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강석훈 회장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 진행
강석훈 회장, '부산 이전' 명분 설명하는데 공들여
정부 과업 수행 성적 중요…대외 소통 행보도 주목
이동걸 전 회장, 뚝심 있었지만 대외 소통엔 의문
-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가 14일 열렸다. 강 회장은 지금 한국 상황을 보면 ‘위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며, 국가의 잠재 성장력을 높이는 것이 산업은행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했다. 구조조정을 신속히 마무리하고 혁신산업 지원에 힘을 쏟겠다 했다.
여기까지는 전임 이동걸 회장이 강조하던 것과 비슷하다. 이 전 회장도 구조조정 완수, 혁신성장 기반 구축, 산업은행 경쟁력 제고 등 세 가지 과제를 꼽았었다. 정권이 바뀌고 회장이 바뀌어도 나라를 둘러싼 환경은 그대로거나 악화되니 경영 목표가 달라지기 어려웠다.
다만 강석훈 회장의 첫 인상은 전임 회장과는 사뭇 달랐다.
이동걸 전 회장은 학자 출신이다. 진보 성향의 경제 학자로 김대중 정부, 참여정부 때부터 정부에서 일했다. 2017년 산업은행 회장 자리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의 ‘금융 실세’라는 평가가 따랐고 연임에도 성공했다. 자기 생각은 확실했지만 대외 소통에는 다소 박했다. 업무 처리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하거나 여론이 나빠져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었지만 자신의 의지를 밝히거나 아쉬움을 토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언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어투는 훼방을 놓지 말라는 느낌이 강했다. 아시아나항공 빅딜과 관련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만났다는 보도에 대해 법적조치 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동걸 회장 재임 기간 소기의 성과는 있었다. 산업은행의 신산업 지원 성과가 많았다. 금호타이어, 한국GM, 대우건설 등 굵직한 구조조정은 이 전 회장의 완고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전 회장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미온적인 일처리를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학자답게 역대 회장 중 가장 기업과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가 있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도 경제 전문가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땄다. 18대 대선에서 경제 공약을 세우는 데 기여했고, 지난 대선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 교사’로 활약했다. 이런 배경을 안고 산업은행 회장으로서 중책을 맡았다.
강석훈 회장의 산업은행에 대한 시각은 전임 회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지금 산업은행은 부산 이전이라는 큰 소용돌이에 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보다 본점을 옮기게 되느냐가 최우선 현안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부산 이전과 관련된 질문들이 쏟아졌다. 강 회장은 왜 이전을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데 공을 들였다.
강석훈 회장은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의 제조업 기지가 우리나라 경제 고도성장의 첨병이었지만 4차산업 혁명이 도래하면서 그 중심지가 수도권으로 몰리게 됐다고 했다. 우리 경제가 균형적으로 발전하려면 부울경을 4차산업 기지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도권과 부울경을 경제 발전의 두 축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강석훈 회장은 부산 이전에 대해 “아무리 산업은행 회장이라도 국가 최고 책임자들이 결정한 것을 뒤집을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직원들과 이에 대해 진솔하게 대화하겠지만 부산 이전이라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국책은행 수장으로선 정부 안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면 위에서 내려온 숙제를 잘 풀어야 한다. 강석훈 회장은 정치인이기도 하다. 19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했지만, 20대와 21대에선 잇따라 공천 고배를 마셨다. 정치권에 다시 입성하기 위해서라도 부산 이전이라는 트로피가 필요할 수 있다. 이런 배경 탓에 강석훈 회장이 주어진 임기 3년을 굳이 채우려 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강석훈 회장은 이후 벌어질 이해상충 문제도 풀어야 한다. 본점 이전은 부산 경제에 도움이 되겠지만,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은 지역 민심의 이반을 불러올 수 있다. 강 회장은 “산업은행이 서울에 있다고 서울만 커버하는 것이 아니듯 부산으로 내려간다고 부울경만 챙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반대로는 지금 서울에 남아 있어도 부울경 지원이 가능하다 볼 여지가 있다. ‘매일밤 잠을 못이룬다’는 호소가 직원들을 감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강석훈 회장이 전임 회장보다는 적극 소통행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전임 회장은 이름이 나는 것에 관심이 없었지만, 정치인은 이름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날 간담회를 마친 후 강 회장은 취재진을 하나하나 만나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이어갔다. 전임 회장 명함에는 휴대폰 번호가 없었지만, 강석훈 회장의 명함엔 담겨 있다는 점도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