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벤처, 이전 라운드보다 낮은 단가에 투자 사례
채권발행 및 민간대출 조달 한계…자금조달 한정적 영향
R&D·임상 자금 계속투입 필요해 '버티기'도 쉽지 않아
떨어지는 투자밸류 달갑지 않은 벤처캐피탈 기존주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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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바이오 벤처기업들이 이전 라운드보다 낮은 몸값으로 투자를 받고 있다. 낮은 신용도와 이자 부담 등으로 채권 발행 및 민간대출을 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밸류가 다소 깎이더라도 증자를 받는 식이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가 됐다.
올 들어 국내 바이오 투자업계의 보릿고개가 이어지고 있다. 전세계적인 금리 인상으로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면서 글로벌 빅파마를 대상으로 한 기술수출 시장 규모가 축소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 투자심리도 얼어붙었고 한국거래소의 기술특례상장 제도개편도 장기화하면서 사실상 유일한 대규모 자금확보 방법인 코스닥 시장 상장마저 여의치 않아졌다.
업계 전반적인 조정에 들어가면서 투자사들도 이전처럼 웃돈을 얹어주기는 쉽지 않단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증시 문턱이 높아지면서 투자금 회수 길이 좁아졌다. 이전 투자유치 밸류와 같거나 더 낮은 금액이 아니라면 투자는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바이오에 대한 정책자금 수요는 여전히 있지만 바이오 투자성과가 떨어지면서 바이오 펀드 사이에서 투자 카테고리를 보다 폭넓게 잡아 유관산업 투자도 함께 묶어 성사시키는 경우가 더러 나오고 있어 기업들 체감은 크지 않다.
이에 최근 들어선 이전 라운드 밸류와 같거나 더 적은 가격에 투자를 받는 곳들이 생겨났다. 바이오 벤처 대부분 신용등급이 없어 일반채권을 찍기 어렵고, 민간 대출은 고금리에 이자부담이 앞선다. 부채성 자금조달(Dept Financing)을 꾀하기 쉽지 않은 상태서 몸값을 낮추더라도 증자를 받는 자본성 자금조달(Equity Financing)이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기업 입장에선 몸값 깎일 리스크를 감내할 바에 다시 찾아올지 모를 벤처 호황을 기다리며 '버티기'에 돌입할 여지가 있을 순 있다. 다만 신약 연구개발(R&D)과 임상 등에 계속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산업 특성상 감내 여력이 크지 않다. 한번 증자가 막히면 바이오는 '자금 부족→임상 실패' 악순환 고리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한 LP 관계자는 "투자 밸류가 깎이는 사례는 최근 들어 자주 발생하는 움직임이다. 그간 운용사들이 의사와 약사 등 전문 투자심사역 영입 경쟁을 벌이는 등 바이오 투자에 열을 올려왔지만 최근 해당 섹터에서 유독 부침을 겪으면서 투자성과에 대한 기대가 크게 깎이고 있다"고 전했다.
몸값을 낮추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 가능성도 있다. 신주발행 투자 유치 시 기존 투자자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기존주주 입장에선 후속 투자자가 낮은 밸류단가로 들어오는 게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후속 투자자가 기존 상환전환우선주(RCPS) 투자자보다 저렴한 발행가액으로 신주를 인수하면 기존 투자자의 지분비율은 희석되게 된다. 통상 리픽싱 조항을 갖추고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는 마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포트폴리오 기업의 투자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 달갑지 않다. 고전한다는 이미지를 시장에 내보이면서 향후 후속투자 유치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 벤처캐피탈 심사역은 "투자 밸류가 깎이는 움직임은 혹한기를 지나는 벤처투자업계 내에서도 특히 바이오에서 두드러지는 것 같다"며 "청산 직전 수준에 이르렀다면 주주들도 증자에 동의해줄 수 밖에 없겠지만 시장에 좋지 않은 시그널을 남기니 다음 라운드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바이오 벤처 사이에선 '이 정도도 어디냐'는 시각도 일부 있다. 한 바이오 창업가는 "임상비용은커녕 운영자금조차 마련이 안되는 곳이 수두룩하다. 극히 일부 기업을 제외하곤 대체로 상장도 못 하고 증자도 쉽지 않다. 회사 문을 닫지 못해 생존만 하는 상황에서 몸값이 다소 깎이더라도 펀딩을 받을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