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채권과 달리 자금용도 제약 없어 “발전사·정유사 관심↑”
ESG 목표 미달성시 금리 스텝업…해외에선 발행 늘고 있어
금리 불확실성 및 발행사-투자사 정보 비대칭…기관 수요 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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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9월 말 지속가능연계채권(Sustainability-linked Bonds; SLB) 도입을 앞두고 발행사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첫 발행사례는 시장의 높은 관심을 받아 부담스러워 눈치만 보는 분위기다. 채권투자자들은 크게 관심이 없는 모습이다. 핵심성과지표(KPI) 달성 여부에 따라 금리가 바뀌는 등 금리 불확실성이 높고 시중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채권이 많아 굳이 SLB를 담을 유인이 적은 탓이다. SLB 도입을 하더라도 ESG채권처럼 시장이 활성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국거래소는 SLB 도입을 위한 관련 규정 정비와 시스템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9월 말부터 사회책임투자(SRI) 채권 세그먼트에 SLB 등록을 개시할 계획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SLB 등록 신청을 받을 수 있게 9월 말을 목표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며 “발행 활성화를 위해 사회책임투자채권 전용 세그먼트에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신규상장수수료 및 연부과금을 면제하는 등의 인센티브도 부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LB는 발행기관이 ESG와 관련한 핵심성과지표(KPI)와 지속가능성과 목표치(SPT)를 설정하고, 달성 여부에 따라 금리 등 재무적·구조적 특성이 변동될 수 있는 채권을 말한다. 기존 ESG채권은 적격 프로젝트가 있어야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것과 달리 SLB는 온실가스 감축 등 ESG 목표만 적절하다면 적격 프로젝트가 없어도 발행할 수 있다.
2019년 유럽에서 처음 등장해 발행이 이어지고 있다. 2019년 이탈리아 석유회사 에니(Enel)가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15억달러 규모의 SLB를 발행했다. 청정에너지 발전 용량 비중을 46%에서 2021년까지 55%로 높이는 목표를 제시하고 미달성 시, 이자율을 2022년부터 0.25%p씩 높이겠다는 조건도 붙였다. 샤넬은 영업 밸류체인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을 KPI로 제시하고 SLB를 발행한 바 있다.
발행 규모도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SLB 채권 발행량은 547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5.6% 늘어났다. ESG채권 발행에서 SLB가 차지하는 비중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제자본시장협회(ICMA)는 작년 전체 발행시장에서 SLB가 차지한 비중은 9~10%였으며, 올해에는 16%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내에서 SLB에 관심을 보이는 곳은 주로 ESG채권 발행요건(자금사용목적)을 충족하지 못해 발행하지 못했던 기업들이다. 원자재, 발전사 등 탄소배출량이 높은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대형증권사의 DCM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 중심으로 친환경 지속가능경영을 발표하고 RE100 가입 등을 진행하고 있어 본 건과 관련된 내부 관심은 많이 있다”며 “특히 원자재, 소비재, 물류 영위기업 중심으로 먼저 발행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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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발행 사례가 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SLB 특성상 KPI를 설정할때, 재무구조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의사결정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 첫 발행은 시장의 관심을 많이 받는 데다, KPI 달성에 실패할 경우 평판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심은 높은데 ‘눈치싸움’ 중인 발행사와 달리 채권투자자의 투심은 냉랭한 분위기다. 유럽에서 SLB 발행이 증가한 것은 시중에 ESG채권 물량이 적은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유럽과 달리 한국은 ESG채권 투자 수요에 비해 공급 물량이 많은 편인데, KPI에 따라 금리가 바뀌어 불확실성이 높은 SLB를 담을 유인이 없는 것이다.
채권운용 담당 기관투자자는 “일반적인 채권투자자들은 고정금리 채권을 주로 투자하고 예측가능한 흐름이 생겨야 하는데 SLB는 KPI 달성에 따라 금리가 달라지니 예측 가능하지 않다”며 “국내는 유럽과 달리 ESG채권을 의무적으로 담아야 하는 투자자 풀에 비해서 ESG채권이 많기 때문에 굳이 SLB를 담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SLB에 붙은 조건이 ESG에 부합하는지 투자자가 확인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투자를 주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K택소노미도 마련되지 않아 ESG개념이 모호하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발목을 잡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ESG 채권이 아니기 때문에 조달된 자금 사용처의 ESG 여부가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목표 달성 여부에 대해 채권 투자자가 객관적으로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가 올해 트럭을 모두 전기트럭으로 바꾸는 자금집행 계획을 세워 자금을 조달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A 회사가 추가로 자금 조달을 위해 '전기트럭 교체를 통한 탄소배출 감소'를 KPI로 제시하고 SLB를 발행하고, 이를 ESG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더라도 이를 회사 내부만 알지 투자자나 신평사 등 외부에선 알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이 기관투자자는 “발행사에서는 관심이 꽤나 높은데 연기금이나 공제회 등 투자자들은 발행금리나 조건 등을 따져보고 투자를 할지 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