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금융위기…'위기' 때마다 커진 NPL 투자
은행권 '양호'한 건전성은 착시효과
부동산PF, 기업대출 부실화 눈 앞
흩어진 NPL 인력들, 시장은 커지는데 전문인력은 부족
할인율에 환율 효과까지…외국계 투자자에겐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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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불황의 그늘이 짙어질수록 호황을 누리는 곳이 바로 부실채권(Non-Performing Loan; NPL) 시장이다.
10년 간의 장기 호황과 유동성 파티의 끝에선 현재, 언제 끝날지 모를 경기의 침착은 이미 시작됐다. 가파른 금리 상승에 국내외 금융기관들은 돈 줄을 죄고 신규 투자는 고사하고 보유 자산을 내다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재무 건전성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회수 여부가 불투명한 자산을 비교적 낮은 값에라도 내다 팔아 곳간을 채우는 것이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은 붕괴 조짐이 나타난다. 일반 기업대출, 부동산 담보부대출 등 기존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원이었던 금융기관의 자산들 중 상당수는 부실화 했거나, 단기간 내 회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큰 폭의 할인율이 매겨져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불황의 터널에 진입하면서 NPL 시장은 큰 장이 열리기 직전이다. 발 빠른 금융기관들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지난 10년 간 이어진 유례 없는 호황기에 쪼그라든 NPL 시장의 인력들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부실화한 자산의 실질 가치를 평가하고, 적정 가격을 책정해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국내 은행이 보유한 NPL은 60조원을 넘었으나 2022년 6월 말 현재 10조원대로 감소했다. 은행권 전체 여신에서 부실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외환위기 직후 약 13%에 육박했으나 현재는 0.5% 이하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표면적으론 은행들의 재무 건전성이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정부가 금리 인하 및 대출 만기 유예 등 위기 대처 정책을 쏟아낸 결과물이다.
이는 부실화한 채권이 크게 줄었다기보단 언제든 NPL화 할 수 있는 자산들이 아직 집계되지 않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속 불가능한 정책으로 일시적으로 부실이 봉합된 상태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3년 경기 침체기에 어김없이 NPL 규모가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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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간은 은행이 보유한 NPL이 꾸준히 줄면서 자연스레 NPL 투자 시장의 규모도 작아졌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NPL 투자 시장의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3조원 정도이다. 전업투자사, 사모펀드(PEF) 운용사, 자산운용사 등이 시장에 참여해 유의미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시장은 작은데 전업투자사들 간의 경쟁이 벌어지다보니 NPL 가격이 치솟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만큼 투자자가 얻을 수 있는 수익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출혈 경쟁이 이어졌다. 자연스레 투자자들이 시장에 뛰어들 유인이 적었고 관련 업계의 핵심 인력 유출도 심화해왔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NPL 투자 시장의 규모가 2~3조원으로 국내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작기 때문에 기관투자가들이 참여할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며 "NPL의 가격도 치솟는 가운데 2% 남짓의 수익률을 거두겠다고 뛰어드는 투자자, 그리고 관련 업계 투자 경험이 인력이 상당히 적다"고 말했다.
이미 일부 은행들은 부실 자산을 떨어내기 위한 작업에 분주하다. 이는 정부의 금융기관 재무건전성 강화 기조에 따른 조치의 일환이기도하다.
시중은행인 A은행은 현재 국내 B기업을 대상으로 대출한 1000억원 규모의 대출채권을 30% 이상의 할인율을 적용해 외국계 운용사에 매각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해당 기업의 정상화 여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투자자 입장에선 B기업의 지분을 담보로 확보하면서 30%이상 할인한 대출채권을 사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해당 은행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자산을 처분하기 위해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NPL이 은행권에 집중돼 있긴 하지만,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의 PF 대출 등도 넓은 의미에서 잠재적 부실채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미 부동산PF 시장은 크게 쪼그라들었다. PF 선순위 대출 금리는 7%를 훌쩍 넘은지 오래다. 단기자금 즉 브릿지론의 경우 10%, 최대 20% 이상의 금리를 제시하는 금융기관도 있다. 중순위 또는 후순위 채권의 경우 시공사에 신용보강 또는 담보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업체 이야기가 아니다. 이마저도 PF 사업자가 자금을 빌리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됐다.
국내 한 중소형 증권사는 PF 사업장 대출의 부실화가 예상되자 현재 선순위 대출채권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할인율 또한 20%를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투자자 모집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PF 사업장의 부실은 지방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분양시장을 비롯한 부동산 시장의 침체기가 길어질수록 수도권 지역까지 확산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최근엔 강원도가 보증한 레고랜드PF의 신용등급이 D등급까지 하락하며 PF 시장의 경색은 가속화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전반적인 침체와 별개로 NPL 투자 시장이 확대할 것이란 기대감은 존재한다. 역시나 기회를 옅보는 투자자들은 NPL투자회사를 설립하고 NPL펀드를 출시하는 등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현재까진 연합자산관리(유암코)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시장이긴하지만, 전체적인 NPL 시장 확대기를 맞아 수익률을 거두려는 전략이다.
새롭게 진입하려는 운용사, 사모펀드 등의 진입장벽은 높다. 사실 NPL 자산의 경우 상당히 고도화한 자산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하고 또 일정수준 이상의 인력 규모가 뒷받침해야한다. 담보물이 수반된 부동산은 물론이고, 크레딧을 기반으로 한 NPL의 경우 더욱 전문화한 인력이 필수적이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대표급 관계자는 "NPL시장이 커질 것이란 기대감에 다수의 운용사들이 시장 참여를 검토하고 있지만 자산을 평가하고 실제로 투자를 집행할 수 있는 인력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선뜻 뛰어들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NPL 투자는 기대수익률이 높은 만큼 더 큰 위험성이 상존한다. 사실 자기 자본을 통해 NPL시장에 뛰어다는 투자자의 경우엔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자본조달을 통해 펀드나 조합을 구성해 투자하는데는 조달 비용을 상승이 가장 큰 리스크다. 국내 투자자들의 경우엔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고 금융기관들로부터 출자를 받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자본시장의 큰 손인 연기금·공제회 등도 이미 부실화한 자산을 떨어내고 신규 출자를 꺼리는 상황이다.
국내 NPL 시장의 확대가 자본력을 갖춘 외국계 운용사들에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현재의 환율 추이를 고려하면 한국은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여기에 정부의 금융기관 건전성강화 기조에 따라 비교적 잠재적 부실이 덜 한 자산들이 NPL 시장에 쏟아지면 할인율에 환율효과까지 더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앞으로 펼쳐질 소위 '줍줍'의 시대에서 국내 기관들이 얼마나 유의미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