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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부는 내년도 모태펀드 예산을 대폭 줄였고, 이를 대신해 민간 부문이 출자해 모펀드를 만드는 형태로 벤처캐피탈(VC) 생태계에 자금이 흘러 들어가게하겠단 계획을 발표했다. 금융기관들이 돈줄을 죄는 상황에서 벤처 기업의 투자가 크게 위축하며 VC 생태계가 위협 받자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우리나라 VC를 지탱하는 자금은 대부분 정책자금이다. 벤처기업이 신규자금을 조달하는 방안 가운데 정책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기준 65%에 육박했다. 은행권 대출 약 28%를 제외하면 사실상 VC 자금 조달에 있어 정책자금이 대부분인 셈이다.
모태펀드의 축소는 이제부터 정부의 역할을 줄이는 대신 민간 자본에 대한 의존도를 높임으로써 정부의 부담을 서서히 줄여나가겠단 시사점이 분명하다.
VC 생태계의 지속적인 발전은 정부의 지향점이다. 자본시장의 유동성이 급격히 말라가는 시점, 정책자금은 줄이면서 민간부문의 참여를 유도하고, 정책적 목표인 VC 생태계를 유지-육성-발전 시키겠단 것은 사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는 민간이 주도하지만, 정책적 목표는 달성하겠단 의도, 즉 리스크는 민간이 과실은 정부가 가져가겠단 의도로 읽힐 수밖에 없다.
모험자본은커녕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채권시장에도 자금이 흘러들어가지 않는 시점에서 과거에 고공행진하던 스타트업의 몸값은 하루가 다르게 쪼그라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민간자본을 유도하며 자금을 쏟아부어 스타트업을 육성(?), 생존시켜나가는 것이 과연 유효한 전략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VC 생태계에 자금이 지속적으로 흘러들어가야 한다”는 대전제가 과연 맞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필요하다.
정부가 현재 VC 생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사실 불명확하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8월 30일 “모태펀드 예산이 줄어든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투자가 황폐화하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책자금을 운용하는 투자자들, 그리고 직접적으로 투자를 받아야하는 스타트업의 위기감은 상당히 크다. 사실 모태펀드의 예산과 별개로 이를 기반으로 매칭자금을 구해 펀드를 결성하는 것조차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정부의 현실 인식에 대한 괴리감은 지난 비상경제회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는데 이 장관은 향후 5년간 초격차 스타트업 1000곳을 육성하겠다며 2조원가량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내년부터 2027년간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신산업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겠단 계획이다.
2조원의 자금이 1000곳의 스타트업에 흘러들어간다면 단순 평균 한 기업당 20억원의 투자금이 배정된다. 목표와 달리 절반가량의 스타트업에 투자를한다고 가정하면 약 40억원씩이다.
사실 20~40억원의 자금은 투자의 가장 초기단계인 엔젤투자 수준에 불과하다. 이를 마중물 삼아 꾸준히 투자를 유치해 기업가치를 키워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이상)으로 성장하는 기업은 단 1%의 확률도 안된다. 냉정하게 말하면 정부가 발굴하겠다고 밝힌 ▲신산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유망한 스타트업은 아무리 시장이 경색한 상황이라도 해당 수준의 자금을 유치하는데는 사실 큰 무리가 없다.
정부의 공백을 결국 민간부문으로 메우겠다는 정책 방향성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진 따져봐야한다. 이제까지 정책적 VC 투자는 정부가 출자한 모태펀드, 한국성장금융을 비롯한 모펀드에서 출자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같은 모펀드를 민간부문에서 만들게끔 하겠단 취지의 계획이 곧 발표된다. 민간부문의 범위는 구체화하지 않았으나 연기금, 공제회, 금융기관 등이 포함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부문의 모펀드 설립을 위해선 정책자금과 달리 수익성이 보장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되야한다. 모험자본인만큼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어야 투자 유인이 발생한다.
정부는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세재혜택을 주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했다. 현 시점에서 VC 생태계에 자금이 흘러 들어가지 않는 요인은 ▲안전 자산 선호현상에 따른 기관들의 대체투자 축소 기조 ▲조달금리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저하 ▲투자 기업의 기업가치 하락으로 인한 투자 손실 우려 ▲증시 경색에 의한 엑시트(자금회수) 창구 축소 등 셀 수 없이 많다. 투자자들에게 “세재혜택을 드릴 테니 투자하세요”라는 유인책은 현실과 괴리감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진다.
대형 금융기관들이 모펀드 출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있는지도 살펴봐야한다. 여력이 있는 대형 운용사들이 세재혜택을 노리고 투자에 나서는 것과 유망한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 중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것이 더 유리한지에 대한 판단은 쉽게 내릴 수 있다.
국내 출자자(LP)들의 풀(POOL)은 제한적이다. 모펀드에 투자하고, 자펀드에 투자하는 기관을 나누는 것도 현실적으론 어렵다. 기술적으로 풀어내야할 문제가 많다는 의미다.
지난해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사모펀드(PEF)의 투자영역이 대폭 확대했다. 사실 금융시장이 급격히 경색하며 법 개정의 수혜를 누린 곳은 제한적이었으나 언제든 어떤방식으로든 어떤 기업이든 상관없이 사모펀드가 투자에 나설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PEF의 투자에서 스타트업 또한 유의미한 투자처가 됐고, 당시 국내 PEF도 유니콘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상당히 컸다. 사실 PEF의 자금이 부족해 스타트업 생태계에 흘러들어가지 않는것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추진중인 VC 모펀드 출자자에 대한 세재혜택을 부여하게단 것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배제할 순 없다.
VC 생태계에서 정책자금이 슬그머니 빠지는 과정에서 이를 메우기 위한 땜질식 정책이 쏟아질까 상당히 우려스럽다.
입력 2022.11.04 10:28
Invest Column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2년 11월 0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