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매각 공회전 중 국내 진입 노리는 FTX와 급진전
FTX, 韓 규제당국 사전 접촉 움직임도…성사 여부에 관심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2위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은 지난 수년간 경영권 매각이 추진됐다. 매년 오르는 몸값에 법정 다툼까지 겹치면서 한국 안에서 주인을 찾기 쉽지 않았다. 최근 유력 협상자로 부상한 FTX는 막대한 자금력을 갖추고 있고, 역동적인 한국 가상자산 시장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서로의 욕구를 충족할 상대를 만난 만큼 올해는 빗썸이 새 주인을 맞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1일 M&A 업계에 따르면 빗썸은 올해 들어 글로벌 4위 가상자산 거래소 FTX와 매각 협상을 진행했다. FTX는 미국의 30대 코인 거부 샘 뱅크먼 프리드가 창업한 기업이다. 비덴트는 지난달 25일 공시를 통해 빗썸코리아와 빗썸홀딩스 지분 처분을 위해 접촉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빗썸 매각은 여러 해 동안 공회적이었다. 2018년 김병건 BK메디컬그룹 회장이 주도하는 BK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했으나 컨소시엄이 자금 조달에 실패하며 무산됐다. 2020년엔 국내 상장(IPO)과 경영권 매각을 동시에 검토했다. 여러 사모펀드(PEF)와 벤처캐피탈(VC)이 관심을 보이자 매각에 무게를 뒀지만 역시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그 사이 빗썸의 가치는 크게 높아졌다. 특히 지난 2년간은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며 거래소들도 쾌재를 불렀다. 빗썸코리아의 경우 2019년 영업수익 1446억원에서 작년 1조99억원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07억원에서 7821억원으로 성장했다. 회사 가치가 수조원에 이를 것이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 빗썸은 '항상 매각 중'이었지만 그만한 원매자를 찾기 쉽지 않았다.
빗썸의 복잡한 지배구조와 오너리스크도 매각에 걸림돌이었다. 빗썸홀딩스는 빗썸코리아 지분 73.56%를 보유하고 있으며, 빗썸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34.22%를 보유한 코스닥 기업 비덴트다. 실소유주인 이정훈 전 의장은 BK그룹 김병건 회장으로부터 특정경제범죄법 위반 혐의로 고소된 상황이다. 재판은 3년째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선 평판 위험을 신경 쓰는 국내 기업이 나서기 쉽지 않다. PEF들도 가상자산에 대한 출자자들의 보수적 기조로 적극 움직이기 어려웠다. 자연히 같은 업을 하는 곳, 그 중에서도 FTX 같은 외국계 큰손이 원매자로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FTX는 한국 시장 진출을 원하고 있다. 이전까진 매각자가 원매자를 적극 찾는 분위기였다면 이번엔 매수자가 먼저 관심을 갖고 제안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이 다리를 놨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양측의 접촉 자체는 꽤 오래 전부터 이뤄졌지만 최근 들어서야 의견이 좁혀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FTX는 작년 ‘FTX trading LTD’란 상표권 특허 출원을 신청, 특허청의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에선 FTX가 오래 전부터 한국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규모는 작지만 가상자산 분야의 역동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FTX 입장에선 국내 사업자를 인수하면 자사 상품을 가장 빠르게 한국 시장에 도입할 수 있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FTX를 비롯한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모두 한국만큼 개인 투자자의 자금이 활발하게 오가는 시장이 없다고 본다"며 "어느 정도 고객 기반을 확보한 상태에서 한국에 진출하길 바랄 것이기 때문에 상위권 거래소 중심으로 매각 의향을 타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FTX는 빗썸 인수를 위해 국내 사정기관들에도 사전 접촉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진출에 앞서 당국의 분위기를 사전 점검하는 차원이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FTX 창업자는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개인 신분으로는 두 번째로 많은 정치자금을 대며 정치적 수완을 드러낸 바 있다.
매각자와 인수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만큼 빗썸 매각 성사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는 평가다. FTX 창업자는 과감한 투자를 하는 사업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올해에만 가상 자산 시장에서 7건의 M&A를 성사시켰다. 가상자산 시장의 부침이 커진 올해가 몸집을 불리기에 최적기라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내 가상자산 규제가 어떻게 바뀌느냐 하는 문제는 남아 있다. 다만 관련 업계에선 현재까지 특정금융거래법(특금법) 외엔 이렇다 할 진입 장벽이 없다고 보는 분위기다.
한 대형 법무법인 금융규제 전문 변호사는 "일반 금융기관은 대주주 변경 시 금융위원회의 적격심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는 특금법을 제외하곤 사실상 규제 바깥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