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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석유화학의 3세 경영이 시작했다. 박찬구 회장의 장남인 박준경 부사장은 사내이사에 등재했고 박 회장의 조카이자 최대주주인 박철완 전 상무의 견제는 실패했다.
박찬구 회장 측과 박철완 전 상무의 분쟁은 수년 째 이어져오고 있는데 이번 임시주주총회에서 박철완 전 상무가 받아든 성적표는 여느때 보다 초라했다. 박 전 상무에 힘을 실어준 주주들은 떠났고 특수관계인만 남았다. 앞으로도 박찬구 회장 일가에 대한 꾸준한 견제가 예상되지만 경영권을 찾을 수 있는 동력은 약해진 듯 하다.
금호석화의 주주구성은 박철완 전 상무가 8.58%를 보유한 최대주주, 그리고 박준경 부사장(7.21%)과 박찬구 회장(6.73%) 등이다. 박 전 상무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하면 10% 남짓이다.
박철완 전 상무는 금호그룹 2대 회장이었던 고(故) 박정구 회장의 장남이다. 재계에서 형제 경영의 시초와도 같던 금호그룹은 2002년 박정구 회장이 작고한 이후 3남인 박삼구 회장이 그룹을 장악했지만 곧 공동경영 체제가 와해했다. 금호석화는 2015년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금호그룹와 계열분리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상무는 박정구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고 추가로 지분을 인수하며 금호석화의 최대주주에 오르게 됐다.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사이에서 고심하던 박 전 상무는 결국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화에 몸담았다.
‘비운(悲運)의 왕자’라는 타이틀은 늘 그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박 상무에 대한 박찬구 회장의 견제는 끊이질 않았고 오너일가 그리고 임원이란 직함이 무색할 정도의 대우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준경 부사장, 박주형 전무가 경영 수업을 통해 승계 스토리를 차곡차곡 쌓아나간 것과는 대비된다. 박 전 상무가 관심을 갖던 아시아나항공도 결국 범(汎)금호 일가에서 멀어졌다.
박 전 상무의 금호석화를 되찾겠단 의지는 여기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분쟁의 초기부터 박 전 상무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적통(嫡統)’임을 강조했다.
물론 자신의 입지를 활용하면서 주주들에게 각인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한계가 존재했다. 박 전 상무가 경영권을 확보해야할 ‘명분’과 박찬구 회장의 일가보다 훨씬 양호한 경영 성과를 낼 수 있는 세밀한 전략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경영 전면에 나서 회사를 이끌어 본 전례가 없는, ‘최대주주’ 명함만을 보유한 비운의 왕자라면 더욱 그랬다.
박 전 상무는 경영권 분쟁 초기 ▲미래성장경영 ▲거버넌스개선 ▲지속가능경영 등 3가지의 주주제안을 통해 투자자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사측의 경영 활동과 완벽한 차별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 사례도 이와 유사했다. 주주연합의 구심점이던 KCGI는 수십페이지에 달하는 한진그룹의 미래 경영전략을 발표했고 표심을 잡기 위한 여론전에 집중했지만 결국엔 실패했다.
분명한 것은 KCGI의 활동이 한진그룹 경영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이다. 이는 경영진을 견제하는 세력으로써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는 점과, 반대로 KCGI 주주연합이 아닌 현 경영진 체제에서 얼마든지 경영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 같은 상황을 지켜봤음에도 박 전 상무의 공세는 무뎠다.
이어진 경영권 분쟁에서 박 전 상무의 주주제안은 공격적인 배당 확대였다. 회사측은 박 전 상무 측의 배당안에 못미치는 안건을 제시했으나 또 다시 주주들은 회사 측 편에 섰다. 배당 확대는 주주들이 가장 반길만한 요인이지만, 지나친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주주에게 회사의 미래를 맡기기엔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있었다. 회사의 중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고려한 배당 성향 발표가 아닌 이상 표심 잡기에 급급한 모습으로 비쳐지기 쉽상이었다.
과거 현대차의 경영권 분쟁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현대차의 경영권을 노리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차 측보다 3~4배가량 높은 배당률을 요구했는데 역시 투자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역시 돌이켜보면 현대차의 배당성향 강화와 주주환원책 제고가 이뤄진 계기였다.
이번 분쟁이 박 전 상무에게 경영권을 되찾기 위한 ‘야망’을 드러내는 장(場)이 돼선 승기를 잡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전 상무측은 회사측의 발표 하나에 상당히 민감하고 날 선 반응을 쏟아 냈고 과연 이번 분쟁이 회사측의 중대한 결함으로 시작된 것인지 여부와 그리고 박 전 상무 측이 진정으로 영속 가능한 회사의 발전을 위한 행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위를 알 수 없게 했다.
금호석화의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막을 내린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이번 임시주총에서 박준경 부사장의 사내이사 안건에 반대하는 주주는 박철완 전 상무측 10% 지분이 유일했다. 금호석화의 주가가 바닥을 친 상황, 주주들의 원성이 높아진 상황임에도 그랬다. 과거 박 전 상무가 주총에서 30%가 넘는 지지를 끌어내며 언젠가 경영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은 현재로선 사라졌다.
사실 한국 기업들 가운데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남아있는 곳은 아직 많다. 이미 후계구도가 얼추 완성된 10대그룹 정도의 대기업을 제외하곤 2세 또는 3세 경영 승계 과정에서 지분 정리가 이뤄지지 않은 곳도 상당수다. 오너의 지분 승계 과정에서 잡음을 차치하고도 한국 기업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공세는 더욱 가속화 할 것으로 보인다.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이 떨어진 시점에선 헤지펀드를 비롯한 외부의 공세가 거세다.
주주도 회사의 주인이다. 어떤 경영인이 최대한의 이익을 안겨 줄 수 있을지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체다. 경영권 분쟁을 통해 승기를 잡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세밀해야한다. 무엇보다 명분과 진정성이 중요하다.
입력 2022.07.26 07:00
취재노트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2년 07월 2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