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의 거대 핀테크 회사 와이어카드(Wirecard)의 분식 회계 의혹을 제기했다. 와이어카드는 FT가 공매도 투자자들과 모의했다며 맞받아치며 FT와 기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결과적으로 분식 회계는 사실로 드러났다. 한 때 독일 최대은행 도이체방크의 시가총액을 넘어서기도 했던 와이어카드는 2020년 6월 파산했고, CEO는 구속됐다.
넷플릭스가 최근 공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스캔들! 와이어카드를 폭로하다>는 5년간(2015~2020년) 있었던 FT와 와이어카드 간의 ‘전쟁’을 다룬다. 당시 시장을 놀라게 한 건 FT의 분식 회계 의혹 보도가 나왔음에도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와이어카드에 대한 투자를 하기로 한 것이다.
2019년 4월, 소프트뱅크는 와이어카드에 약 9억유로(1조2000억원)를 투자했다. 전환사채(CB)를 통해 와이어카드 주식을 주당 130유로에 취득했는데 이후 이 주식은 급락했다. FT는 “와이어카드의 주가 폭락으로 소프트뱅크는 최소 수억달러의 손실을 떠안게 됐다”고 당시 보도했다.
위워크 상장 무산에 이어 와이어카드 투자 손실까지, 경영난에 빠진 소프트뱅크는 이 때부터 돈 되는 건 뭐든지 팔아 자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미국 3위 이동통신업체 T모바일, 차량 공유서비스 우버, 부동산 플랫폼 오픈도어, 부동산 중개업체 KE홀딩스 지분에 이어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지분도 팔았다. 지난 8월엔 ‘2분기 30조원 순손실’이라는 최악의 실적을 발표하며 손 회장 스스로 “부끄럽고, 후회된다”며 반성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도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비전펀드 3호를 출범할 것으로 알려졌다. 큰 손실을 안긴 비전펀드 2호의 자본 확충 방안도 거론된다. 잇따른 투자 실패로 시장의 신뢰를 잃은 손정의 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급할테다.
마침 손정의 회장이 10월에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그 소식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했다. 대형 M&A 매물로 꼽히는 ARM이 있는 영국을 방문했다가 귀국한 자리였다. ARM의 75% 지분은 소프트뱅크가, 나머지 25%는 비전펀드가 갖고 있다. ARM 인수설에 대해 이 부회장은 21일 “다음 달 손 회장이 서울로 온다. 아마 손 회장이 제안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삼성전자, ARM 인수 시동’, ‘역대급 M&A 초읽기’라는 내용의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같은날 소프트뱅크 대변인도 "손 회장이 삼성전자와 ARM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위한 논의를 할 예정으로 이번 한국 방문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음이 급한 건 이재용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8월에 고대하던 복권이 이뤄졌고, 시장에선 이미 연내 회장 승진을 기정사실화했다. 회사는 3년내 대형 M&A를 하겠다고 공표했다. 여러모로 ‘한 방’을 보여줘야 할 타이밍이다. 그래서 모두 이재용 부회장과 손정의 회장의 만남에 주목한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팽배하다.
이 부회장은 대형 M&A를 해야 하고, 손 회장은 돈이 필요하다. 이 부회장에겐 아직 시간이 남아있고, 당장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려야 하는 손 회장은 더 급하다.
2020년 9월,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공식 발표했는데 당시 밝혔던 인수가격은 400억달러였다. 독과점을 우려한 주요국의 반대로 이 딜(Deal)은 무산됐다. 이후 SK하이닉스, 인텔, 퀄컴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인수전에 뛰어들 기미를 보이면서 몸값은 더 올라갔다. 추정 가치 50조~70조원에 최대 100조원까지 언급된다. 삼성전자가 125조원의 현금을 갖고 있긴 하지만 엔비디아도 실패한 경영권 확보가 가능할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값어치를 할 매물인지는 모른다. 반도체업계에선 ARM이 보유한 코어 IP의 수익성이 높을지 확신할 수 없고, 또 ARM 인수 자체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에는 부정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 최대 전자기업의 수장, 세계 최대 기술투자펀드의 수장이 만남은 그 자체로 화제이고 의미가 있다. 두 거물의 만남에선 크든 작든 결과물이 나와야 하기도 한다.
손정의 회장 입장에선 몸값이 오를대로 오른 ARM을 충분히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경영권 매각을 할 수 없다면 일부 지분이라도 삼성전자를 포함한 반도체 기업들에 비싼 값에 팔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 입장에선 기대했던 성과는 아닐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손 회장과의 만남에서 결과물을 내야한다는 조바심과 ‘대형 M&A 성취’라는 명분에 압도되면 곤란하다. 협상에서 ‘여유로움’은 확실한 무기다.
입력 2022.09.26 07:00
Invest Column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2년 09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