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계열사의 연이은 상장 실패가 원인으로 거론
PT 경쟁은 치열했지만…싸늘한 시장에 증권사 눈치게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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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11번가의 기업공개(IPO)를 위한 주관사 선정 결과 발표가 예상보다 미뤄지고 있다. 11번가가 SK그룹 계열사의 잇단 상장 실패를 고려, 시장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정 프레젠테이션(PT)에 참여한 증권사들은 11번가의 입장 정리를 기다리는 한편, 대표주관사로 선정되는 데 일부 부담을 느끼는 모습도 포착되고 있다.
8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11번가의 주관사 선정 발표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11번가는 지난달 말 국내외 주요 증권사로부터 주관사 선정을 위한 프레젠테이션(PT)을 받았다. 당시 11번가는 5월말까지는 선정 결과를 통보해주겠다고 각 증권사에 전달했다.
SK그룹 계열사의 상장 릴레이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평가다. 지난달 SK스퀘어 자회사인 보안업체 SK쉴더스와 애플리케이션 마켓업체 원스토어가 줄이어 상장을 철회한 바 있다.
두 회사의 철회 배경으론 기관투자자(이하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서의 부진한 성과를 기록한 것이 꼽힌다. SK쉴더스는 100대 1을 겨우 넘겼고, 원스토어도 30대 1 수준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모가 하단 가격을 써낸 기관도 많았다. 이에 재무적투자자(FI)들의 눈높이에 맞는 기업가치를 산정하기 어려워졌다.
잇단 상장 실패에 SK그룹 내부적으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일반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흥행 실패한 것이 아닌,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서 매번 부진한 성과를 거둔 것은 뼈아픈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다음 상장 주자인 SK스퀘어의 또다른 자회사, 11번가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11번가는 이르면 올해 하반기 상장하는 것을 계획 중이다. 그러나 SK그룹 계열사들이 '기관'들로부터 예상만큼의 호평을 받지 못한 데 11번가도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전언이다.
기업가치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11번가는 2018년 사모펀드(PEF) 운용사 H&Q코리아로부터 5000억원가량을 투자받을 당시, 2조원대로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 이후 '기업가치 올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엔 하형일 11번가 사장이 직접 나서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 경쟁력 강화와 직매입 사업 등을 통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회의적인 목소리도 없지 않다. 기업가치 확대 키워드로 꼽히는 '아마존과의 협력'에 한계가 없진 않다는 지적이다. 11번가가 아마존의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것이 협력안의 골자다. 그러나 향후 비용 측면에서의 부담이나 11번가가 취급 가능한 아마존의 상품 범위 등에 대한 투자자들의 고민이 기우가 아닐 수 있다는 평가가 솔솔 나오고 있다.
11번가 주관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증권사들도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PT 당시, 증권사의 대표이사가 직접 자리하는 등 경쟁이 치열했다. 물론 올해 빅딜(Big Deal)이 많지 않은 점도 배경일 수 있겠지만, SK그룹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서라도 각 증권사들이 11번가 PT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 주관사로 선정되는 것을 다소 꺼리는 분위기도 포착된다. 최근까지 이어진 상장 철회 사태를 두고 '증권사의 과열된 영업'이 원인으로 거론되는 등, 주관사를 맡은 증권사들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주관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발행사를 대상으로 과도한 밸류에이션을 제시하는 업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대표주관사는 공동주관사로 선정되는 것이 마음 편할 수 있다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며 "발행사의 눈높이에 맞는 밸류에이션을 맞춰준 다음 이를 가지고 기관을 대상으로 영업해야 하는 증권사들은 딜레마에 빠져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