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와 계열사에 '투자 금지 및 회수’ 특명 내린 CFO
당장 끊어내기 어려운 사업부 수장들과 잡음 일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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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계열사들에 '투자 금지 및 회수' 특명을 내렸다. 그간 국내 스타트업 업계의 큰손을 자처해왔지만 최근 재무라인 내 기류가 바뀌면서 뿌려둔 씨앗을 모두 거둬오란 지시가 내려졌다. 다만 투자 기업 상당수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만큼 성공적인 회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네이버의 투자 성적표를 점검해 봤다.
네이버 사정에 밝은 복수의 투자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네이버는 최근 국내 벤처펀드에의 출자를 중단하기로 했다. 투자하더라도 해외기업 혹은 매출이 해외향인 곳만 선별적으로 보겠다는 기조로 전해진다. 벤처 업계에선 큰 손 출자자가 하나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스타트업 투자 및 육성에 공을 들여왔던 네이버가 최근 출자 금지 기조로 돌아섰다. 경영진 회의에서 각 사업부 수장을 비롯 계열사들에도 이 같은 요청이 하달, 회수 중심으로 전략을 모색하는 상황”이라 전했다.
네이버의 스타트업 육성조직인 D2(디투스타트업팩토리)는 사실상 업무가 멈췄다. 네이버는 대부분 100억원 이하 수준의 스타트업 인수 및 소규모 지분투자에 초점이 맞춰 왔는데, 이 역할을 대부분 D2가 했었다. 이번 벤처펀드 출자 금지령으로 'C2C'와 '해외 확장'이란 새로운 네이버 투자 DNA에 맞지 않는 곳들은 자금을 받기 어려워졌다.
김남선 네이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본사는 물론 계열사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투자금을 회수해올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의 투자는 전통적으로 CFO 라인에서 맡아 왔다. 본사가 M&A와 기업공개(IPO) 등 전략을 짜 계열사에 전달하는 '상명하달'식 구조다. 투자는 물론 회수도 재무라인 주도로 이뤄지는데, CFO의 의지가 강한만큼 회수 작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 같은 배경엔 근래 투자한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투자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 영향이 컸다는 설명이다. 다수가 수익성과 성장성 두 벽에 모두 부딪혀 활로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간 가장 주력해온 물류·유통·패션 분야의 부진이 컸다. 이커머스 플랫폼의 거래액 성장률이 고점을 찍고 하향 추세다. 물류비용도 크게 오르면서 최근 이들 기업의 누적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네이버는 메쉬코리아·발란·브랜디·두핸즈·파스토·위킵·딜리셔스·아워박스·인성데이타 등에 투자했다. 이 중 네 곳은 두 번의 시리즈 투자에 연속 참여한 곳들이다.
대표적인 투자 부진 사례로 부릉 운영사 '메쉬코리아'가 꼽힌다. 네이버는 2017년 시리즈D 참여 이후 현재까지 메쉬코리아의 최대주주(18.48%)다. 회사는 자금난 악화로 매각 기로에 놓여 있다. 당초 기업가치 1조원을 목표로 투자유치에 나섰으나 1년간 지지부진했고, 결국 경영권 매각으로 선회했다. 사업 확장보단 긴급 운영자금 마련 목적이라 신규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선 최대주주가 증자에 참여해 숨통을 틔워주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하지만 네이버의 추가 투자 의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대기업이 직접 배달대행 플랫폼 경영 전면에 나서기엔 노조 반발이 우려된다. 성장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추가 투자에 나서기도 부담이다. 메쉬코리아가 네이버의 '아픈 손가락'도 아닌 '사실상 포기한 자식'에 가깝다는 언급이 나온다.
명품 패션 플랫폼 '발란' 또한 8000억원에서 최대 1조원으로 기업가치를 책정받으려 했다. 수익성과 오너 리스크에 대한 의구심을 끝내 해소하지 못하면서 투자 흥행에 실패했다. 업계는 최근 발란의 기업가치를 약 30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외에 쿠팡에 맞서 설리된 네이버풀필먼트연합체(NFA)에 참여한 '두핸즈'는 최근 경영악화로 본사 직원 절반 이상이 권고사직을 통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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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의 투자 담당자들과 각 사업부 수장들로선 당장 재무라인의 기조 변화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대체로 처음 거래 발굴 단계부터 참여했다 보니 당장 이들 기업이 성장성과 수익성 벽에 부딪혔더라도 언젠가 다시 체력을 회복할 것이란 기대가 있다. 창업자들과 오랜 정을 쌓아온 터라 당장 회수 모드로 돌아서 관계를 끊어내기도 부담이다. 이에 투자업계에선 재무라인과 계열사 및 사업부 수장들이 마찰(?)을 빚은 일화들도 더러 회자했다.
같은 맥락으로 그간 네이버와 오랜 기간 투자 파트너로서 관계를 맺어온 소프트뱅크도 함께 주목받는 분위기다.
네이버는 그간 소프트뱅크의 한국법인인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이하 소뱅벤)에 주요 출자자(LP)로 나서 왔고, 양사가 공동으로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합작사를 세워 사업에 진출한 이력도 있다. 하지만 네이버가 최근 벤처펀드 출자 금지 기조에 나서면서 소뱅벤 입장에선 큰손 LP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최근 매각설 등 홍역을 치르면서 주요 출자사업의 운용사(GP) 자격을 자진 반납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네이버와 소뱅벤 양사 간 불화설(?)이 잇따라 제기된 배경엔 공동 투자 건들의 성과가 부진해진 영향이 있다. 여기에 신뢰가 깨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네이버는 앞서 미국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바 있다. 래디쉬는 창업 초기부터 소프트뱅크벤처스와 투자금을 보태온 회사였던 만큼 경영권을 인수할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네이버는 결국 경쟁사인 카카오에 래디쉬를 빼앗겼고, 이를 미연에 막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소뱅벤과 관계가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는 국내 벤처캐피탈(VC)성 투자 대신 왓패드(7000억원)와 포쉬마크(2조3000억원)등 대규모 해외 아웃바운드 거래에 집중할 전망이다. 글로벌 특히 북미 지역 내 C2C 커머스 확장 전략을 계속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양사 모두 영업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네이버는 확장성에 베팅하겠다는 전략을 당분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네이버는 "재무적 투자가 아닌 전략적 투자들이기 때문에 회수를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진 않으며 최근 주주가치 증대 쪽으로 변화시키는 방향에 있지만 투자를 멈추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