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밸류 논란·쪼개기 상장 우려 현실화
"플랫폼 아닌 그냥 은행" 평가 지배적
주가 급락에 엑시트 못한 투자자 난감
임원은 고가 매각…직원들은 발목 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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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아이콘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까진 먹튀의 아이콘이다"
카카오뱅크는 소비자의 효용과 편의성을 개선하고 금융산업의 혁신을 주도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한국 증권시장에 상장했다. 그로부터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시장의 평가는 더 이상 박해지기 어려울 지경이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매도 리포트의 주인공이 되면서 ‘먹튀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카카오뱅크의 주가 그래프를 보면 어지러울 정도다. 코스피 상장 첫날 시가총액 33조1620억원을 기록, KB금융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금융 대장주가 됐지만 그 이후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가는 떨어졌다. 지난해 8월 9만4400원을 찍었던 주가는 올 10월 1만6000원대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 추락이다. 한국 증권시장에서 ‘매도’ 리포트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걸 카카오뱅크가 해냈다. 최근엔 목표가 1만원대 리포트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카카오뱅크가 출범 초기부터 경쟁사 대비 높은 밸류에이션을 부여받은 이유는 플랫폼 기업으로서의 성장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확장성 측면에선 온라인 간편결제 플랫폼인 카카오페이보다 떨어진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가 사실상 독자 노선을 걷고 있어 당초 시장에서 기대했던 ‘카카오금융’의 시너지를 기대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카카오페이의 주가 급락도 극적이긴 하다.
카카오뱅크는 더욱더 전통적이면서도 한계가 뚜렷한 ‘은행’이 됐다. 회사의 일반영업이익 구성 대부분은 순이자이익이다. 기업금융에는 진출하지 못했고 대출은 주택담보, 가계일반 등 가계대출로만 구성돼 있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확장성은커녕 기존 대출의 부실화를 염려, 관리해야 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 기준금리 ‘3%’ 시대에서 코로나 수혜를 모두 반납한 것은 물론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앞두고 있다.
주가 급락에 경영진이 내놓은 대응책은 너무나도 전통적인 방식인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다. 이마저도 차후에 부담을 가중시킬 요소가 있다.
자사주 매입은 이익잉여금 등으로 이뤄진 배당가능이익 범위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올 상반기 말 기준 카카오뱅크의 이익잉여금 규모는 3100억여원 수준이다. 이걸로 확보할 수 있는 주식 수는 지분율로는 4%에 못미쳐 큰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사주 매입에 자금을 쓴다는 건 그만큼 영업할 수 있는 자본의 규모가 줄어든다는, 미래 기회를 잃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카카오뱅크는 상장을 통해 조달한 2조5500억원을 제대로 굴리지 못하고 있다.
시장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주가 급락을 두고 엑시트를 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한 채 지켜보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와 한국투자금융지주, 국민연금공단, 국민은행 등이다.
2020년 홍콩계 사모펀드(PEF)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는 카카오뱅크 프리IPO에 참여, 2500억원을 투자했다. 앵커PE는 카카오뱅크 상장 이후 주가가 9만원대로 치솟자 한국투자증권을 통해 1000억원의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담보 가치가 주당 1만6000원 미만이면 현금으로 담보를 보강하는 ‘마진콜’ 조건을 이행해야 한다. 자칫 앵커PE는 운용 중인 펀드에 출자한 해외 기관투자가들에 예기치 않은 추가 자금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게 됐다. 앵커PE는 카카오뱅크 지분의 보호예수 기간이 끝난 2월 주당 4만~5만원 선에서 주식을 팔 기회를 놓쳤다.
카카오뱅크 4대주주인 KB국민은행은 지난 8월 보유하고 있던 카카오뱅크 주식 일부를 매도하며 보유지분율을 8.02%에서 4.90%로 낮췄다. 국민은행은 카카오뱅크의 주식을 매도가능자산으로 분류하고 있어 기타포괄손익으로 잡힌다. 카카오뱅크 주식의 평가손에 비례해 국민은행의 총자본도 줄어든다. 지난 3월말 5만원대였던 주가가 올해 6월말 3만원대로 떨어지면서 국민은행이 보유한 카카오뱅크 지분 장부가액은 약 2조원에서 1조원으로 줄었다.
은행들의 BIS 비율 관리가 다시 중요해지면서 고금리 상황에서도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이어지는 중이다. 카카오뱅크의 주가가 1만원대로 떨어진 점을 감안하면, 국민은행은 지분 매도로 그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된 셈이다. 여전히 내부에선 카카오뱅크 주식을 팔아야한다는 의견들이 있어 지난번 블록세일 락업이 풀리는 11월 중순에 추가 매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관들도 쩔쩔매는 상황이다보니 개미들의 성토는 말할 것도 없다.
회사 자체도 시끄럽다. 상장 당시 카카오뱅크 직원들은 전체 물량의 19.5%가량인 1274만3642주를 우리사주로 매입했다. 직원들은 공모가 3만9000원에 1인당 최대 1만4481주를 살 수 있었는데, 1인 평균 1만2500주(약 4억9000만원)를 매입한 셈이다. 주가 급락으로 직원당 손실액은 2억6500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일부 직원은 8억원을 청약해 손실이 4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다수 직원이 많게는 수억원을 대출받아 우리사주에 투자했다. 보호예수 해제 이후 담보 비율(우리사주 대출의 경우 60%)을 유지하지 못하면, 주식이 반대매매 위기에 처한다. 강제 청산을 막으려면, 추가로 담보를 납부하거나 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 최근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어 대출을 끌어와 담보를 채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카카오뱅크는 100억원 규모 회사기금을 조성해 우리사주를 매입한 직원들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직원들의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하겠다는 건데 직원 한 명당 1000만~2000만원 정도인데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회사는 주가 부양과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했다고 밝혔는데 진정성과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이번 주식 매수에 동참한 주요 임원들 가운데는 카카오뱅크 상장 직후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을 통해 확보한 주식을 대거 매도하며 수십억원의 현금을 챙긴 임원들이 다수였다. 이들이 사들인 회사 주식은 상장 직후 내다 판 규모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일부 임원들은 대거 주식을 팔아 현금화하고도 추후 올해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 행사, 일부 장내매수를 통해 오히려 상장 당시와 비교해 보유 주식수를 늘리기도 했다.
현재 주가 수준에서 손실을 기록할 임원들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혁신의 메기’라고 규제 울타리를 거뒀더니 소수의 사람들만 자신의 호주머니를 두둑히 채웠다. 금융인로서 선관주의 의무는 찾아보기 어렵다. 같은 회사에 몸담고 있지만 일반 직원들이 직면한 상황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정보의 비대칭성, 모럴해저드 등등 사내 분위기가 흉흉해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카카오뱅크 상장 과정과 그 이후의 모습은 스펙터클하다. 한국 IPO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몸값 부풀리기, 카카오그룹의 문제로 지적된 쪼개기 상장, 경영진의 스톡옵션 행사에 따른 먹튀 논란, 이후 시장 상황과 겹쳐진 성장성 부재로 주가가 급락하는 모습까지. 이 과정에서 돈을 번 사람은 소수에 그친다. 카카오뱅크가 자본시장에 끼친 폐해는 만만치 않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도 경기 침체라는 거시적 파도 앞에선 움츠러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