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공채 더해지며 미담 쏟아져
그룹 이끌 확실한 메시지는 안 보여
非전자 부문은 사실상 개점휴업중
"JY, 손댈 수 있는 게 없다" 평가
삼성전자 대형 M&A 기대감도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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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현장 경영의 보폭을 넓혔다. 마치 콘서트 투어를 하듯 국내외 사업장을 돌며 임직원들과의 접점을 늘렸다. 말 그대로 '아이돌' 급 행보를 보였고, 그 과정에서 '미담'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시장에선 피로감이 읽히기도 한다. 삼성전자, 더 나아가 삼성그룹이 처한 대내외 환경이 갈수록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는데 이 부회장에게서 그룹을 이끌 메시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회장 승진 이후 나올 수도 있지만 '판'을 바꿀 획기적인 메시지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재용 부회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경영 복귀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R&D(연구개발)단지 기공식 참석, 계열사의 사내 어린이집 방문에 이어 한국을 찾은 세계적 인사와 만났다. 멕시코, 파나마, 영국 등 해외현장 경영 행보를 이어가는데 그치지 않고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활동도 하고 있다.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기념 촬영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 추석 명절 땐 다자녀 가정과 장기 해외 출장 직원 가족들에 선물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직원들 사이에서 '재드래곤'으로 불리는 이 부회장의 인기는 사업장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대규모 공채 계획도 발표했다. 5대그룹 중 유일하게 공채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삼성은 올해 지난해보다 20% 늘어난 1만6000명 대규모 채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공채 규모만 50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사실상 전 계열사가 참여한다. 이 같은 고용 확대 추세에 힘입어 삼성 임직원 수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복권된 지 한 달도 안 돼 이 부회장의 존재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이 임박했다고 보고 있다. 내부에선 임직원들과의 스킨십을 통해 입지를 다지고 조직을 안정화하고, 외부에선 삼성그룹의 사회 공헌을 강조하면서 이미지 개선 작업이 한창이다.
문제는 이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더라도 현재 삼성전자와 그룹 계열사가 처한 부정적인 사업 환경을 단숨에 바꿔놓을 만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우선 삼성전자의 경우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의 입지가 애매해지고 있다. 지난 30년간 반도체 시장은 미국, 한국, 일본, 대만의 철저한 분업 체제로 돌아갔는데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이 근간을 흔들었다. 삼성전자는 양국 중 한 곳만 선택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중국 시장을 버려야 한다면 미국 시장엔 공급망을 다시 깔아야 한다.
반도체 사업은 신규 진입이 거의 불가하지만, 선두주자 역시 계속 페달을 밟아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매년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수십조원 단위 자금을 쏟아부으면서도 이익을 남길 수 있게 고마진을 이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미국 정부를 중심으로 삼성전자에 쏟아지는 메시지는 수익성 대신 공급망 재편 비용을 부담하라는 쪽에 가깝다. 이 부회장이 복권됐다고 해서, 또 미국으로 날아가 협상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판 흔들기에 핵심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경쟁사들도 비슷한 조건으로 참여하다 보니 삼성전자의 기술이나 노하우가 표준으로 자리잡는 등 위상 자체가 올라가는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라며 "이 부회장 부재 기간 동안 기술 경쟁력 우위가 상당 부분 훼손됐는데, 사실상 정중동 행보를 보여왔던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 복귀로 과거와 같은 초격차 전략을 내보이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곧 방한할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을 만나 ARM 인수를 타진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예상 인수가는 50조~70조원 수준이 언급되는데, 상반기 기준 삼성전자 현금성 자산이 125조원에 달해 인수가 불가능하진 않다. 그러나 설비투자 부담이 매년 커지는 상황에서 불리한 환율을 감수하며 인수를 완주할지 회의적인 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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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지난 5년 동안 가격 문제로 상당수 기업의 인수를 검토만 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귀 직후 M&A가 이뤄진다면 모든 책임과 수혜는 이 부회장 몫이 된다. 앞서 ARM 인수에 실패한 엔비디아와 비교해 구체적 청사진도 제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대형 M&A를 성사할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ARM이 보유한 코어 IP(설계자산)의 로열티 수익성 자체가 그리 높은 것도 아니고 팹리스들엔 일종의 공용자산 격이라 파운드리 사업에 미칠 영향도 우려된다"라며 "과거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며 인수한 하만도 이렇다 할 시너지 없이 5년간 방치된 전적이 있고 경쟁사 반발도 예상돼 ARM 인수가 현실화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 부재 동안 삼성'후자'의 존재감은 더 옅어졌다. 늘어난 것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일 뿐,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 그룹 계열사는 없는 편이다. 장기간 부진의 늪에 빠진 삼성중공업의 경우 사업 정리에 따른 실익마저 불투명하다. 그룹 금융 계열사 역시 태스크포스(TF) 체제 하에서도 시중 금융지주보다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정리하기 위한 대내외 여건이 마련되기 전까진 손댈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거 화학사들을 한화와 롯데에 매각할 때는 직원들에게 위로금을 주고도 남았을 정도로 덩치가 큰 거래였지만 삼성중공업 같은 곳은 마땅한 인수 후보도 없고 남는 돈도 없을 것"이라며 "고용 문제도 있다 보니 복권된 지 얼마 안 된 이 부회장이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 삼성전자에 쏠린 비효율적인 그룹 사업 구조를 당분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대내외적으로 삼성그룹이 처한 상황은 이재용 부회장이 손을 댄다고 해서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큰 결정을 책임질 수 있는 권한이 부활한 것은 사실이나, 사회적 가치와 환경 문제까지 다뤄야 하는 만큼 선대 회장들처럼 '명료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재계 1위 그룹을 이끌어야 하는 이 부회장이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은 더 커켰다.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사법 리스크가 나름의 변명이 될 수 있었지만 이젠 경영 능력을 냉정하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