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기차 배터리·바이오사, 대비차 진출 움직임
법인 신설하거나 M&A 주체로 현지 법인 내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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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재계가 미국 내 생산시설 확보 및 인수·합병(M&A) 주체로 현지법인을 내세우고 있다. 법인 설립 단계부터 미국을 선택해 투자 가능성을 선제에 검토해보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가 점차 강해진 데 따른 대비 차원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전기차 배터리와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을 두고 '현지 판매 제품에 대한 현지 생산'을 압박 중이다.
지난달 12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바이오 분야의 미국 내 생산을 골자로 한 '국가 생명공학과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80일 이내에 자국 생산 관련 구체적인 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전기차 배터리 등과 마찬가지로 '현지 판매 제품에 대한 현지 생산'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의 영향이 특히 클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선 규제 산업 특성상 공급망을 즉각적으로 변경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단기적인 여파는 크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공장 확보부터 생산 승인까지 최소 2년 이상 소요돼 국내에 위탁 중인 물량이 당장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국내 기업들도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제약사처럼 미국 내 생산을 포함한 멀티플 소싱 전략을 검토해야 할 유인이 커졌다. 아직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 주요 위탁생산개발(CDMO) 업체 3사 가운데 해외에 생산시설을 확보한 곳은 없지만 조금씩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달 초 미국에 SK바이오사이언스USA를 설립했다. 김훈 현 SK바이오사이언스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대표를 겸임할 예정이다. 안동 공장 증축 및 송도 R&PD센터 등 투자 계획이 잇따라 예정된 만큼 당장 미국 내 생산시설 확보에 나서긴 이르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해당 법인을 통해 현지 생산시설 건설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도 최근 한 미국 의약품 전문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이나 유럽에 공장을 새로 짓거나 인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치는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지난 6월 신규 공장 후보지로 캘리포니아·워싱턴·노스캐롤라이나·텍사스 등 4개 지역을 꼽은 바 있다.
후발주자로 나선 롯데바이오로직스는 5월 미국 내 법인 설립과 함께 M&A도 발빠르게 추진했다. 미국 뉴욕 동부 시러큐스 지역에 있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인수했고, 이르면 연내 공장 가동을 예상하고 있다. 이원직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 일자리 창출 등에 기여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던 바 있다.
배터리 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미국 의회를 통과했다.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 혜택을 주고, 북미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배터리 광물·소재(니켈·흑연리튬 등)가 일정 부분 사용된 배터리에만 보조금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경우 중국이 배터리 원자재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어 IRA 조건 충족이 쉽지 않다.
이런 와중 최근 동박 제조사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한 롯데는 인수주체를 미국 현지법인으로 내세워 그 배경이 주목받고 있다. 해당 법인은 미국 내 배터리 소재 지주사인 롯데배터리머티리얼즈USA(LBM)로, 조만간 미국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던 업계 관측과도 맞닿아있는 면이 있다. 롯데케미칼은 미국을 배터리 소재 사업의 중심 시장으로 봐왔다. 미국에 공장을 신설할 경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보다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다.
LG에너지솔루션도 앞서 미국 애리조나주 배터리 단독공장 건설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앞서 투자비 상승 등의 이유로 투자 보류를 시사했지만 보조금 혜택 등 IFA 시행에 따른 영향이 컸던 것으로 풀이됐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는 11월 중간선거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라면서 "미국이 '현지 판매 제품에 대한 현지 생산'을 압박 중인 만큼 국내 기업 입장에서 당장 단기적인 제재 차원이 아닌 장기적인 사업성 때문에라도 현지 투자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 M&A 주체로 나서는 경우가 앞으로도 잇따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