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만 원했던 한화 뒤늦게 관심…8월 후 2개월 만에 합의
논란 피해 앓던이 뺀 산은, 2兆에 2008년 한 푼 한화 '윈윈'
대조양 금융지원 5년후 종료…한화 조선 사이클 대응력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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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이 14년만에 다시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섰다. 당초 방위 사업만 분할해서 인수하길 바랐으나 결국 전체 인수로 방향을 정했다. 산업은행과 협상에 들어간 지 2개월만에 결론을 도출하며 강한 인수 의지를 보였다. 국책은행의 지원, 호황으로 접어든 산업 주기 등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판단이 옳았는지는 몇 년 후에야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의 경기 주기를 경험해보지 못했고, 채권단의 금융지원도 5년 후면 끝난다. 조선 빅3 체제에서 횡행한 ‘과당 경쟁’을 끝내고 방위산업 외 사업 부문을 효율화하는 것이 앞으로 한화그룹의 과제가 될 전망이다.
지난 26일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과 2조원의 유상증자 방안을 포함한 조건부 투자합의서(MOU)를 체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6개 계열사가 2조원을 대우조선해양에 투입해 최대주주(49.3%)에 오르는 구조다. 산업은행은 2대주주(28.2%)가 돼 21년만에 대우조선해양 관리 부담을 덜게 된다.
산업은행은 1월 현대중공업그룹과의 대우조선해양 M&A가 무산된 후 대응 방안을 모색해 왔다. 1분기 중 50곳 가까운 제조 기업들에 인수 의향을 타진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을 제외한 웬만한 이름난 기업은 모두 접촉했으나 인수 의향을 보인 곳들은 한 곳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하며 경제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오르던 시기였다.
한화그룹도 처음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하반기 들어 인수 의향을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8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을 차렸고, 9월에 합의를 도출했다. 산업은행과 자문사, 기업 등 거래 관계자들은 추석 연휴도 반납하고 협상 조건을 조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8월 처음 접촉해 이듬해 1월 결론을 냈던 현대중공업과의 M&A에 비해 시간을 크게 줄였다. 이번 M&A에서 산업은행은 EY한영과 태평양, 한화그룹 측은 삼정KPMG와 율촌의 자문을 받았다.
한화그룹은 2008년 인수 무산의 아쉬움을 달래게 됐다. 산업은행 등은 기존 대우조선해양에 하던 금융지원을 5년간 유지하기로 했다. 수출입은행이 가지고 있는 2조3000억원 규모 영구 전환사채(CB)의 금리 인상(Step up)은 유예한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CB는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채권적 성격을 유지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상환받는 구조를 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발생한 CB 이자는 주식으로 전환해 지급 의무를 줄이기로 했다. 한화그룹의 경영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이다.
산업은행은 이번 거래를 진행하면서 논란의 소지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2019년엔 현대중공업으로 인수를 거의 확정한 후 형식적으로 삼성중공업에도 의향을 물었으나 거절 답변을 들었다. 조선사 3곳을 2곳으로 줄여야 한다는 대명제에 빠져 한화 등 다른 곳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반면 이번에는 스토킹호스(Stalking-horse) 방식으로 경쟁입찰을 진행해 국가계약법상 논란을 피했다. 인수자가 산출된 가격에 따라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이라 산업은행의 ‘경영권 프리미엄 상실’을 문제삼기 쉽지 않다.
산업은행에 대한 책임론이 없지는 않다. 20년 넘게 가지고 있으며 막대한 정책자금을 들인 결과가 구주 매각도 아닌 신주 발행을 통한 M&A기 때문이다. 다만 그간 조선업 침체 영향이 있었고, 올해 들어 세계 경제가 부진한 점, 앞으로 다가올 구조조정 국면에 대비해야 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번 거래가 최선이 될 것이란 평가도 있다. 앞으로 입찰에 국내 제조기업이 참여하지 않으면 ‘특혜’라고 지적하기 어렵다. 중국 조선사 등 해외 투자자가 실사 정보를 얻기 위해 재무적투자자로 참여할 것이란 우려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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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7월말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 분리 매각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화그룹으로의 매각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을 것이란 시선이 있다.
한화그룹 역시 원래 관심을 가졌던 것은 대우조선해양의 방산 부문이다. ㈜한화를 필두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등 주요 계열사가 방산 부문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방산 부문을 인수하면 육해공을 아우르게 된다. 해외 방산 고객을 대상으로 ‘패키지 마케팅’을 펼칠 수 있다.
다만 걸림돌은 있다. 방산 부문이 가장 팔릴 가능성이 큰 분야긴 하지만 쪼개기가 쉽지 않다. 절대 분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부처 협의와 규정 개정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았다. 2016년에도 분리 방안을 검토했으나 상선 분야와 일부 공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 됐다. 노조와 지역 민심까지 설득하려면 최소 몇 년은 허송세월해야 했다.
한화그룹은 언제가 될지 모를 방위산업 분리를 기다리기보다 전체 인수로 방침을 선회했다. 그룹은 차기 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분주하다. 김동관 부회장이 방산(한화에어로스페이스), 화학(한화솔루션) 등 핵심 사업을 이끌고 김동원, 김동선 형제가 금융·리조트 등 나머지 사업을 맡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장자인 김동관 부회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주축으로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선 모양새다.
한화그룹이 이번 거래로 얻는 효과는 작지 않다. 2008년엔 구주 대금만 6조원 이상을 지불해야 했지만, 이번엔 고스란히 인수 기업에 자금을 넣고 부채도 당장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조건에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지 않으면 2008년의 인수 시도에 대한 ‘자기 부정’이 될 수밖에 없다. 한화그룹은 국가의 앓던 이를 빼줬으니 향후 방위 물자 수출이나 금융조달에서도 유무형의 지원을 기대할 만하다.
산업은행과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M&A는 서로의 아쉬운 점을 달랜 거래라는 평가다.
조선업은 작년부터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2000년 이후 발주된 선박들이 대거 교체 주기에 들어왔다. LNG운반선 호황으로 수주 잔고는 넉넉하고, 내년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건조 대금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상증자금 2조원을 다 쓰지 않아도 될 것이란 예상도 있다. 올초 2억달러 수준이던 LNG운반선 가격은 최근 2억5000만달러까지 올랐다. 달러로 결제받는 조선업 특성상 지금의 달러 강세가 나쁠 것은 없다. 대우조선해양의 자체기술 확보 노력이 한화에서 빛을 발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조선업 호황은 언제까지 이어질 지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를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검토했던 2008년의 경제 위기 상황과 겹쳐 보는 시선이 있다. 러시아산 가스 금수 조치로 LNG운반선 수요가 늘 수는 있지만 글로벌 경기가 장기간 침체하면 조선업도 영향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화그룹은 지금까지 잠수함 등에 부품을 공급해왔지만 직접 조선업 사이클로 뛰어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년 뒤엔 금융지원도 끊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우조선행양이 조선 빅3 체제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다. 지금까지는 조선사간 수주 경쟁이 치열했다. 그룹의 관심에서 벗어난 삼성중공업이 상대적으로 덜했을 뿐 현대중공업과 주인없는 대우조선해양은 사장들이 연임용 치적 쌓기에 분주했다. 도크는 차고 현금 흐름은 유지되지만 수익성과 재무구조는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곤 했다. 한화그룹이 앞으로도 이 대열에 끼어 있다면 대우조선해양이 밑빠진 독이 될 수 있다.
한화그룹은 향후 대우조선해양의 규모 축소를 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 애초 원했던 것은 방위산업이다. 나머지 사업 영역은 관심이 크지 않고, 경기에 따른 불확실성도 크다. 지금이야 일손이 부족하지만, 이런 상황이 영원하리란 법은 없다. 한국 조선업 전체로 보더라도 언젠가는 건조 물량은 줄여야 하고, 고부가 선박에 더 집중할 필요성이 있다.
한 자문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이전까지 빅3 조선사끼리 합쳐 빅2 체제로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조선사의 수보다 주인없는 대우조선해양과 주인은 있지만 없는 것처럼 보이는 현대중공업의 과당경쟁이었다”며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수익 위주의 수주를 할 것이고 이는 조선 수주 관행의 변화를 이끌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