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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사모펀드ㆍ벤처 운용역…외국계 증권사 임원…회계사…대형 로펌 변호사…컨설팅펌 직원 등.
자본시장 인력풀은 '전문성ㆍ고임금ㆍ과다업무'로 요약된다. 고도화된 지식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모두가 부러워할 높은 연봉을 받지만 그에 걸맞는 성과를 내라고 매일매일 압박감에 시달린다. 또 그 어느 곳보다도 S급ㆍA급 인재와 그렇지 않은 임직원에 대한 '대놓고 차별'이 용인된다.
지난 몇년간 저금리ㆍ과다유동성은 이런 자본시장 잡마켓 전반을 흔들었다. 스타트업ㆍ벤처에 쏟아진 조단위 현금은 '경력 몇줄'만 있다면 쥬니어 직원을 수억원 주고 데려가는 풍토를 양산했다. 불과 2~3년차 대리ㆍ과장급 직원이 몇억씩 연봉을 받으며 스타트업으로 영전하자, 10년~20년 자리를 지키며 '고인물' 취급을 받던 임원들은 박탈감을 호소했다. "언제 어디로 나갈지 몰라 항상 직원 눈치를 봐야한다", "업무 트레이닝은 부족한데 일할 사람이 없으니 그저 연봉만 올라간다".
이들의 걱정이 보편화될 무렵. 2022년 하반기. 갑자기 지진이 멈췄다.
"이제 안나갑니다"
"보통 한해 중간 보너스를 받고나면 젊은 회계사 수십명이 갑자기 사표를 쓴다. '이직할 곳'이 정해져서 그만둔 이들도 있지만, "일단 좀 쉬자"라는 마인드로 그만둔 회계사도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3개월 정도 쉬다가 현직에 돌아와도 '회계사 인력수요'가 스타트업ㆍVC등에서 넘쳐나니. 갈 곳이 차고 넘친다고 판단해서였다. 그런데 올해? 퇴사자가 갑자기 1/10로 줄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만큼 잡마켓이 '차갑다'라고 판단해서다" (대형 회계법인 임원)
"글로벌 IB에서 과거 네이버ㆍ카카오로 인력 이동이 극심했다. 일단 이들 회사 계열사들이 워낙 많으니까. 쥬니어들은 사모펀드(PE)로, 시니어들은 스타트업 C레벨로 많이 이직했다. 저와 같이 근무하던 이들도 업계에 거의 안남았다. 그런데..경기가 안좋아지니까 안나간다. 그리고 지금 글로벌에서는 오히려 '감원'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대형 외국계 IB임원)
"지금은 대형 로펌까리 '인력 빼가기' 경쟁이 서로 공격적이지는 않다. 신입채용은 다들 비슷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특이하게도 변호사들의 '퇴사율'이 최근 눈에 띄게 낮아졌다. 그간 스타트업이니 뭐니 여기저기 열심히들 변호사들이 나갔는데. 워낙 상황이 안 좋아졌으니. 이미 그쪽으로 이직한 분들도 좀 당황하지 않을까" (대형 법무법인 A사 파트너 변호사)
"사람은 계속 뽑아야 한다. 주니어, 파트너 할 것 없이 어쨌든 계속 나갔다. 그런데 아무래도 작년보다는 올해 회사를 떠나는 인원이 크게 줄었다" (대형 법무법인 B사 파트너 변호사)
"회계사들이 회계법인에서 받는 연봉이 많이 높아졌으니까 과거에 비해 잘 안나온다. 그 연봉 베이스로 이직을 하려고 해도 외부에서 연봉수준을 맞춰줄데가 많지 않다. 그나마 PE나 VC정도인데, 대기업은 아예 회계사 연봉 맞춰주기 어렵다. 다만 조금 바뀐게 이들이 이직 하는 과정에서도 '좋은 PE', '좋은 VC'를 찾는다. 시장에서 각 회사들에 대한 정보가 보편화됐다. 이상한 회사(?)에 대해서는 서로들 다 알고, 이런 곳은 아무리 연봉을 올려줘도 직원모집이 안된다" (대형 VC 직원)
"그래도 뽑습니다. 다만 경제경영 전공자는 별로… 이공계 출신이 좋습니다"
"올해 쥬니어 직원들을 컨설팅펌이나 IB에서 여러 명 뽑았다. 아예 애널리스트로 뽑았는데 바로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인력들이다. 글로벌PE들의 한국시장 투자에 대한 기대감과 필요성이 부각된 것은 사실이다." (글로벌 사모펀드 A사 고위임원)
"글로벌PE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한국투자에 대해 '환율 효과'를 누리고 있다. 여기에 상당수 글로벌PE들이 홍콩에서 철수해 싱가폴로 지사를 옮기고, '그레이트 차이나'에 대한 장기투자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극히 폐쇄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막강한 소프트웨어 파워가 있다. 스타트업 몰락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만한 투자처도 없다. 그러다보니 우리도 올해 다수의 쥬니어를 뽑았다" (글로벌 사모펀드 B사 대표)
"과거에는 경제ㆍ경영 전공자, 혹은 회계사 출신들 수요가 대부분이었고, 지금도 이 분위기는 그대로다. 하지만 투자처가 '테크'(Tech)베이스로 흘러가고 있다. 산업과 기술트렌드 전반을 이해하지 못하면 앞으로 투자처 못 찾아낸다. 그러다보니 우리도 수년전부터 이공계 석사ㆍ박사들을 채용했다. 포트폴리오 관리는 물론, 투자처 전반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 이런 흐름이 수년간 이어지니 사내 '문화'가 바뀌었다. 토론 수준이 크게 올라갔다" (국내 대형 PE 대표)
"업계마다 다르다. 가상자산 부분은 아직 직원 수요가 꾸준하다. 이 부분에 공인된 전문가 집단이 없으니 계속 인력 유치를 한다. 경력자 뽑기 너무 힘든 시장이어서 아예 인턴급 직원을 뽑아서 사내에서 키우자는 기조다. 다만 뽑아도 어설프게 경제ㆍ경영학 전공했던 분들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에서 신산업을 담당했던 분들이 선호된다. 연구를 많이 한 분들이어서 이해도가 높다" (블록체인 스타트업 임원)
"컨텐츠 부분은 아직 직원 수요가 있다. IT기업들은 대대적인 채용 분위기가 줄었지만 한국 컨텐츠 부문은 투자가 늘었다. 국내 컨텐츠에 대한 수요가 워낙 많고 잘되고 있어서다. 다만 대기업 출신보다는 실무적인 업무경력자들, 특히 한국은 프리랜서 출신들 종사자들이 많다" (대형 OTT 회사 임원)
전문가 채용시장은 "한달에 수십일씩 야근하는 고강도 지식노동의 대가로 모두가 부러워할 고연봉과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명제에 기반한다. 그러나 수년간 스타트업 붐에서 비롯된 '연봉 인플레이션', '인력수급 불균형'은 이 명제를 뒤흔들었다. 선배들처럼 밤새우고 일하지 않아도 더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이직할 자리가 생겼는데, 회사 인정을 더 받겠다고 고군분투할 동기가 줄었다.
최근 이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졌지만…그럼에도 불구, 이전 세대의 '과다 몰입노동'과 '일 중심의 삶'에 대한 반감은 돌이킬수 없는 대세가 됐다. 회사에 무조건 충성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몇억원 더 받고 스타트업으로 갑니다"라고 호기롭게 사표를 던질 기회도 사라졌다. 남은 귀결점은? 일도 적당히, 대우도 적당히로 타협하는 이른바 '조용한 사직' (Quiet Quitting)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고급인력 중심의 자본시장 전문가 집단에서도 '휴먼리소스 관리'가 향후 최대 화두가 될 수도 있다.
입력 2022.09.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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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2년 09월 21일 13:5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