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보다 소폭 높은 금리…자금조달 다각화 차원
회사채 여의치 않으니 장기CP로 영업하는 증권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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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가 2000억원 규모의 장기 기업어음(CP)를 창사 이래 처음으로 발행한다. 회사채 발행 시장이 악화되면서 발행사들이 회사채에서 불확실성이 낮은 장기 CP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제는 부실기업들이 많이 찍던 장기CP가 우량기업이 아니면 발행도 어려운 시장으로 변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SK㈜는 오는 10일 만기 3년, 만기 5년의 CP를 각각 1000억원씩 총 2000억원어치를 발행할 예정이다. 금리는 3년물 5.629%, 5년물 5.745%으로 책정됐다. SK㈜ 회사채 민평금리와 차이가 크지 않다. 지난달 28일 기준 SK㈜의 회사채 3년물과 3년물 민평금리는 각각 5.515%, 5.603%으로 이번 장기CP 와의 금리 차이가 각각 11.4~14.2bp(0.01%=1bp) 수준이다. 이번에 조달한 자금은 지난 6월(600억원)과 7월(1400억원)에 발행해 오는 17일에 만기가 도래하는 CP를 상환하는 데에 사용할 예정이다.
SK㈜가 만기 1년 이상의 장기 CP를 발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레고랜드 사태 여파와 연내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확실시되는 상황을 고려해 장기CP 라는 새로운 자금조달 창구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SK㈜는 자금조달 수단을 공모채 대신 장기 CP로 발행한 건 아니라고 밝혔다. SK㈜ 관계자는 "지난 9월에도 3700억가량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며 연내에 추가 발행 여부를 검토 중"이라며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서 장기 CP로 선회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금조달 창구의 파이프라인을 다양화하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AAA급 공사채도 수요예측 과정에서 미매각 나는 등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SK㈜의 장기 CP 발행은 금리를 미리 확정 짓고 신속하게 조달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장기 CP는 수요예측 등의 공모절차를 거치지 않아 빨리 자금조달 절차를 마무리 지을 수 있으며 금리와 만기도 쉽게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년 이상 장기로 발행하게 되면 회사채와 경제적인 실질은 동일하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의 채권발행부서 관계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도 예정돼 있고 여기서 금리가 더 올라갈 것이 확실한 상황"이라며 "공모채의 경우 수요예측 등의 절차로 발행까지 3주에서 한 달이 걸리는데, 그 사이에 금리가 오르는 것보다 장기 CP를 통해 하루라도 빨리 자금을 조달하는 게 최선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장기 CP는 발행이 간편한 만큼 비우량기업들이 찾던 시장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채권 발행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자 우량기업만이 발행할 수 있는 시장으로 뒤바뀌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이제는 장기 CP를 찍을 수 있는 회사가 우량한 회사"라며 "상당한 규모의 금액을 조달할 수 있는 얘기는 개인이든 기관이든 발행사의 신용도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발행사의 신용도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장기 CP나 회사채 발행 자체가 안 되고 있다"며 "지금 장기 CP를 찍는 발행사는 그나마 신용도가 차별화되는 회사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증권사도, 우량 발행사들도 장기 CP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분위기다. 지난 4월에 롯데지주가 2700억원 규모의 장기 CP를 발행했는데, 증권사에서 회사채보다 장기 CP로 조달하는 편이 경제적이라고 적극적으로 영업했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회사채를 발행해봤자 금리도 높고 대부분 미매각이 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증권사가 북(book)을 써가며 다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회사채 영업에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장기 CP를 발행 수단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대기업 정도만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