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위 가상자산 거래소 FTX 파산 신청
FTX 관계사 알라메다, 대차대조표 부실 드러나
FTX 코인런 불붙인 바이낸스, 하루만에 인수 철회
세콰이아캐피탈, FTX 투자지분 '0달러' 처리…소뱅·블랙록도 투자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세계 3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FTX가 파산 신청을 했다. 가상자산 시장은 말그대로 대폭락했다. 가상자산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미국과 중국 간 코인 전쟁의 성격을 띤다는 얘기도 나온다. 중국계 거래소인 바이낸스와 경쟁구도였던 미국계 거래소 FTX가 사실상 ‘항복’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FTX 파산 여파가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확대될 조짐도 보인다. 코인판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불리며 가상자산 업계뿐 아니라 전통적인 투자자들에까지 파산 리스크가 번지고 있다.
세계 3위 거래소 FTX는 어떻게 몰락했나
세계 3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FTX의 위기는 2일 코인데스크의 보도에서 시작됐다. 코인데스크는 FTX의 비공개 재무 문서를 분석해 FTX 관계사인 알라메다 리서치가 FTT(FTX 발행 토큰)에 과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알라메다의 자산 146억달러 중 36억6000만 달러가 FTT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FTT 담보자산(21억6000만달러)과 락업이 해제되지 않은 물량(2억9200만달러)을 포함하면 58억달러의 FTT가 알라메다 자산으로 집계됐다. 이는 총 발행량의 80%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FTX가 FTT를 발행하면 알라메다가 매입해 가격을 올리면서 몸집을 불려온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암호화폐를 담보로 잡고 암호화폐를 대출해주는 ‘폰지사기’식으로 몸집을 불렸다 파산한 셀시어스가 연상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FTX의 몰락에 불을 붙인 건 바이낸스였다. 7일(한국시간) 자오창펑 바이낸스 CEO는 “우리가 가진 모든 FTT를 매각할 것”이라며 “루나 사태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한 리스크 관리”라고 밝혔다. 이후 FTX는 바이낸스에 FTT 개당 22달러에 매수하겠다며 가격방어에 나섰지만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데 실패해 ‘코인런’이 이어졌다. FTT 가격은 일주일 사이에 80%가량 폭락했고 이 여파로 비트코인 2년만에 최저수준인 1만900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시장의 혼란이 커지자 9일(한국시간) 자오창펑 CEO는 FTX 인수 의향을 표명했으나 바로 다음날 철회했다. 일반적으로 인수에는 최소 5개월 정도 시간이 걸리는 데 하루만에 손을 뗐다는 소식에 FTX의 숨겨진 부실이 큰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삼성증권은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는 추가 부실 규모는 80억달러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12일(한국시간) FTX는 결국 파산 신청을 하게 됐다. 회사 부채만 최대 66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가상자산 업계 사상 최대 규모다. 이에 비트코인은 24시간 전보다 4% 넘게 하락하며 출렁였다.
-
가상자산 시장의 미·중 코인전쟁…1차전은 중국 승?
특히 이번 사태는 가상자산 업계에서 미국과 중국 간 전쟁으로 볼 여지도 있어 관심이 모아졌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자오창펑 바이낸스 CEO와 샘 뱅크먼프리드 FTX CEO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중국계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경쟁사인 미국계 FTX의 부도를 촉발한 데다, 이로 인해 경제적인 이득까지 얻었다.
바이낸스는 경쟁사를 위기에 몰아넣고 인수도 철회하며 단숨에 경쟁사를 제거했다. 자오창펑 CEO는 FTT를 매도의사를 밝히며 “우리는 뒤에서 다른 업계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로비하는 사람들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트윗을 남겼다.
이는 FTX를 지칭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샘 뱅크먼프리드를 가리키는 말이다. 뱅크먼프리드는 2020년 조 바이든 대통령(당시 후보)의 개인 후원자 중 두번째로 많은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도 4000만달러(약 570억원)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금은 암호화폐 규제에 우호적인 민주당 캠프로 흘러갔다.
자오창펑은 중국계 캐나다인이다. 중국에서 태어나 12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2017년 중국 상하이에서 바이낸스를 창업했는데, 중국의 강화된 암호화폐 단속에 서류상 회사 주소는 조세회피처인 케이맨제도로 등록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나쁘지 않았지만 가상자산 규제 대응 문제로 틀어졌다. 뱅크먼프리드는 미국 의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당국 규제를 옹호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자오창펑은 미국의 조사에 반발하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월가에서는 이번 사태가 사실상 미중 코인 전쟁으로 보고 1차전은 중국의 승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력 경쟁자를 제거하며 가상자산 시장 내 바이낸스의 입지를 공고히 다져서다. 이번 사태 이후 바이낸스로 13억 달러가 유입되는 등 경제적인 이득도 챙겼다.
거래소에 이어 스테이블 코인까지 중국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미국 대표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USDT) 마저도 디페깅(스테이블 코인이 1달러에 유지되지 않는 상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11일 테더가 0.98달러까지 떨어지며 디페깅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기도 했다. 반면 중국 계열의 바이낸스 코인(BUSD)은 가치가 1달러에 유지해 중국 계열 자본이 미국을 이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의 신뢰도가 다시 한번 무너뜨렸다는 시각도 나온다. 두 거래소의 갈등에서 촉발된 트윗 하나로 거래소 하나가 붕괴될 수준으로 시장이 출렁인다면 투자자들이 무엇을 믿고 투자를 할 수 있냐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사도 FTX에 투자…코인發 금융시장 영향 올까
이번 사태는 가상자산 시장을 넘어 전체 금융시장으로 충격이 이어질 수 있다.
10일 미국의 벤처캐피탈(VC)인 세콰이아캐피탈은 FTX투자금 전액을 ‘0달러’로 전액 손실처리했다. 세콰이아캐피탈의 FTX 투자금은 2억1400만달러(약 2949억원)이다. FTX의 파산으로 투자액 전액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FTX는 지난 2년간 최소 69곳으로부터 14억2100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투자자들 가운데는 블랙록, 소프트뱅크 등 실리콘밸리의 유명 VC들이 포함됐다. 소프트뱅크의 추정 손실액은 약 1억 달러(1319억원)이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FTX의 기업가치는 320억달러(약 44조원)로 인정받았다. 지난해(4억2100만달러)보다 코인 가격이 급락한 올해(10억달러)에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할 만큼 FTX에 대한 신뢰도와 성장 기대가 컸다.
국내투자자 및 기업의 피해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모바일인덱스 등에 따르면 국내 FTX 이용자는 최소 1만명 이상이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개인들이 FTX 측 가상화폐에 투자한 금액은 23억원이다. 국내 게임엄체 컴투스는 자사 발행 코인인 'C2X'를 FTX를 통해 상장했다. 컴투프의 C2X 상당량이 FTX에 묶여 있을 거란 추측도 나온다.
외신들은 FTX 사태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교하며 글로벌 금융 시장까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월가 투자은행들이 부실담보로 위험을 퍼뜨리고 있었는지 알게 해준 사건이 리먼브라더스 사태였는데, FTX 사태도 가상화폐 시장의 부실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자오창펑 바이낸스 CEO는 "FTX의 파산신청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연상시킨다"며 "FTX의 위기가 암호화폐의 마지막 위기가 아니다. 다른 암호화폐 회사의 실패에 대한 뉴스가 곧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루나 사태로 인한 유동성 경색에 FTX가 구제금융을 지원했던 것과 현재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 대조되며 산업에 대한 시장 전반의 회의감 커지고 있어 VC와 펀드 등으로 리스크가 확산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