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서 과반 못 넘으면 임금제도 개편 어려워
증권사 중 관리직 개인평가 도입한 곳 드물어
저성과자 가려내 연말 구조조정 포석이란 추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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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증권이 일괄 연봉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사내 관리직(백오피스) 및 영업점의 반발이 거세다. 성과평가 기준이 애매한 탓에 결국 구조조정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모양새다. 회사 측이 임금체계 변화를 앞두고 동의서를 받고 있어 반대 인원이 많다면 임금제 개편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1일 증권가에 따르면 현재 한국투자증권이 추진하고 있는 임금제도 개편은 일부 호봉제로 남아있던 직군들을 일괄 연봉제로 바꾼다는 점이 핵심이다. 연봉제가 일반적인 투자은행(IB) 부서의 경우에도 연차가 낮은 직원들이나 본사 관리직군 중 일부 호봉제를 적용받는 직원들도 모두 연봉제로 적용받게 된다.
직원들의 반발이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특히 성과평가 기준이 애매한 영업점이나 관리직군의 우려 목소리가 높다는 평가다. 통상 영업직군이나 IB부서, 리서치센터는 계약직이 많은 데다 성과평가에 익숙해 임금제도 변화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과거부터 성과에 따른 보상체계가 자리 잡아 성과가 저조할 경우 타사로 이직하는 사례도 일반적이다.
하지만 정규직이 많은 백오피스 및 지점 직원들은 상황이 다르다. 개인별, 부서별로 성과평가 기준이 명확하게 잡히기 어려운 데다 무엇보다 가장 큰 우려는 저성과자를 솎아내 연말 구조조정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투자증권은 이전부터 구조조정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다”라며 “호봉제를 유지한다면 기본급은 주는 구조인데, 연봉제로 간다면 급여가 당장 깎일 수도 있는 터라 지점에 오래 있던 직원들이나 관리직을 해고하려는 수순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증권사들은 경기침체, 금리상승, 고환율 등의 각종 대외변수로 실적 감소에 직면해있다. 코로나 시기 유동성에 힘입은 주식시장 호황으로 역대급 수수료 수익을 올렸지만 불과 몇 개월 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채권손실, 수수료수익 감소, IB 딜(거래) 감소 등으로 3분기 대형 증권사 순이익은 절반 이상 감소했다. 증권사로서는 판매관리비나 인건비 등을 줄여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증권사들이 주식 수수료, IB 부서, 채권 등 부서 별로 실적이 많이 빠지고 있어 비용 절감을 위한 내부적인 고민이 많을 것”이라며 “디지털 전환에 따른 영업점 통합이나 영업직원 감축 등 코로나 시기로 미뤄졌던 일부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는 곳도 있다”라고 말했다.
성과평가 기준을 어떻게 매길지를 두고서도 논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전환되면 관리직군이나 영업점 직원들도 성과에 따라 임금폭 차등이 이전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가령 현재는 개인 고과에 따라 성과급만 차등 지급을 한다면, 이제는 기본급에도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연차에 따라 자동적으로 급여가 오르는 개념의 호봉제를 도입하는 증권사는 현재 많지는 않다.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정도다. 다만 증권사 전반적으로 IB부서나 영업직을 제외하고서는 개인성과 평가가 전체 임금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편이다. 하나증권은 개인 고과평가가 승진에 반영되는 정도고, KB증권은 성과급 지급 기준이 개인이 아닌 회사 전체 실적에 따라 좌우된다.
신한투자증권 역시 관리직군의 경우 이론상으로 성과평가를 기반으로 승진이 결정되지만 실질적으로 전체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크지 않다. 매년 승진하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임금제도 변화와 관련해서는) 회사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없고 고용법상 고용노동부가 정한 양식에 따라 동의를 하는 직원들만 (동의서를)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이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임금체계 전환을 반대하는 여론이 커지면 중단이 될 수 있다”라며 “(바뀐 임금체계가 적용되더라도) 현재도 성과평가 제도는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