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2월 평가 예상…10월은 인사 12월은 성과급 영향
경기 부진에 주가관리 비상…평가 시점에 호재 집중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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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계열사들이 파이낸셜 스토리 성과가 부진한 가운데서도 기업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고 있다. 특히 올해는 주가를 중심으로 계열사 경영진의 실적을 평가하는 사실상 원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연말 주가가 연초보다는 올라야 하는데 주요 계열사 주가는 횡보하고 있다. 각 계열사 임원들은 지지부진한 주가가 승진과 성과급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SK그룹은 지난 17일 서울에서 확대경영회의를 열었다. 최태원 회장은 이 자리에서 현재의 파이낸셜 스토리는 기업가치와 연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파이낸셜 스토리와 새로운 핵심성과지표(KPI), 평가·보상 등을 기업가치 분석 모델과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태원 회장이 짚은대로 올해 SK그룹의 파이낸셜 스토리 성적표는 부진하다. 계열사 상장이 잇따라 차질을 빚었고, 주식을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전략은 힘을 잃었다. 증시가 침체한 면도 있었지만 시장의 평가를 도외시해 외면을 받은 영향도 컸다. 계열사들은 파이낸셜 스토리를 전면 재수정하는 분위기다. 그룹의 재가를 얻었던 계획을 반년 만에 바꾸려니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SK그룹 계열사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기업가치는 끌어올려야 한다. 파이낸셜스토리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수단’에 그치기 때문에 계획이 수정돼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항변하기 어렵다. 상장사는 주가 상승, 비상장사는 이익 증가가 핵심 과제다.
올해는 특히 주가 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 다른 대기업처럼 SK그룹도 기업가치를 가장 잘 표상하는 주가 관리에 공을 들였는데, 올해부터는 가장 중요한 경영진 평가 지표가 됐다. ‘정성적 공로’가 아닌 연초 대비 올랐느냐 떨어졌느냐를 따지겠다는 분위기인데 이러다보니 주가가 KPI의 핵심요소인 첫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확대경영회의에서의 핵심 화두 역시 주가였다. 외국계 컨설팅사 도움을 받아 주식 거래 배수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최태원 회장은 쫓아가야 할 회사를 찾으라고도 했다. 남들 주가 수준은 맞춰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문일 수 있다. 계열사 일각에선 주가를 이론적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는 불만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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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은 올해 10월말과 12월말 두 차례 계열사 주가와 경영진 성과에 대한 평가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진 입장에선 연초 대비 두 시점의 주가가 높아야 한다. SK그룹은 매년 6월 확대경영회의, 8월 이천포럼, 10월 CEO 세미나 등 굵직한 회의를 진행한다. 6월 1차 평가를 시작으로 10월까지 계열사 수장과 임원들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 SK그룹이 보통 12월 초에 정기 인사를 단행하는데 10월말 주가 평가가 인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SK그룹 계열사 경영진은 10월보다는 연말 평가에 더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임원 승진의 경우 주가가 빠졌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는 없고, 계열사마다 장기 계획이 수립된 상황에서 주가만으로 수장의 거취를 정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12월말 평가는 다르다. 이미 인사는 끝난 상황이라 성과급 등 보상에 연계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주가 등락과 폭에 따른 성과 평가 산식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즉 연말 주가가 좋아야 임원진이 가져갈 수 있는 급여가 많아진다. 지금까지 분위기로는 두툼한 상여급 봉투를 손에 쥐기 쉽지 않다. 거의 대부분 상장 계열사의 주가가 올해 초보다 떨어져 있다. 주가는 확실히 눈에 보이기 때문에 이견을 달기도 어렵다.
그간 전 계열사가 나서 사업을 홍보하고 시장 자금을 빨아들였던 점을 감안하면 코스피보다 낙폭이 작다는 정도로는 면이 서지 않는다. 연초 주가 상승 신바람을 냈던 곳들은 부담이 더 크다. 일부 계열사는 경쟁사 주가보다도 힘이 빠진 터라 더 가시방석이다.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더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많아 특단의 수가 필요하다.
상황이 이러니 SK그룹 계열사들이 평가 시점에 맞춰 효율적으로 움직일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대형 M&A나 대규모 투자 유치,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 주가에 호재가 될만한 성과를 4분기에 몰 수 있다는 것이다. SKC의 경우 몇해를 끌던 인더스트리 소재사업 매각 카드를 상반기에 소진했기 때문에 다른 호재를 다시 찾아야 한다.
시장의 기대를 전략적으로 잠시 눌러두는 것도 생각할 만한 수다. 보수적인 실적 목표치를 제시하다가 평가 시기에 목표 이상의 성과를 냈다고 발표하는 식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 4분기를 배터리 사업 자회사 SK온을 흑자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각종 변수로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시장의 기대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흑자전환 시기를 앞당기면 주가 부양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가를 중심으로 성과를 따지는 분위기라서 상장사 임원들은 연초 대비 주가를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호재가 있다면 10월말, 12월말 평가를 앞둔 시점에 집중시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