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물량확보 위해 안 하던 의무 보유 확약까지
기관 청약 수수료 내기 시작해도 스팩 청약 열기 뜨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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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공모주 시장이 얼어붙자 기관투자자들의 관심이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관들은 더 많은 주식 물량을 배정받기 위해 안 하던 의무 보유 확약도 걸고, 안 내던 청약 수수료까지 납입하기 시작했다. 증시침체기가 얼마나 이어질지 불확실하다보니 공모주나 상장 주식 등에 투자하기 보다는 비교적 안전한 스팩으로 피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30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삼성스팩6호는 거래 첫날 상한가를 찍으며 주당 5200원에 장을 마감했다. IPO 시장이 크게 위축되자 스팩이 비교적 안정적인 투자처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대형 증권사의 ECM 담당 임원은 “스팩은 상장 후 3년간 합병 기업을 찾지 못하면 상장 폐지되는데, 해산되더라도 원금(공모가)이 보장되고 소정의 이자도 지급된다”며 “공모주 펀드 운용사들이 ‘대체투자’ 수단으로 스팩에 투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기관들은 물량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수요예측 과정에서 의무 보유 확약을 거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 지난 4월에 상장한 KB제21호스팩의 경우, 30%가 넘는 기관들이 의무 보유를 확약했다. 확약이 한 건도 없었던 KB제20호스팩과 크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삼성스팩6호도 의무 보유 확약 비율이 33%에 달했는데, 지난해 6월에 상장한 삼성머스트스팩5호는 7%에 그쳤다.
공모주 펀드 운용사 임원은 “기관들 사이에선 LG에너지솔루션 이후에 올해 공모주 시장이 한풀 꺾인다고 전망했기 때문에 올해 초부터 물량을 많이 받기 위해 스팩에도 '락업'을 거는 방안을 논의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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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보다 스팩의 합병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진 점도 투자 수요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과거에는 스팩 법인에 IPO를 희망하는 기업이 합병되는 방식이라, 상장할 경우 스팩이 존속법인으로 남고 기업이 소멸됐다. 기업은 신규 사업자로 등록해 과거 업력이 소멸되고 관공서 및 벤더 재등록 등 행정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는 애로사항이 제기됐다. 합병과정에서 합병 대상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이 합병법인에 매각되는 것으로 세법상 해석돼 그에 따른 세금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올해 2월 합병 대상 기업이 존속 법인으로 남는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낮았던 합병 성공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27일 한국거래소는 법 개정 이후 ‘스팩소멸방식’ 합병상장 첫 사례로 비스토스의 상장예비심사를 승인했다. 핑거스토리, 라온텍, 신스틸, 옵티코어 등 4곳이 스팩소멸방식으로 합병을 추진하기 위해 심사를 받고 있어 더 늘어날 전망이다.
또 다른 대형증권사의 ECM 관계자는 “IPO 시장이 워낙 어려워진데다 스팩 규제도 완화되면서 직상장보다 스팩 상장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다운사이드(손실)가 막혀있고 합병에 따른 업사이드(수익)는 이전보다 늘어나니 기관들도 스팩을 담을 만하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기관투자자 대상 청약 수수료를 받기 시작했다. KB증권은 KB제21호스팩에 대한 수요예측을 받으면서 납입일에 배정된 금액의 1%에 해당되는 청약 수수료를 받았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스팩의 기관 수요예측에서는 청약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기관투자자의 스팩 투심이 높지 않은데 청약 수수료까지 받으면 청약하는 기관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KB증권이 처음으로 스팩 청약에 수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 경쟁률은 1102.89대 1을 기록하며 그와 별개로 청약 열기는 상당히 뜨거웠다는 후문이다.
KB증권이 수수료를 받기 시작하자, 다른 증권사들도 뒤따르는 모양새다. 신한제10호스팩 증권시고서에 따르면 청약수수료 납부 조항을 추가했다. 납부 금액은 KB증권과 동일하게 납입일에 배정된 금액의 1%에 해당한다. 올해 스팩 상장이 최근 5년간 최고치를 기록하는 만큼, 향후 청약 수수료를 받는 증권사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