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후 반등 등 성공의 기억
국내는 잠잠…지분도 대출도 조달 어려워
"기업가치 여전히 높아…당분간 잠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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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세계 경제는 완연한 부채감축(Deleveraging) 국면에 접어들었다. 자본시장이 위축되며 기업들에 매겨지는 가격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영국 금융불안, 에너지 대란 가능성 등 불안의 불씨는 도처에 널려 있다. 수 년간 장기 불황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늘고 있다.
사모펀드(PEF)엔 좋은 기업을 싸게 사들일 기회다. 투자와 회수까지 몇 년의 격차가 있으니 일단 사두면 기업 가치가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쏠쏠한 이익을 낼 수 있다. 지금 투자할 지, 언제일지 모를 저점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할지를 두고 고민할 상황이다.
글로벌 PEF들은 지난 2003~2007년 경기 호황과 유동성에 힘입어 적극 투자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애를 먹었다. KKR, 칼라일, 블랙스톤 등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위기에 집행한 투자는 2010년 이후 큰 회수 성과로 돌아왔다. PEF들은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도 주춤했지만 이내 다시 활발한 투자 활동을 이어갔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했을 때 역시 ‘전쟁은 언젠가 끝난다’는 낙관의 목소리가 많았다.
이런 경험에 비춰 위기에서 기회를 엿보는 투자자들이 많다. 세계적 긴축 정책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현금을 쥐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상장 주식으로 재미를 보기 어렵고, 채권의 안전성도 이전만 못하다. 비상장 주식 투자가 오히려 속이 편할 수 있다. 외신에선 ‘패밀리 오피스’들의 PEF 출자 확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지금부터 내년까지의 PEF 빈티지가 사상 가장 좋은 성과를 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경험해보지 못한 유동성 긴축의 시대다 보니 기업가치 하락세도 전에 없이 가팔라서다.
얼마 전 국민연금과 논의 차 한국을 찾은 스웨덴 발렌베리가 인사는 지금부터 투자에 나서는 PEF의 성적표가 ‘역사에 남을 것’이라는 의견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작년까지의 유동성을 잔뜩 쌓아두고 있거나, 올해 신규 PEF 결성에 성공한 곳들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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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글로벌 PEF 시장의 큰 흐름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외국 PEF의 투자 행보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한국은 더더욱 PEF 운용사(GP)들의 발이 떨어지지 않는 분위기다.
일단 출자자(LP)들의 기조가 급격히 보수적으로 기울었다. 팬데믹 초기 PEF들의 포트폴리오 부실 위험이 확산할 때도 ‘씨는 뿌려야 나중에 거둘 게 있지 않겠느냐’하는 반응이 많았지만 이제는 거의 곳간 문을 걸어잠그고 있다.
주요 공제회나 연기금은 회원 및 고객의 자금 요청에 대응해야 하니 약정한 블라인드펀드의 자금 요청(Capital call)도 달갑지 않다. GP들에 되도록 자금 요청을 자제하라 하거나, 위탁사 선정 계획을 축소하는 곳도 있다. 아주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곳은 단독 LP로 있는 PEF에 배당을 앞당겨 달라 요청하거나, 기존 LP 출자 지분을 담보로 빚을 내기도 한다. 아주 특출난 투자 건이 아니면 GP가 LP를 찾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장금리는 끝없이 오르고 있다. 저금리 시대에는 빚을 많이 내면 지분투자 이익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7% 이상의 대출 이자를 감수하고도 이익을 낼지 확신하기 어렵다. 대부분 기관이 지분투자와 대출을 동시에 하는 한국 시장에선 자금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다. 고금리를 부담하겠다 해도 대주단을 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크레딧 펀드는 바이아웃펀드보다 낮은 수익률, 높은 안전성으로 각광받았으나 이 역시 고금리 시대에는 기를 펴기 어렵다. 은행 특판 예금만으로도 5~6%의 안전한 이익을 낼 수 있는 기관들이 고작 몇 % 이익을 더 얻자고 위험을 감수할지 의문이다. 최근 진행 중인 KT클라우드 투자유치 건이 마무리되면 당분간 크레딧 펀드의 움직임이 잠잠해질 가능성이 크다.
한 대형 PEF 임원은 “공제회·연기금은 회원들 자금 수요에 대응하느라, 금융사들은 건전성을 관리하느라 돈을 풀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도 투자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PEF들의 부진이 부각된 것도 악재다. 작년까지만 해도 유동성에 힘입어 잡코리아, 야놀자,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하이브, 크래프톤, 두나무 등 억소리 나는 회수 건들이 쏟아졌지만 지금은 다르다.
최근 대형 PEF의 바이아웃 거래들은 ‘고점에 물렸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작년 투자액은 폭증했지만 회수 규모는 줄었다. 인수금융 기한이익상실(EOD)이 나거나, 재무약정을 지키기 위해 포트폴리오 기업을 쥐어짜는 사례도 나온다. 대형사들은 투자보다는 시장을 관망하며 회수를 고민하고 있다. 국민연금도 해외보다 대체투자 수익률이 박한 국내 자산 비중을 줄여가려는 분위기다.
국내 PEF들은 기업들의 가치도 여전히 높다고 보고 있다. 자금줄이 마른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들은 기업가치를 낮춰 자금유치 라운드를 진행하거나 경영권을 매각하기도 한다. 운영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파산하는 사례도 나온다. 그러나 ‘전통 기업’의 몸값은 완만하게 하락하는 추세고, 매각자의 기대치도 여전히 낮지 않다. 이번 위기 이후에도 살아날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벤처 업계의 고민이 PEF 시장으로 옮겨가는 데는 적어도 반년이 걸릴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펀드 결성에 나선 곳들은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기업에 싸게 투자하니 향후 수익률이 좋을 것"이라면서도 "기업들의 가치가 아직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는 시각이 많기 때문에 당분간은 투자 열기가 잠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