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신세계·한화·KB금융 접촉…최근 한 곳과 협상 급물살
손 회장 비전펀드 중심 일원화 의사에 비주력 법인은 매각
비전펀드 중동 출자자 자금 압박에 따른 전방위 현금 확보 차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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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뱅크그룹이 국내 투자 법인인 소프트뱅크벤처스를 매각한다. 글로벌 전역에 흩어진 투자조직을 정리해 비전펀드 중심으로 기능을 일원화하려는 차원이다. 비전펀드 주요 출자자인 중동 투자자들의 자금 압박에 따른 전방위적인 현금 조달도 매각 목적으로 꼽힌다. 현재 국내 주요 그룹사들과 접촉해 가격을 협상하는 단계로 파악됐다.
10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아시아가 보유한 소프트뱅크벤처스 지분 전량이 매물로 출회됐다. 매각은 수개월 전 결정, 협상이 본격적으로 흐름을 타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으로 알려진다.
지난 2000년 설립된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총 10개 벤처펀드를 운용 중으로, 사모투자펀드(PEF)를 제외한 벤처운용자산만 1조651억원 규모에 이른다. 소프트뱅크그룹에선 한국 얼리 스테이지(early stage) 및 아시아 투자 기능을 하는 법인으로, 아이유노미디어·하이퍼커넥트·제페토·소다 등을 대표 포트폴리오로 두고 있다.
현대차·신세계·한화·KB금융 등 국내 주요 그룹사들과 매각 협상을 위해 접촉, 최근 한 곳과 논의가 진전돼 가격 협상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그룹사는 미국 등 글로벌 영역 확장을 위한 투자 앞단으로서 해당 매물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평이다.
현재 업계에서 거론되는 소프트뱅크벤처스의 매각 가격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매물 특성상 일반 기업처럼 현금 흐름이 활발하지 않고, 매각 시 인력 이탈이 있을 수 있다는 평가다. 소프트뱅크그룹에서 국내 기업으로 소속이 변경될 경우 이탈 움직임이 적지 않을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이번 매각은 소프트뱅크의 한국 투자 철회 의미는 아니다. 투자 조직들이 글로벌 전역에 흩어져 있는 만큼 그룹 핵심인 비전펀드(Vision Fund) 중심으로의 조직 일원화 차원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가 발굴한 기업을 소프트뱅크그룹이나 비전펀드에서 후행투자하는 사례는 있었으나, 그룹과 직접적인 지분 접점은 없다.
소프트뱅크는 현재 계열사인 미국 사모펀드(PEF) 포트리스인베스트먼트의 매각도 추진 중인 상황이다. 당초 포트리스인베를 활용해 비전펀드를 관리하려던 계획이었지만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권고에 따라 경영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양도하면서 독자적으로 운영해왔다. 손 회장이 이번 실적발표에서 직접 매각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자금 융통을 위한 전방위적인 현금 확보 일환도 매각 배경으로 꼽힌다. 비전펀드를 함께 조성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등 중동 투자자로부터의 자금 압박이 주효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소프트뱅크는 8일 분기 실적으로 사상 최대인 30조원 이상의 대규모 평가 손실을 기록했는데, 이중 91%(약 2조9000억엔)가 비전펀드가 투자한 기업들의 주가하락에 기인했다. 손실이 잇따르자 비주력인 아시아 조직을 선제 정리하겠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공격적인 투자 스타일을 보여왔던 손정의 회장은 작년부터 보유주식 정리에 돌입한 상태다. 지난 4월과 7월 차량공유업체 우버의 지분을 전량 매각했고, 6월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와 온라인 부동산 회사 오픈도어, 헬스케어 회사 가던트, 중국 부동산 업체 베이크 지분 등을 일부 매각했다. 최대주주로 있는 쿠팡도 꾸준히 주식 처분 중에 있다.
손 회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창업 이래 최대 적자를 진지하게 반성한다"며 "새로운 투자는 철저하게 엄선하고 있으며, 인원 감축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