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는 전환가액 상향 규제 예외...내년 발행 증가 가능성
'기업ㆍ주관사ㆍ투자자' 모두 윈윈인 SPAC도 공모 급증 추세
"기업여신서 새 기회 생길 것" 대형사 발행어음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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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거래는 물론 발행시장과 부동산금융ㆍ인수합병(M&A) 시장까지 모두 얼어붙은 상황에서 국내 증권사들은 내년에 어떤 사업으로 돈을 벌어야 할까. 특히 최근 자금경색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투자금융(IB) 부문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인력 감축설ㆍ본부 통폐합설 등 흉흉한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선택과 집중'을 통한 내년 전략 수립도 한창이다.
증권사 전문가들은 내년에 2009~2011년과 비슷한 '불황형 IB'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금줄이 막힌 기업들이 공모 전환사채(CB)ㆍ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으로 기회를 엿보고, 대형 증권사들은 발행어음을 통한 기업여신을 늘릴 전망이다. 주식발행시장에서는 발행사ㆍ투자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설립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가에 따르면 최근 일부 대형증권사 영업담당(RM) 부서는 내년 공모 메자닌 시장의 확대를 전망하며 조직을 재정비하고 있다.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의 BW 발행 붐(boom)같은 큰 시장이 다시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임원급 관계자는 "기업공개(IPO)나 부동산금융 부서는 조직 축소와 인력 감축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채권 발행 쪽에서도 메자닌 관련 부서는 오히려 일거리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인력 충원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 같은 어려운 조달상황이 계속된다면 2009년 기아자동차 4000억 BW처럼 메자닌으로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서는 대기업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자본시장이 정상 기능하고 있을 경우, 기업 자금 조달의 첫 선택지는 회사채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금리 상승과 한국전력의 대규모 회사채 발행, 흥국생명 영구채 사태 등으로 인해 회사채 시장은 급격히 위축된 상황이다. 이런 경우 자금 조달 수요가 단기채 시장으로 급격히 몰린다. 이로 인해 단기채 조달 여건 역시 급속히 악화했다. 최근 신용등급 A1 기준 기업어음(CP) 91일물 금리가 연 5%를 돌파했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1월 이후 처음이다.
단기시장까지 교란되면 기업들은 다시 은행 문을 두드리게 된다. 실제로 3분기 말 기준 주요 시중 5대은행 기업대출 규모는 사상 최초로 7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말 대비 65조원, 10% 넘게 증가했다. 금리도 크게 높아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중 국내 예금은행의 기업 신규대출 가중평균금리는 4.66%로 한 달 동안 20bp(0.2%포인트), 연초 이후 1.52%포인트나 상승했다.
다만 은행 문턱이 높거나 담보로 맡길 자산이 없는 일부 대기업과 중소ㆍ벤처기업은 여기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대안으로 떠오르는 시장이 바로 메자닌 발행이다.
메자닌의 경우 채권은 사실상 원금 보전 정도의 역할을 하며, 실제 수익은 주식옵션을 통해 기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발행된 35건의 메자닌 중 25건의 채권 만기보장수익률(YTD) 3% 이하였고, 이 중 11건은 아예 금리가 '제로' 였다. 최근 중소기업 은행 대출 평균 금리가 5%를 훌쩍 넘는 점을 감안하면, 발행사 입장에선 이자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셈이다.
투자자들의 발길을 머뭇거리게 하는 가장 큰 난관인 '전환가액 상향조정 의무화' 규제는 공모 발행의 경우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최종 반영됐다. 공모에 한해 투자자들은 이전 같은 투자 매력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국내 양대 지수가 고점 대비 30% 이상 떨어진데다, 기준금리 인상 기조도 연내 일단락 될 것으로 예상되며 추가 하락 여지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채권으로 원금을 보장하며 주가가 오르더라도 전환가액이 따라 오르지 않는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분석이다.
이미 공모 메자닌에 투자 수요가 충분하다는 점은 어느정도 증명됐다. 지난 6월 HLB생명과학 400억원 규모 BW 청약에 4조1000억원의 수요가 몰린 것이다. 지난해 CG CGV가 발행한 3000억원 규모 CB 공모 땐 일반에 배정된 2113억원에 16조원에 달하는 청약이 들어왔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2009년 개인투자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사상 최초로 500억원 규모 CB와 BW 동시 공모해 성공한 LG이노텍은 정관상 메자닌 발행 한도까지 늘려 2013년 3000억 CB 조달에 나서기도 했다"며 "대기업 발행-개인투자자 인수가 중심이 되는 공모 메자닌 시장이 10년만에 다시 크게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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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팩(SPAC) 역시 전형적인 불황형 IB 상품이다. 공모를 통해 현금성 자산을 쌓아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상장시키고, 이를 추후 비상장 벤처기업 등 유망한 성장기업과 합병시켜 우회상장을 노리는 방식이다.
증시가 활황일 경우 성장기업은 직접 공모를 통한 직상장이 기업가치 평가에 유리하기 때문에 스팩을 선택할 이유가 적다. 다만 지금처럼 공모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은 상황에서 스팩은 확실한 상장 및 현금 확보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일감이 끊긴 증권사 입장에서도 스팩은 소중한 현금 창출처다. 100억~150억원 규모 일반적인 스팩의 경우, 주관 증권사가 인수수수료로 3억원(1억5000만원은 합병 후 후취)을 받게 된다. 2014년 금융당국이 1사 1스팩 원칙을 폐기하며, 증권사 입장에선 규모에 약간씩 차이가 있는 복수 스팩을 꾸준히 상장시키는 것이 대세가 됐다.
올해 11월까지 스팩 상장 수가 37건에 달하며 사상 최대였던 2015년에 육박하는 건 이런 까닭으로 분석된다.
투자자들도 원금 및 기본 예금 금리가 보장되며, 합병을 통해 추가 수익을 노릴 수 있는 스팩이 현 시점에서 투자하기에 나쁘지 않은 자산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수요예측을 진행한 IBKS스팩20호, KB스팩23호, 삼성스팩7호, 한국스팻11호는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이 평균 1100대 1에 달했다.
한 증권사 IPO 관계자는 "증시 호황일 땐 합병 성사 기대감으로 기존 상장 스팩의 주가가 출렁이는 경우가 많고, 불황일 땐 스팩 공모 그 자체가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며 "공모주펀드 등 국내 기관들이 지금 담을 게 없으니 스팩쪽으로 많이 쏠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증권사의 발행어음도 주목받고 있다. 기업여신 및 신용공여가 가능해, 자금 흐름이 경색된 시기에 일부 대안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발행어음의 주 운용처였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스(PF) 시장이 침체하며 증권사들 역시 운용처를 고심하는 상황이다.
발행 금액이 12조원에 육박하며 국내 증권사 중 최대 규모로 발행어음을 운용하고 있는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기업여신이 포함된 기업금융 부문 운용액이 다시 7조원을 넘어섰다. 다만 발행어음 양대 강자 중 한 곳인 미래에셋의 경우 올 3분기 중 기업여신 잔고를 2조3000억원에서 1조9000억원으로 줄이며 리스크 관리를 우선시하기도 했다.
다만 자금경색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한 증권사 금융 담당 연구원은 "최근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며 증권사 IB부문에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다"며 "대형증권사들이 자본력과 발행어음을 통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기업여신 부문을 확대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