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최대치였던 우리 기업 투자, 올해 들어 더 빨라져
규제 후진성·시스템 미비 등 다른 동남아 지역과 유사
정부나 유력 세력에 끌려다니거나 애먹은 사례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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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인도네시아는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줄고, 베트남의 성장세도 둔화하며 가장 주목받는 나라가 됐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매년 5~6%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아세안(ASEAN)의 맹주로 떠올랐다. 스마트폰 보급과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형 IT·테크 기업도 속속 나타났다. 글로벌 기업들은 2억8000만명에 이르는 내수시장, 풍부한 천연자원, 지정학적 위치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작년 한국의 인도네시아 직접투자 규모는 18억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2014~2018년 사이 6억~7억달러대였으나 2020년 델타마스(Delta Mas) 공단 내 현대차 공장 건설 프로젝트(총 투자비 15억5000만달러)를 계기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제조업에서 금융까지 투자가 이어졌다.
올해도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등 유수의 기업들이 신규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지난달 방한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와 경영진들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조단위 투자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내수 시장이 크고 섬과 오지가 많은 특성상 개발할 여지도 많다. 인도네시아는 수도 이전을 추진 중인데 건설업계도 새로운 먹거리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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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업에 있어 인도네시아는 놓치면 안되는 시장이지만, 반드시 ‘보물섬’이 될 것이라 낙관하긴 어렵다. 글로벌 투자 경쟁이 치열하다. 전기차 사업만 해도 최근 토요타, 미쓰비시 등이 투자 계획을 밝혔고 중국 기업들도 투자를 검토 중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올해 인도네시아를 찾았다. 우리 기업들은 몸을 낮추거나 인도네시아 의중에 최대한 따르는 방식의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LS전선은 2018년 인도네시아 유력 기업인 아르따 그라하 그룹(Artha Graha Network, 이하 AG그룹)과 합작법인을 세웠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공공 사업에서 자국산 전선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기를 바랐다. 섬나라 특성상 전선 수요는 많지만 인도네시아산 전선은 품질이 떨어져 해저 케이블 용도로는 쓰기 어렵다. 이에 단독 진출이 아닌 합작사 형태를 갖췄는데, 합작 협상 과정도 험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는 지방은행만 1000곳 이상이 난립해 금융 부실 위험이 크다. 해외 시장에 목마른 것은 국내 금융사다보니 위험을 감수하고 M&A에 나서는 경우가 있었다. 국민은행은 2018년 부코핀 은행을 인수했는데 부실을 알면서도 가격에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작년 부코핀은행은 272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인도네시아 금융당국은 외국 자본이 한 은행을 사려면 다른 은행도 한 곳을 사라는 규제를 적용해 부실을 정리하기도 했다.
신흥시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불투명한 규제, 사회 시스템 미비 등 문제는 인도네시아도 다르지 않다. 경제 규모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정부의 행정력이나 정치·사법 체제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계약을 진행하는 것부터 첫 삽을 뜨는 것까지 하세월인 경우가 많다.
인도네시아는 오랜 기간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거쳤고, 1949년에야 지금의 국가 형태를 갖췄다. 역사가 짧고 섬이 많은 특성상 중앙 정부의 힘이 강하지 않다. 중앙 정부만 믿고 사업에 뛰어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꽌시(关系)' 문화가 있지만, 중국처럼 모든 것을 해결할 정도는 아니다. 지방 맹주의 영향력이 여전하고,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거친 탓에 군부에 기반한 가문들도 힘이 센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2017년 AG그룹과 합작법인을 세워 인도네시아 상용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AG그룹은 1973년 설립돼 은행, 호텔, 건설업 등을 하는 재벌이다. 공격적인 사업 방식으로 유명하고 현지 영향력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자카르타 도박산업이나 현지 폭력조직의 언론사 공격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적도 있었다. 어쨌든 현대차는 유력 가문과 손잡은 덕에 관세 장벽이 낮아진 아세안 시장에 연착륙할 수 있었고, 인도네시아 정부와도 관계를 다지게 됐다는 평가다.
최근 다시 인도네시아에 공을 들이는 포스코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인도네시아 크라카우우스틸과 손을 잡았다. 2013년 인도네시아 찔레곤에 일관제철소를 준공했는데, 이후 지역 유력 가문과 토지 소유권을 둘러싼 문제가 생겼다. 토지 문제를 해결한 후에도 지역과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 현지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원성을 샀고 사업에 애를 먹었다.
한 인도네시아 관련 투자를 하는 투자사 관계자는 “인도네시아는 군부 출신 가문이나 지역 토호들의 힘이 강한데 이들은 대통령은 잠깐이지만 자신들은 영속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기업이 이런 강한 현지 조력자를 만나면 사업을 펼치기 수월하지만 반대로 협상 과정에서 질질 끌려다니거나 협상 상대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아세안 국가들은 보통 외국 자본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사용권만 인정하는데 땅문서가 허위이거나 권리관계가 불투명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대기업 사업을 내로라하는 대형 법무법인이 검토하고도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러니 계약이나 협상 자문보다는 현지 전문가를 고용해 진행하는 ‘공증’ 비용이 더 들기도 한다.
우리 기업이 투자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구제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한국이라면 평판 위험 때문에라도 소송으로 이어지는 것을 꺼리지만, 사법 시스템이 낙후된 인도네시아에선 피소를 크게 겁내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 투자자 입장에선 최소한의 하방 위험 방지책도 기대하기 어려운 셈이다. ‘담보’ 자체가 무의미한 경우도 많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베트남의 입지가 모호해지면서 인도네시아가 공급망 관리의 요지로 부상했지만 우리 기업들은 인도네시아의 명확하지 않은 규제와 기준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인도네시아 정부와 당국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