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영 대표이사의 사과문 발표 이후
임원진 12명 주식 매수 행렬
당일 거래량의 1.6% 수준…주가는 오히려 뒷걸음질
상장 직후 현금화 금액만 200억 규모
최고점에 '대거' 팔고, 저점에 '찔끔' 사들이며 책임경영?
-
카카오뱅크 윤호영 대표이사는 지난주 주가하락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앞으로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고, 경영진 성과평가항목(KPI)에 카카오뱅크 주가 기반 평가 비중을 상향하겠다고 했다.
윤 대표의 사과문 발표 직후 거래일(11일) 카카오뱅크 임원진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12명의 임원진이 약 10억원어치의 카카오뱅크 주식을 사들였다. 마치 지난해 카카오뱅크의 상장 직후 상황을 보는 듯 했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 임원들은 9만원대 주가에 '매도'를 선택했고, 지금은 1만원대 주가에 '매수' 버튼을 눌렀다는 것이다.
임원진들의 주식 매수가 윤 대표가 밝힌대로 임원진들의 막중한 책임감의 발현이었는지, KPI 성과 지표에 주가 비중을 높이겠다는 유인책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12명의 임원이 동시다발적으로 주식을 사들인 상징적인 '선전'효과 외에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날 카카오뱅크 주가는 전일(-9.38%)에 이어 역시나 3%대 하락세를 기록했다.
11일 카카오뱅크의 거래량은 총 314만7167주인데 임원진들이 사들인 주식은 5만685주, 즉 전체 거래량의 1.6%에 불과했다. 이미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은 카카오뱅크 주가의 하락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수백억원 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우며 주가하락을 이끌었던 임원들이 10억원어치도 채 되지 않는 주식을 사들이면서 책임경영과 주가관리를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투자자들에게 오히려 빈축을 사는 계기가 됐다.
-
실제로 이번 주식 매수에 동참한 주요 임원들 가운데는 카카오뱅크 상장 직후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을 통해 확보한 주식을 대거 매도하며 수 십억원의 현금을 챙긴 임원들이 다수였다.
김석 최고전략책임자(약 26억원), 신희철 최고인사책임자(약 32억원), 정규돈 최고기술책임자(약 76억원), 유호범 내부감사책임자(약 25억원), 이형주 최고비즈니스책임자(약 48억원) 등이 상장 직후 또는 수 개월 내에 현금화한 금액만 약 200억원에 달했다.
이들이 11일 사들인 카카오뱅크 주식은 약 3만여주(5억5000만원어치), 상장 직후 주식을 팔지 않았거나 신규 선임돼 보유 주식이 없었던 임원들(총 13명)까지 확장해도 임원 1명이 상장 직후 내다판 규모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일부 임원들은 대거 주식을 팔아 현금화하고도 추후 올해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 행사, 일부 장내매수를 통해 오히려 상장 당시와 비교해 보유 주식수를 늘렸다.
이번 주식 매수에 나선 임원들의 스톡옵션 행사가(5000원)을 고려하면 사실 평균 매입단가는 현재 주가 대비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추산된다. 즉 5000원에 스톡옵션을 행사하고 1만원대 주식을 사들이면서 현재 주가 수준에서 손실을 기록할 임원들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회사에 몸담고 있지만 임원들과는 다른 일반 직원들이 직면한 상황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카카오뱅크 직원들은 상장 당시 1인당 평균 1만4481주를 공모가 약 3만9000원에 샀다. 평가금액은 약 5억6000만원 수준인데, 주가가 반토막 이상 빠진 현재는 2~3억원대 손실이 가시화했다.
윤 대표가 내놓은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방안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는 평가다.
그러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그리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다. 자본의 규모가 성장의 한계를 결정짓는 은행의 사업 특성상, 현 시점에서의 주주환원은 성장성 훼손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까닭이다.
상법상 자사주 매입은 이익잉여금 등으로 이뤄진 배당가능이익 범위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올 상반기 말 기준 카카오뱅크의 이익잉여금 규모는 3100억여원 수준이다. 올 연말 결산 기준으로는 4000억원대 초중반이 될 전망이다. 이익준비금 등 배당이 불가능한 재원을 제외하고 나면, 연말 기준 카카오뱅크가 자사주 매입에 쓸 수 있는 자금은 2000억~30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현 주가 기준 3000억원을 자사주 매입에 쓸 경우, 확보할 수 있는 주식 수는 약 1700만여주, 지분율로는 3.6% 안팎이다. 현재 유동 주식 비율이 45%에 가까운 상황에서 주가 하락 추세를 뒤집을 정도로 '회심의 카드'는 아니라는 게 금융권의 대략적인 평가다.
금융권에서는 오히려 역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은행은 건전성 유지를 위해 자본비율 규제를 받는다. 대출 규모에 맞춰 자본을 늘리지 않으면 영업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지난 2019년 경쟁사인 케이뱅크가 직장인신용대출 등 주력 상품을 판매 중지한 것도 제때 자본이 확충되지 않아서였다.
자사주 매입에 자금을 쓴다는 건 그만큼 영업할 수 있는 자본의 규모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미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8월 상장을 통해 조달한 2조5500억원의 자본을 제대로 굴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1년새 카카오뱅크의 자본은 2배로, 총수신(예금)은 24.6% 늘었지만, 총여신(대출)은 3조7000억원, 16%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올해 상반기엔 1조원도 채 늘리지 못했다. 지난해 86%대였던 예대율(수신 대비 여신 비율)은 80%로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카카오의 현재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총자본비율은 37.4%로 국내 은행 평균 16.5%를 훌쩍 뛰어넘는다. 언뜻 보면 자본건전성이 훌륭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업 확장이 제대로 안되어서 생기는 현상으로 분석된다. 대출 성장이 둔화되며 최근 1년간 위험가중자산 규모가 3400억여원 늘어나는 데 그친 것이다.
영업 열심히 해서 성장하라고 2조5500억원의 자본을 공모로 넣어줬는데, 이를 제대로 써보지도 않고 2년도 안돼 일부를 소각하겠다는 건 '투자자 기만'이라는 성난 목소리까지 들린다.
김재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12일 "카카오뱅크에 대한 기대는 다른 은행들처럼 배당주나 가치주가 아니라 성장주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한정된 재원으로 자본비율 규제를 받는 은행이 성장과 주주환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까지 해소하기엔 여전히 어려운 상황으로 판단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