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경영 과제 위해 2030년까지 7조원 이상 투자 예정
시장에선 '일단 환영' 하지만 실천 방안 부족하다 지적도
Scope 3 제외, 애플 등 고객 목표 연도와의 괴리도 문제
이재용 부회장 부재에 지연된 '선언'…내부서 갑론을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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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삼성환경선언’ 이후 30년만에 ‘신(新)환경경영전략’을 발표했다. 시장에선 글로벌 기업이자 국내 1위 기업의 RE100 동참 선언에 반색하는 분위기다. 다만 시장 흐름에 비해 '한 발 늦은' 발표인 점을 감안하면 구체적 실천 방안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해외 투자자들은 삼성이 어떻게 에너지 전환을 실행할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15일 삼성전자는 “삼성의 혁신기술로 기후위기 극복에 동참한다”며 ‘신(新)환경경영전략’을 발표하고 삼성의 경영 패러다임을 친환경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이 환경 관련 경영 정책을 발표한 것은 1992년 ‘삼성환경선언’, 2009년 ‘녹색경영비전’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 신환경영전략의 핵심은 삼성전자의 ‘RE100’ 이니셔티브 가입이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으로, 애플·구글 등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은 물론 SK,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들도 앞서 동참한 바 있다. 국내외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언제 RE100을 선언할 지 주목해왔다.
삼성전자는 RE100에 동참해 온실가스 직접배출 감축에 투자를 확대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50년까지 직∙간접(Scope1∙2) 탄소 순배출을 제로화하는 방침이다. 2030년까지 DX(디바이스경험)부문부터 탄소중립을 우선 달성하고 DS(반도체) 부문을 포함한 전사는 2050년이 기본 목표다.
삼성전자는 전력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 간접배출(Scope2)을 줄이기 위해RE100에 가입했고, 2050년까지 사용 전력 재생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우선 5년 내에 모든 해외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활용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서남아와 베트남은 2022년, 중남미 2025년, 동남아∙CIS∙아프리카는 2027년까지다. 이미 재생에너지 목표를 달성한 미국, 중국, 유럽의 경우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직접 체결하는 재생에너지공급계약(PPA)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DX 부문은 국내외 모두 2027년까지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을 추진한다.
삼성전자는 공정가스 저감, 폐전자제품 수거 및 재활용, 수자원 보존, 오염물질 최소화 등 환경경영 과제에 2030년까지 총 7조원 이상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는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에 필요한 비용을 제외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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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선 삼성의 RE100 선언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최근 한국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답보하는 상황에서 나온 발표다. 국내 에너지 전환 정책을 가속화하고 에너지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측면에서라도 이번 삼성전자의 선언이 갖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삼성의 이번 선언이 다소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재생에너지 100%를 선언하고 이행한 주요 글로벌 기업에 비해 늦었다. ‘상징적 의미’는 있지만 결국 ‘얼마나 빨리’, ‘어떻게’ 탄소배출을 줄여갈 것인지 구체적인 로드맵은 빠져 있다. 드러난 것만 보면 삼성의 의지가 강하다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Scope 3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탄소중립'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그린워싱’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스코프 3(Scope 3)는 직간접 탄소배출을 제외한 모든 탄소배출을 뜻한다.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렇다보니 해외 투자자들은 삼성의 선언에 ‘무조건 환영’하기보다 이를 계기로 어떻게 실천해가는지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르웨이 최대 연기금 KLP 책임투자 대표 키란 아지즈(Kiran Aziz)는 “삼성전자의 이번 RE100 설정 결정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긴 하나, '2050년'이라는 모호한 목표는 주주들에게 더 많은 질문을 불러 일으킨다”며 “삼선전자가 태양광, 풍력 지열 등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건지, 한국 정부의 정책 이행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할 건지 등 질문이 생기는 가운데 재생에너지로의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삼성전자는 이번 선언을 시작으로 선언을 빠르게 이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라인을 계속 증설하면서 전력사용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핵심 반도체사업장이 자리잡은 한국은 재생에너지 공급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아 ‘친환경 경영’ 전환에 어려움이 크다는 입장이다. 2021년 기준 삼성전자의 전력 사용량(25.8TWh)은 글로벌 IT제조사 중 최대로, 서울시 전체 가정용 전력 사용량의 1.76배에 달한다.
지금까지 국내 5대 그룹(삼성·현대차·SK·LG·롯데) 중 탄소중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은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했다. 이에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의 기금운용자회사인 APG는 올초 삼성전자에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경쟁사들도 같은 어려움이 있지만 발빠르게 환경 정책을 펴고 있다. 구글, 애플 등 ICT 기업들은 이미 일정 수준의 RE100을 달성한 상태다. 파운드리 1위 대만 TSMC는 2020년 RE100에 가입한 이후 바로 대만정부와 PPA를 체결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바 있다. TSMC는 2017년 과학 기반 감축 목표(SBTi)에 동참했다. SBTi는 장기 목표만 선언하는 RE100과 달리 과학기반으로 Scope 1,2,3 모두에서 실질적인 탄소 감축 목표를 수립한다.
삼성의 환경경영 ‘선언’이 느려진 데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 영향도 있었을 것이란 평이 많다. 삼성전자에서는 RE100 가입 등 관련 준비 작업을 했지만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사안인 '에너지 전환'을 총수 없이 결정할 수는 없었다. 사업 부문, 사업장마다 입장이 다르니 내부에서도 이견이 많았다. RE100이 거론되던 초기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박학규 삼성전자 사장·최윤호 삼성 SDI 사장 등이 모여 격론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이 국내외 활발한 경영 행보를 이어가는 가운데 이번 신환경경영 선언이 '치적 만들기' 수준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 그룹의 이미지가 아닌 기업의 장기 경쟁력과 기업가치 문제다. 삼성전자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상대적 경쟁 우위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선언을 시작으로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기금 APG 아태지역 책임투자 총괄이사는 “삼성전자는 탄소 배출량을 유의미하게 줄여나갈 방안에 대한 선언을 미뤄왔고, 이러한 삼성전자의 태도가 지난 몇 년간 APG와 같은 장기 투자자에게 상당한 우려를 안겼다"며 "이번 RE100 가입은 삼성전자 총수 일가를 포함해 고위 경영진의 최종 의사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앞으로도 과감한 리더십을 발휘하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내건 탄소중립 계획도 중요하지만 바이어들의 목표 연도 역시 신경을 써야 한다. 애플, BMW, 폭스바겐 등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주요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에 대한 요구 수위를 나날이 높이고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등 B2B(기업 간 거래) 매출이 43%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최대 납품처 중 한 곳인 애플은 공급 업체를 대상으로 2030년까지 제조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전력 100% 사용을 요구하고 있어 이번 삼성전자의 목표 연도인 2050년보다 훨씬 앞선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