, 인프라를 포함한 대체투자 시장에 낀 버블이 조금씩 꺼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식과 채권과 같은 금융상품처럼 시장 가격에 반영되기까진 시일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부분의 기관투자가, 금융회사 등의 공통된 고민으로 역시 대체투자 시장, 즉 PEF 출자를 망설이는 요인이다. 대부분의 출자기관들이 위축한 상황이기 때문에 “중소형 PEF의 호황은 사실상 끝이 났다”는 냉정한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초호황을 누렸던 벤처캐피탈(VC)업계에도 여파가 미칠 조짐이 나타난다. ‘쿠팡’과 ‘야놀자’, ‘하이브’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IT와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높은 밸류에이션에 대한 기대감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자본시장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컬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직은 예단하긴 어렵지만 ‘컬리’를 기점으로 국내 유니콘 기업들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과거의 몇몇 ‘대박’ 사례에서 PEF 운용사들이 받았던 대규모 성과보수도 출자기관들 사이에서 논란거리다. 물론 GP와 LP간 정당 계약에 의한 성과급 책정이긴 하지만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됐을 때 ‘과연 동일한 수준의 인센티브를 책정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 기관투자가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PEF운용사, 즉 GP들 입장에선 불리한 조달 여건이란 점을 감안한 인센티브제도가 정착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포트폴리오 기업의 상장을 통해 초대박을 터트린 일부 PEF 운용사의 사례는 앞으로 수 년간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VC출자에 대한 시스템을 다소 조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