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신사업 챙겨라…대기업 총수 위기 대응 분주
'진짜 위기' 우려 금융사, 수사 등 대외 변수도 챙겨야
LP 유동성 가뭄에 펀드 결성 비상…자문사도 실적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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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불황 우려가 커지며 기업과 투자 시장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대기업들은 하반기 이후 닥쳐올 혹한에 대비해 곳간을 정비하면서도 늦기 전에 먹거리를 확보하려 백방으로 뛰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실적 유지에 비상이 걸렸는데 부실 위험과 사정당국의 조사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유동성이 빠르게 마르며 돈을 미리 쌓아둔 사모펀드(PEF)와 그렇지 않은 곳들의 양극화는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경기 지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며 전세계적으로 물가 상승세가 빨라졌다. 각국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며 유동성 긴축에 나섰지만 물가는 못잡고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웠다. 소비 위축으로 본격적인 경기 침체(Recession) 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물가 상승을 이끌던 유가는 경기 침체 가능성에 출렁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총수들은 영업 최전선에 나섰다. 해외 시장을 누비며 정재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사업 기회를 잡는 데 분주하다. 위기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강해졌지만 핵심 사업에 대해선 적극 투자 보따리를 풀고 있다. 새 정부 초기 ‘허니문’ 기간을 놓치면 안된다는 인식도 강하다.
최근 경영 전면에 다시 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유럽 출장길에 올라 반도체 핵심 장비와 기술을 살폈다. ‘목숨 걸고’ ‘기술 확보’ 등 내놓는 메시지가 전보다 선명해졌다. 견제 조직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까지 나서 이 부회장 사면론을 언급할 만큼 적극 움직여야 한다는 위기감이 강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달 확대경영회의에서 파이낸셜 스토리가 기업 가치와 잘 연계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시장 자금을 흡수해 성장 동력으로 삼는 전략이 잘 통하지 않고 있어 하반기 계열사 사장들의 고민이 깊어질 상황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우리 기업인 중 유일하게 지난달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독대했다. 작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 5위인 현대차가 더 성장하려면 미국 시장 공략이 중요하다.
LG그룹은 작년까지는 LG전자 체질 개선에, 올해는 배터리와 소재 분야에 공 들이고 있다. 다른 계열사 정비도 진행되며 구광모 회장이 점점 전면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보수적인 롯데그룹은 파격 인사, 소수지분 투자 등 전과 달라진 모습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 지사 상무가 한국을 오가는 횟수가 늘며 승계 구상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냔 평가가 있다. 한화도 3세 승계가 임박한 그룹으로 꼽힌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들도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클 때는 현금을 쥐고 움츠러드는 경향이 강하지만 신사업 쪽은 총수들이 직접 나서서 열심히 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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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들은 허리띠를 바짝 조이고 있다. 예전같으면 금리 상승과 더불어 최대 수익을 논했겠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글로벌 금융위기 후 겪지 못했던 ‘진짜 위기’가 올 것이란 예상이 많아졌다.
금융지주들은 실적 유지 고민이 크다. 그간 재무적투자자(FI)를 들여 활동 자금을 확보했지만 안정적인 이자 장사로 수익을 거둔 외에 괄목할 성과는 없었다. 올해는 시장 금리 급등으로 부실 위험이 커졌다. 가상자산과 실물자산 하락의 여파가 1금융권에까지 미칠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금융위기 후 처음으로 8%를 넘어설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은행들은 선제적으로 점포와 인력을 줄이고, 자산을 내다 팔며 불황에 대비하고 있다.
은행은 그래도 사정이 낫다. 보험사와 증권사, 캐피탈사, 자산운용사 등은 당장 돈벌 수단이 급하다. 국내외 유동성이 줄어드니 새로운 투자를 하기도, 기존의 투자 자산에서 이익을 창출하기도 어려워졌다. 다른 업권의 자금줄까지 마르며 ‘인력 뺏길 일은 줄었다’는 자조가 나온다.
증권사들은 지난 2년간 각 사업 영역에서 호황을 구가했지만 올해는 반대다. 사업이 중단되거나 돈이 묶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과 신용평가사들은 증권사의 국내외 부동산 대출(PF) 위험성을 살피기 시작했다. 당장 무엇을 먹고 살지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느냐는 고민이 더 중요해졌다. 건전성 관리에 빨간불이 켜진 보험사도 위축돼 있다. 일부 소형사는 위험가중치가 낮아보이는 투자 구조를 짰다가 감독당국에 적발돼 지급여력비율(RBC) 하락폭만 키우기도 했다.
금융사들은 올해 성과급이나 승진 잔치를 기대하긴 어려워졌다. 잔치는 커녕 벌써부터 짐을 싸거나 대대적으로 조직 개편을 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캐피탈, 저축은행, 자산운용사들은 금리 부담에 씨를 뿌릴 자금을 조달하지 못했다. 외제차 할부금융사의 연체율부터 치솟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한 금융사 임원은 “올해 하반기부터 시장 분위기가 급전직하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최근 해외 자본이 아시아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부실자산이 쏟아질 한국 내 투자를 늘리기 위함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금융사들은 사정·감독 당국의 눈치도 봐야 한다. 지난달 서울남부지검에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이 다시 설치됐고, 검찰 출신 인사가 금융감독원 수장으로 왔다. 여의도 금융가는 시세조종, 기업어음 돌려막기 등으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는 소문에 흉흉하다. 대통령 선거 전부터 과거 대형 금융사고는 꺼지지 않은 불씨란 평가가 있었다. 금융사들은 지난 정부 때 외압에 의해 투자한 것이 없는지도 살피는 분위기다.
돈줄인 금융사가 어수선하니 투자 시장의 분위기는 더 싸늘하다. 특히 PEF들의 자금 조달 고민이 크다. 국민연금은 계획대로 PEF 출자를 이어가지만, 이에 자금을 붙여줄 곳들이 씨가 말랐다. 운용사(GP)들은 곳간을 아껴서 활용하거나 차별화된 투자 전략을 강구해야 할 상황이다.
공제회들은 은행 대출이 막힌 회원들의 자금 수요에 대응하느라 PEF 출자가 어렵다. 우정사업본부나 고용노동부도 코로나를 거치며 출자 여력이 줄었다. 보험사, 증권사, 캐피탈, 저축은행 역시 기업금융은 후순위다. 작년에 펀드를 결성해둔 GP들은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올 하반기 자금을 모아야 하는 곳들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펀드 운용사의 걱정이 크다. 빈티지 블라인드펀드가 아니면 때마다 프로젝트펀드를 만들어 그 관리 보수로 살림을 꾸려야 하는데, 개별 건에 대한 LP들의 심사 기준은 점점 깐깐해지고 있다. 최대 큰손인 새마을금고중앙회는 최근 횡령, 대출사기 등이 잇따라 부각되며 어수선하다. 유동성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라 올해 정기 출자 시점도 연말까지로 미루는 분위기다.
기업과 자본시장 분위기에 따라 실적 영향을 크게 받는 자문사들의 고민도 크다. 간간히 대형 거래가 나오지만 이를 추세적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호황기와 달리 상장사 거래는 주가 하락을 고민해야 하고, 비상장사 거래는 시가가 없음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일감이 적지는 않다지만 수익으로 연결시키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년간의 임금 인상 후폭풍도 올해부터 감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