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RE100 압박…정부 차원 재생에너지 확대 '전제'
EU는 에너지로 몸살…각국 공조 대전제마저 위태롭단 평
수개월마다 '친환경' 문턱 높아지는데…계산 틀어질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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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시작된 '지속 가능한 경영' 요구가 국내 기업에 구조적인 비용 증가 부담으로 나타나고 있다. 각국 정부 정책 공조와 기관투자자 압박으로 친환경 계획 수립은 어차피 해야 할 일쯤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수개월 단위로 변수가 뒤바뀌고 있는 탓이다. 그나마 유동성이 뒷받침한 지난 2년 동안 기업 차원에서 마련한 대응책도 공급망 병목과 기준금리 인상, 인플레이션으로 계산이 꼬이고 있다. 청구서에 적힐 금액은 불어나는데 목표 달성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감은 커지는 분위기다.
6월 시장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삼성전자의 RE100 참여 여부다. 민간에서 불을 지핀 운동인데 기업 입장에선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마련하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말만 권고일 뿐 선뜻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는 기업을 향한 눈초리가 따갑다. 삼성전자 역시 추진 의사를 밝혔으나 쉽사리 가입을 선언하기 어렵다는 데 동의하는 시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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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전력 사용량은 26.95TWh다. 국내 재생에너지 총 발전량(21.5TWh)보다 높다. 아래로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현대제철 등 5위권 이내 반도체·철강·디스플레이 업종 사용량을 더하면 82.61TWh에 달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 기업이 RE100에 동참하기 위해선 국가 차원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대폭 늘린다는 강력한 전제가 필요하다. 현재 국내 에너지 업계 발전원에서 신재생에너지 몫은 7.5%에 불과하다. 나머지 90%는 석탄과 가스, 원자력으로 마련하는데 얼마 전 유럽연합(EU) 의회는 택소노미(녹색경제 분류체계)에서 가스와 원전을 배제하는 데 결의했다. 제3자간 전력거래계약제도(PPA) 등 제도적 보완 장치가 마련되고 있지만 에너지 믹스 상당 부분을 풍력·태양광으로 채워야 하는덴 변함이 없다.
재생에너지 발전원을 미리 넉넉하게 깔아놓지 않아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접근성이 가장 높은 유럽 지역을 보면 RE100을 가입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회의적 반응이 나온다.
유럽은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믹스를 전환했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석유·가스 의존도만 커졌다.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글로벌 재생에너지 기업의 현금흐름은 형편이 없고 원자재 인플레가 겹치며 필요 투자 비용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유럽은 이번 에너지 수급 대란에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이 공급을 막아놓고선 러시아만 탓하고 있는데 이 비용을 전 세계가 부담하는 형국이라 기업 입장에서 좋게 보기 어렵다"라며 "신흥국 사다리 걷어차기란 비판이 많았는데, 수출 제조업 중심인 한국도 대상 중 하나다. 환경을 내세워서 외부에서 비용을 더 걷어들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차원에서 RE100이나 탄소중립과 같은 목표에 동참하기 위해 고려한 여러 가정도 위태로워지고 있다.
지난해 산업연구원에선 반도체·디스플레이·석유화학·시멘트·철강·정유 등 6개 산업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약 199조원에 달할 것이라 추산했다. 그런데 올 상반기에만 해도 탄소중립의 문턱 자체가 높아지고 있다.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어디까지 줄여야 하는지가 불명확한데다 재생에너지 가격도 구조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어 개별 기업 차원의 계산도 틀어졌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화석연료 역시 공급을 틀어막은 터라 에너지 구매 가격 자체가 작년에 비해 대폭 불어났다.
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 전기차의 경우 그나마 친환경 외 자율주행 등 다른 혁신 가치가 주목받으며 전망이 밝은데, 배터리 시장에서도 장기 전망을 두고 불안한 시각이 많은 상황"이라며 "전 세계 에너지 수요의 극히 일부를 재생에너지로 교체하는 과정에서만 필요 원자재 가격이 널뛰고 있는데, 관련 추정치 대부분을 믿기 힘들단 말도 많다. 화석연료 퇴출이 임박했다는 전망 자체가 틀렸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기관투자자 압박에 급하게 사업 전환에 나선 기업들의 기회비용도 무시하기 어렵다.
작년 국내에선 현대자동차그룹을 중심으로 SK·포스코·롯데·한화·GS·현대중공업·두산그룹 등이 참여하는 수소기업협의체가 출범했다. SK그룹이 총 18조5000억원, 현대차그룹이 11조1000억원, 포스코그룹이 10조원 투자 계획까지 내놨다. 이들은 기존 사업을 매각·축소해 신사업 투자 재원을 마련해왔는데, 사업성에 대해선 안팎으로 회의적인 시각만 늘어났다.
대기업 전략실 소속 한 인사는 "수소 사업의 경우 솔직히 말하면 내부적으로 사업성을 검토했을 때 현재 조건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라며 "가야 하는 길이고 힘을 합쳐서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다 같이 움직이는 분위기에서 개별 행동을 하기 부담스러워서 숫자가 안 나온다는 걱정을 안고 참여한 면이 있다"라고 전했다.
친환경 사업에 힘을 실은 기업의 실적과 기업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증권사 화학 담당 한 연구원은 "카본 사업 출구전략이 필요하긴 했지만, 재활용·재사용 플라스틱이나 수소 사업 같은 대안이 충분한 시장을 확보할 때까지 예상 기간은 계속 길어지는 중"이라며 "실현 가능성을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조달 목적으로 메시지부터 던진 기업도 있는데, 당분간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일 산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축소해왔던 화석연료 시장일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