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확실성 증대되며 기업-PEF 상호 의존도 커져
기업은 투자 성적 부담 줄고 PEF는 산업 전문성 확보
기업-GP 방향성 일지…다양한 전략 코파펀드 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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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코퍼레이트파트너십펀드(코파펀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갈수록 투자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 코파펀드를 활용하면 기업은 출자자(LP)로서 의사결정 부담을 줄이고, PEF는 산업 밸류체인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 서로 윈윈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실패한 코파펀드와 달리 앞으로 결성될 펀드는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서로의 이해관계를 맞췄다는 점에서 실효성도 커졌다.
코파펀드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등장한 것은 2011년이다. 국민연금과 기업이 1대1로 자금을 대서 해외 M&A를 진행하고 과실을 나눈다는 취지였는데 성과는 부진했다. 국내 기업이 해외 시장에 잘 나가지 않던 시기였고, 국민연금 회수 보장에 힘을 쓴 구조다 보니 펀드 활용의 실익이 많지 않았다. 운용사(GP)들은 기업과 국민연금 사이에서 들러리를 서는 역할에 그쳤다.
코파펀드는 이후 한동안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는데 최근 다시 기업과 PEF가 손을 잡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소수지분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함께 손잡고 PEF를 꾸리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는 분위기다.
IMM인베스트먼트글로벌은 올해 3월 대우건설과 물류·ESG 관련 사업에 주로 투자하는 4억달러 규모 코파펀드를 결성했다. 싱가폴 폐기물 업체 테스(TES)를 인수한 SK에코플랜트는 IMM인베스트먼트와 코파펀드를 만들고 있다. SK그룹은 한 금융그룹과 함께 100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했다. SK와 금융사가 LP로 참여했는데 바이오 관련 사업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작년 IMM PE가 한샘을 인수하기 위해 결성한 펀드에 롯데그룹이 LP로 참여한 것도 넓은 의미의 코파펀드로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시스템은 군인공제회와 손잡고 국내 최초로 방산 벤처투자펀드를 결성했다. 국내외 첨단 국방산업과 4차산업 관련 벤처사업에 투자한다. LIG넥스원도 유진투자증권과 상반기 중 방산 벤처투자펀드를 결성할 예정이다. 방산 분야에 민간 자금을 넣어야 한다는 외부 목소리 때문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그만큼 투자처가 있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작년 IMM크레딧솔루션은 LG화학과 손잡고 5000억원 규모로 코리아배터리앤이에스지 PEF를 만들었다. 2차전지 관련 기업이 주요 투자 대상인데 펀드 결성 직후 대주전자재료 전환사채(CB)에 투자했다. 대주전자재료는 투자금을 실리콘 음극재 설비 증설에 쓰기로 했다. LG화학이 이 펀드 핵심 출자자(앵커LP)인데 이차전치 밸류체인 상 투자처를 물색하고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재계 20위권 안의 웬만한 기업들은 PEF나 벤처캐피탈(VC) 형태의 공동펀드를 꾸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새정부 출범을 계기로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미래 산업 영역에서도 코파펀드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유동성 긴축세가 빨라지며 기업은 다양한 외부 자금 조달 창구를 갖추는 것이 중요해졌다. PEF는 자금을 계속 투자해야 하는데 지금 같은 경기 하강 국면에선 투자 시점을 잡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선 코파펀드가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시행착오를 줄일 카드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과거 현대자동차, KT, 포스코 등 대기업과 거래한 경험이 있는 루터PE도 최근 새로운 전략의 코파펀드 결성을 검토하고 있다. 지주사와 함께 5000억원 이상의 펀드를 만들고, 그 자금을 수요가 있는 계열사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일각에선 향후 구조조정 국면이 올 것에 대비하기 위해 코파펀드를 꾸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부실 위험이 커진 회사들이 자산이나 경영권을 내놓을 수 있는데, 기업의 도움을 받으면 투자 시 옥석을 가리는 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위기 때는 좋은 자산을 비교적 싼 값에 인수할 수 있으니 PEF의 최종 성적표도 양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기업과 PEF가 손을 잡는 사례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과거 국민연금 주도의 코파펀드는 ‘기업과 자금의 연결'이라는 명목에 치중한 느낌이 강했지만, 최근 결성되는 펀드들은 상업적 판단을 최우선시 하고 있다. 기업과 GP 모두 궁극적으로 사업이나 수익성에 도움이 되느냐에 집중하기 때문에 협조가 잘 이뤄진다.
기업은 앵커LP로만 참여하니 투자 성적표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GP에 투자처를 추천하고, 투자 후 기업가치를 높일 전략을 제공할 수도 있다. GP는 과거 코파펀드처럼 단순 대리인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쌓은 투자 전문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 포트폴리오에 기반해 확장한 네트워크도 무시할 수 없다.
한 PEF 운용사 임원은 “과거 코파펀드는 기업과 국민연금이 형식적으로 연결됐지만 최근엔 기업과 전문성을 갖춘 운용사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손을 잡는다는 것이 다르다”며 “기업은 LP로서 투자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GP는 기업으로부터 투자처를 물색하고 분석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되니 윈윈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