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하며 공식적인 경영 복귀가 가능해졌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지경학(地經學)적 가치가 부상한 반도체 사업이지만 지난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정중동 행보를 보인 삼성그룹 계열사가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현재 이 부회장의 과제는 '아버지를 넘어서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효도'라는 '승어부(勝於父)' 경영으로 요약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선 삼성그룹이 전과 같지 않다는 우려가 한가득이다. 그룹 계열사에서도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후자' 신세라는 자조적 인식이 팽배한 상황이다. 이 부회장 복귀 이후 삼성그룹 행보에 대한 시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삼성'후자'로 전락한 계열사 자조적 인식 팽배
"그나마 시장에서 주목을 받는 삼성SDI의 경우에도 직원들 사이에서 '후자'라는 발언이 나온다. 업계 내에서는 그룹 유리천장에 갇혀서 공급 계약 가격까지 하나하나 보고가 이뤄지는 등 그룹 유리천장에 갇혀서 경쟁 기업과 제대로 승부하기 힘든 기업으로 통하는 편. 새로 수장이 왔지만 기대한 것에 비해 전략적으로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는 아직 없고 따로 청사진이 마련된 것도 아닌 듯하다" (배터리 업체 대표)
"삼성중공업의 경우 사실상 그룹이 방치하고 있는 사업으로 통한다. 재고 드릴십 문제로 자본잠식 위기에 처한 이후 지난해 재차 증자에 나설 때도 삼성전자의 지원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당시 그래도 증자에 참여할 거라는 근거로 '지역 경제에서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정무적 차원에서 가치가 있지 않나'라는 말이 돌았다"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관계자)
"삼성증권이나 삼성카드처럼 지배구조 측면에서 중요도가 떨어지고 존재감이 미미한 계열사가 어떻게 될지 말이 많다. 삼성증권의 경우 기업금융(IB) 부문에서 외부 출신 인사가 삼성전자로 이동하고, 다시 외사에서 수장을 데려오는 등 변화가 있었지만 '외사를 선호하되 그룹에서 필요로 하면 이동'하는 정도 이상의 인식은 없는 편이다" (IB업계 실무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가지고 있는 이상 금융 계열사를 어떻게 정리할 수도 없고, 아래 계열사 역시 그다지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룹에서도 크게 관심이 없는 눈치다. 삼성생명을 어찌할 수 없는 이상 밑에 계열사에 대한 계획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컨설팅 업체 파트너)
"금융 계열사의 경우 기대할 수 있는 게 중간 지주회사 정도인데 이건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신규 사업 진출도 제한돼 있고 내년 IFRS 17 도입도 예정돼 있어 이 부회장이 복귀한다고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당분간 내실을 다지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예상된다" (금융사 관계자)
"지난해 정치권에서 사면이냐 가석방이냐 갑론을박이 한창일 때 계열사 사장단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전해졌다. 이 부회장 거취 문제가 정치권에서도 중요한 변수인 만큼 이해는 가지만, 달리 보자면 삼성그룹 계열사가 지난 5년 동안 자리보전에만 연연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증권사 임원)
지배구조 개편설과 함께 거론되는 존재감 미미한 'TF 체제'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사업지원·금융경쟁력 제고·EPC 경쟁력 강화 등 3개 TF 체재가 출범했는데 사업지원 TF가 계열 전반을 관리한다는 것 외에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다. 그룹에선 민감하게 받아들이지만 시장에서도 사업지원 TF가 과거 미전실을 대체하는 조직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 사업지원 TF 마저 삼성그룹의 정중동 행보가 길어지면서 유명무실화했다는 평가가 대부분"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
"컨트롤 타워 신설은 검토를 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는 사법 리스크 때문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했고 컨트롤 타워를 신설하면서 경영 운신의 폭은 넓힐 수 있다. 그러나 지배구조 개편 관련해서는 여전히 논의 중이고 특별히 가시화한 건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의결권자문사 대표)
"인수합병(M&A) 성과를 두고선 삼성전자가 9조원에 인수한 하만과 현대자동차그룹이 1조원에 산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종종 비교된다. 하만은 시장을 멀리 내다본 거래로 평가하는 시각이 잘 없다. 삼성이 보스턴 다이내믹스 같은 딜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냔 얘기가 많았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연구원)
"빅딜은 어차피 못할 것. 삼성그룹 사업지원 TF에서도 M&A를 하려면 결국 이 부회장이 재가를 해야 하는데, 너무 신중한 것도 있고 밑에서 올라오는 안건도 거의 물리치고 있다. 할 거면 경영권을 가져오는 바이아웃 딜이어야 하는데 샀다가 가격이 떨어질까 걱정이 많은 것도 있고, 가격이 오르면 오른 대로 부담이고 계속해서 조사만 하면서 정중동하는 모양새다. 이 부회장이 사면복권됐다고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여전하다" (B M&A 자문사 임원)
"삼성이 어쩌다가 M&A를 예고하는 지경에 이르렀냐는 지적에 굉장히 공감됐다. TF 체제도 이 부회장 거취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그냥 현상 유지하는 것 외에 특별히 다른 목적의식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복귀한다고 하더라도 선대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사실상 5년을 허송세월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대형 법무법인 고문변호사)
더 큰 정치판에 풀려난 이 부회장…큰 기대감 없는 시장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계 전반 변화 기대감이 컸고 삼성도 이 부회장이 사면복권되면서 어느 정도 덕을 보게 됐다. 그러나 현재 미중 갈등 국면에서 국내 대기업은 국제 정치 논리에 휘둘리게 된 상황. 과거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요구된 메시지가 '비메모리 1등' 비전이었다면 지금은 국제 갈등 한복판에서 강대국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놔야 하게 됐다" (대기업 임원)
"시대가 바뀐 것도 있겠지만 여론에서 이 부회장이 식당 종업원에게 얼마간의 팁을 줬다는 일화 등만 조명되는 걸 보면 심경이 복잡하다. 여러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지만 이 부회장이 복귀한다고 해서 당장 삼성이 큰 변화를 보이거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계열사에서도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오기 전까진 계속 눈치 보는 상황이 지속되지 않을까" (증권사 산업 담당 연구원)
입력 2022.08.25 07:00
Inch Forward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2년 08월 2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