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가뭄의 시작…돈 줄 죄는 모태펀드, 이제야 진짜 실력 드러낼 VC
입력 2022.09.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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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수영장에 물이 빠져야 누가 발가벗은 채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자본시장을 가득 채웠던 유동성은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제도권 금융기관들은 재무건전성을 다시 돌아봤고 기업들은 현금확보가 최우선 과제가 됐다.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을 바라보던 한국형 스타트업의 일부 성공(?) 사례들은 투자자들의 오답노트가 될 처지에 놓여있다.

      자본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잡은 사모펀드(PEF) 운용사들도 이젠 투자처 물색보다 펀드레이징 고민을 해야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무엇보다 ‘유동성의 힘’에 전례없는 호황을 누렸던 벤처캐피탈(VC) 운용사들은 생존의 기로에 섰다.

      한국형 유니콘 기업 육성을 내걸고 자금을 풀었던 정부는 돈 줄을 죄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VC업계 앵커(메인)출자자인 모태펀드는 나날이 늘어가던 출자 규모를 내년부턴 점차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어찌보면 물이 빠지고 거품이 걷히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특히 ‘공적 자금’에 의존도가 높았던 국내 VC 생태계엔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정부 주도로 VC업계의 성장을 이끌어 온 지 15년이 훌쩍 넘은 시점. 그 동안 VC업계의 건전한 투자-회수의 생태계가 마련됐는지 논의를 접어두고 이제는 자의반타의반으로 민간 부문이 모험자본으로서 주도권을 잡아나가야하는 때가 다가왔다. 이 과정에서 돈의 맛에 취한 또는 진짜 실력을 갈고 닦았던 운용사들의 면면이 낱낱히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모태펀드 출자규모 축소 가시화

      "벤처투자시장이 성숙 단계에 이르렀다는 판단이다. 확장재정에서 건전재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모태펀드 규모도 줄어드는 것이다. 지난 5년간 출자규모가 너무 컸기 때문에 기저효과로 두드러져 보이는 측면도 있다. 민간자본에서 벤처펀드 출자시 세제혜택 등의 유인장치 등을 마련하는 방안을 협의중이다"(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

      "모태펀드 예산안은 국회에서 통과해야 확정한다. 연말까지 업계 목소리를 반영해 (상향)조정하는 방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 기조와 맞는 사업에 대해선 출자가 계속 진행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모태펀드의 규모가 줄면 선정하는 위탁운용사의 수도 줄겠지만 생존의 문제와 연결짓긴 어렵다. VC운용사들도 민간자금이 들어와야하는 것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시기에 대해선 업계 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한국벤처투자 관계자)

      "이제 정말 긴축의 시대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어려운 시기에 정부가 손절 타이밍을 봤다는 말도 틀리지 않은 것 같다"(P인베스트먼트 투자관계자)

      "정부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비상장투자를 한다고 수익이 나질 않는다는 것을. 우리도 올해는 비상장투자는 거의 하지 않고 인프라, 선순위 위주로 투자를 검토 중이다"(C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

      모태펀드 출자가 줄어들면 가장 영향을 받을 주체는?

      "모태펀드 의존도가 높은 중소형사들이 타격이 클 것으로 본다. 투자자가 펀드를 만들지 못하면 스타트업의 투자유치도 어려워지는 당연한 수순이 될 것이다"(L인베스트먼트 투자심사역)

      "전반적으로 투자유치가 어려운 가운데 초기단계보단 밸류에이션 부담이 높은 후기 기업들이 자금유치에 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본다. 초기기업들은 밸류부담이 적어 최소 5년 후를 기대하는 투자자들에겐 매력적으로 비칠 수 있다"(T인베스트먼트 투자심사역)

      "시리즈A 또는 B단계의 기업들이 모태펀드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 모태펀드 출자를 받지 못하면 투자하기 어려우니 해당 단계의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심리적으로라도 투자를 줄이던지 펀드자금을 당분간 보유하고 있던지, 기존처럼 활성화 할 때까지 기다릴 것으로 전망한다"(H엑셀러레이터 실장급 인사)

      VC업계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투자기준에 따른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전망된다. 애당초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지 않고 안정적이고 기술력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기조가 있는 하우스는 큰 타격이 없다"(L인베스트먼트 투자심사역)

      "일반적으로 투자 성과를 내는 명성이 있는 곳은 민간LP(회사 또는 개인) 또는 계열회사 등으로부터 출자를 받는 것이 어렵지 않다. 상대적으로 중소형 투자사가 민감할 수 있다. VC운용사, 엑셀러레이터 등의 옥석가리기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H운용사 실장급 인사)

      "모태펀드의 예산이 줄더라도 루키리그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두드러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한국벤처투자 관계자)

      공적 영역에서 민간 영역으로 넘어가는 단계…현실성이 있나?

      "모태펀드 규모가 줄어드는 건 정상화의 과정이다. 정부 개입은 곧 투자금 원천이 세금이란 것인데 원칙적으로 맞지 않다. 이제껏 모태펀드는 정책적 목적에 따라 중소기업을 육성시켜왔는데  (VC시장은) 정책적 목적이 아니라 경제성에 따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한국 벤처시장은 절대 민간자금만으로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기금 등 여러 금융기관이 출자를 하지만 정부와 비교하면 적은 수준이다"(OO인베스트먼트 임원급 관계자)

      "중기부의 판단과 달리 한국 벤처시장은 성숙단계가 아니다. 민간자금으로만 형성할 수 없다. VC설립하려면 자본금이 20억원 필요한데 이 돈을 다 쓰고 나면 평균 8년동안 버틸 곳이 없는 운용사가 대다수이다. 이 때문에 정부자금 끌어들여 생존률을 높이고 투자 활성화를 유도했는데 앞으로 투자 규모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H엑셀러레이터 실장급 관계자)

      "정부자금이 트리거 역할을 하면서 민간자금을 견인하는 역할도 있는데 모태가 줄어들면서 걱정이 많다. 세제혜택을 언급하긴 했지만 새로운 이슈는 아니다. 현재는 일부 연금, 공제회 등만 세금 혜택을 보는데 소위 말하는 기관투자자나 일반법인들이 조합에 출자하면 혜택이 없다"(한국VC협회 관계자)

      민간부문에서 자금유치를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펀드의 정체성이 조금씩 더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출자사업 자체에 관심을 가진 기업에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선 좀 더 구체적인 타케팅이 필요하다"(Q벤처스 투자심사역)

      "정부 차원에서 민간 주도로 유도하는 방안들이 많다. 세제혜택도 있고 R&D와 연계하는 정부자금 형식도 있다. 또 중기부 소관의 VC 출자사업 중 하나인 팁스나 스케일업 팁스의 정부 예산은 확대되고 있다"(한국VC협회 관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