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저금리 익숙했던 2030, 이직도 이젠 '긴축'으로
실리 챙기기 쉽지 않아진 시기, 돈보다 무거워진 명함
다시 재조명받는 근로소득…변호사·회계사 초봉 천상계
시대상이 바꾼 이직 풍속도…"밖은 춥다, 자리 보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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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권호 골드만삭스 상무, 네이버 라인게임즈 CFO로(2022.06)
-박희재 미래에셋증권 상무, 동국제약 CFO로(2021)
-홍원준 스톤브릿지캐피탈 파트너, 엔씨소프트 CFO로(2021)
-이재근 빗썸코리아 CTO, 테이블매니저 CTO로(2022.06)
-정명훈 CVC캐피탈 대표, 여기어때 대표로(2021)
-김용수 KKR 상무, 마스오토 COO로(2022.04)
지난 2년간 거처를 다양하게 옮기는 자본시장 관계자들의 이직 소식이 쏟아졌다. 특히 고연차 중심으로 행렬이 잦았고, 주로 PEF와 IB 임원급이 스타트업 C레벨 혹은 대표로 옮겨가거나 스타트업 간 이동 사례가 많았다.
증권사 M&A 10년차 : "실무 총괄과 인사 관리에 치인 임원들의 퇴사가 늘고 있다. 스타트업 혹은 대기업 계열사로 자리를 옮기거나 이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그 물결에 저연차들도 몸을 맡겼다. 지난해 4월, 인베스트조선이 진행한 증권사 IB·벤처캐피탈(VC)·사모펀드(PEF) 운용사 등 금융업계 종사자 대상 간담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기사: "이직하면 기회있을까"…주식·부동산 막차 놓치고 고민하는 30代 금융맨들(2021.04.15)
저금리에 유동성이 넘쳤던 이 시기, 이들은 안정적 연봉보단 '큰 한방'을 원했다.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직들의 '명예'는 비교적 경시됐고 보다 높은 업사이드가 있는 곳으로의 이직 바람도 거셌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만에 세상이 달라졌다. 시장에 풀린 과잉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기준금리가 빠르게 인상, 투자와 소비가 모두 위축세로 돌아섰다. 오랜 기간 저금리에 익숙했던 2030세대에겐 익숙하지 않을 고물가·고금리 쇼크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익숙했던 '이직 잔치'는 유효한 걸까. 업계 사람들의 생각은 이미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직의 이유가 달라졌다. 돈보다 무거워진 명함
지난 2년간 특히 VC와 PEF,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의 움직임이 잦았다. 시장에 돈이 쌓이면서 투자 사이드(Buy Side)의 입김이 세진 것이다. 창립 이후 최대 규모의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소식도 자주 들려왔다. 성실하게 일해 돈 버는 노동가치도 퇴색하면서 투자 시드머니를 키워줄 수 있는 직장이 이직의 우선순위가 됐다.
사람들은 이제 돈보단 명함, 그리고 속한 조직의 '이름값'이 더 중요하다 말한다. 실리 챙기기 쉽지 않아진 시기, 명예로 상징되는 명함의 무게가 더 무거워졌다. 이직을 하더라도 업계 리드 플레이어가 아니면 쉽사리 운신하지 않는다.
"외국계 대형 IB 2년, 글로벌 컨설팅펌 2년 등 최소 4년 이상의 커리어를 밟은 IB 주니어들은 요즘 최소 000파트너스급 이상은 돼야 입사지원하겠다는 분위기"란 말이 나온다. 조(兆) 단위 펀드를 굴리는 하우스더라도 '명함 내보이기 부끄러움 없을 정도로 잘나가는 회사'여야 이들의 눈에 찰 수 있다.
대형 하우스 선호 현상은 최근 투자업계 변화상과도 관련이 있다. 최근 VC업계는 전세계적으로 스케일 플레이어(scale player) 중심으로 변모, 양극화 현상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우버 초기 투자사로 잘 알려져 있는 미국 멘로벤처스(Menlo Ventures)의 파트너인 벤키 가네산(Venky Ganesan)은 지난 3월 "VC는 향후 3년 안에 극적인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며 스케일 플레이어, 스페셜리스트, 크로스오버 펀드 등 주무기를 갖춘 롤 플레이어와 같은 세 종류의 선수들이 판도를 지배할 것이라 내다봤다.
대형 VC 상무 : "내부 역량을 글로벌 수준으로 키우기 위한 내재화 작업 중이다. 사장급 인력들을 중점적으로 데려오고 있다. 업계에서 무게감 있는 사람들 위주로 꾸려 글로벌 톱티어(top-tier)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
외국계 IB 2년차 : "이쪽 업계는 보통 브랜드 보고 간다. 모건스탠리(MS), JP모건, 골드만삭스(GS) 정도로 추려진다. 이 곳들에서의 이직은 주로 업계 리드 PEF들이다"
자산운용사 5년차 : "직원들 복지 차원에서 해외 골프여행 보내주고 경비 대줘봐야 네임밸류 있는 곳으로의 이직은 못 막는다. 잡을 수가 없다"
성장성에 대한 관점도 사뭇 달라졌다. 작년 가장 뜨거웠던 이직처, VC로의 이직 선호 현상은 작년보다 한풀 꺾인 분위기다.
증권사 IPO 부서 5년차 : "이제 회사를 옮길 생각은 없다. 일도 나름 재밌어졌고 전반적으로 밸류가 많이 빠지면서 VC로 간 사람들이 대거 물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쪽으로 옮겼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
PEF 부대표 : "VC가 전통 바이아웃보다는 손도 덜 타고 업사이드도 크니 별도로 VC본부를 붙이려는 하우스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싫다. 지금도 벅차다"
VC 투자심사 7년차 : "유동성이 끝나니 분배 싸움이 많아졌다. 지난 2년 만큼의 성장률은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보니 '몫이라도 잘 챙겨가자' 기조다. 어쩌면 이 업계도 끝물이 아닐까 싶다"
작고 소중한 내 월급? 이젠 작지 않아!
작년 간담회에선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직 자격증을 갖췄음에도 결국 투자 사이드를 종착지로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언급이 있었다. 자격증 공부에 드는 돈과 시간에 비하면 통장에 꽂히는 돈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재테크로 수십억원을 벌어들이는 사례가 늘었던 만큼 노동가치 경시 현상을 단적으로 드러낸 예였다고 보인다.
주식과 크립토 모두 파란불이 인 현재, 근로소득의 소중함이 다시 부상했다. 실제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의 주니어 이탈률은 크게 줄었다.
대형 법무법인 경영진 변호사 : "법무법인들의 초봉이 상당히 올랐다. 김앤장과 태평양에 이어 광장도 초봉 1억5000만원 시대다. 작년만 해도 세전 월 1100만원 초반대였다. 연봉이 채용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니 율촌과 세종도 경쟁사들의 뒤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대형 회계법인 전무이사 : "전략 컨설팅은 작년 거의 퇴사율이 30%에 육박했다. 각 펌마다 100~150명 규모니, 대략 40명은 나간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A급 에이스들이었다. VC나 스타트업으로 많이들 갔다. 하지만 올해 들어선 확실히 이탈률이 줄었다"
증권사 IPO 5년차 : "작년 세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한 해외주식이 모두 하락해 초라해졌다. 자산 자체가 신입사원 수준이다. 이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근로소득을 소중히 여기는 중이다. 열심히 해야 된다"
자산운용사 임원 : "한 직원은 올해 큰 돈 벌어 퇴사했지만, 루나 폭락사태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고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든 것으로 안다"
시장이 변했다. 밖은 춥다
미국의 유명 경제지인 포춘지(Fortune)는 지난 5월, "수익률 높은 헤지펀드였던 멜빈 캐피털이 포트폴리오를 청산 중이라고 투자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월가가 충격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바깥이 추워지면서 이직 대신 자리를 보전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외국계 IB 10년차 : "그간 IB뱅커들의 스타트업 이직 동인은 어떤 대박의 기회거나, C레벨로의 전환이거나, 커리어 상의 밸류애드(value-add) 셋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젠 세가지 동인 모두 이전보다 부치는 게 사실이다. MD(매니징디렉터)급 이상이면 모르겠지만 VP(차~부장급) 이하로는 요즘 이동을 잘 안하려는 분위기다.
외국계 IB 8년차 : "2년 전 쿠팡·야놀자·마켓컬리로 환대 받고 떠난 선배들이 부러웠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부침을 겪으면서 그 때와는 인식이 좀 달라진 면이 있다. 특히 C레벨로 가기엔 근래 자금조달 책무 부담이 큰 시기니 웬만하면 자리를 보전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시각이 많다"
증권사 커버리지 8년차 : "작년까지만 해도 동년배 사이에선 VC로 가면 축하해주고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확실히 그때랑은 달라진 것 같다. 2년간 허리 기수가 크게 비면서 일이 몰렸지만, 좀만 버티면 임원 달 경쟁이 그리 치열하진 않을 거란 기대도 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 6년차 : "지난 3년간 계속 바이 사이드로 이직 문들 두드렸다. 그런데 이젠 그냥 여기 있는 게 낫겠다 싶다"
대형 회계법인 전무 : "전략 컨설팅 부문은 지난해부터 소위 '에이스'로 불리는 사람들이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많이 했다. 당시 나간 사람들이 지금은 일종의 자산이 됐다. 스타트업 고객 확보가 수월하고 정보 접근이 용이해지다 보니 업무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
누구에겐 폭풍기, 누구에겐 호황기
몇 달 만에 세상이 달라졌다는 데엔 모두가 공감했다. 문 밖엔 태풍이 오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수의 태풍이 올 것에 대비해 이직 대신 자리 보전을 선택해 리스크를 피하겠다고 답했다. 어쩌면 이직 시장도 긴축의 시대에 접어든 것일지도 모른다.
업종 간 이직이 트렌드가 되면서 전반적인 연봉 인플레이션의 후폭풍은 기업들의 몫이 됐다. 이들이 본격 돈줄을 죄면 이직 시장은 '소수만을 위한 리그'가 된다. 혹자는 이 시기가 호황기라고 칭한다. 임원급, 혹은 역량이 출중한 스타 플레이어에겐 지금이 '커리어 도약 적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