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 기업의 이익체력 중시 기조…현금 마련 '과제'
주주환원·ESG 관련 정책엔 기대감 낮아져…"발목 잡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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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의 저금리·저물가 시대가 끝나자 기업들의 목표는 성장에서 생존으로 옮겨가고 있다. 치솟는 금리에 기업들은 자금 조달 비용 축소에 골머리를 앓고 있고 투자자들은 '이익체력' 같은 기업의 현금 창출 능력을 다시 중시하기 시작했다.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주요 키워드(keyword)로 떠올랐던 '주주환원정책'이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중요도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올해 하반기 들어 기업들의 경영전략은 '생존'에 초점이 맞춰졌다. 미국의 강력한 통화긴축 시그널에 국내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발언에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금리 인상 국면이 지속될 것이란 예상 하에 주식·채권의 가격은 동반 하락했고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400원선을 뚫고 올라가기도 했다.
1년만에 급변한 대내외 환경은 기업들로 하여금 한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자금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끌었다.
시장 경색 전, 기업들은 계열사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등을 통해 현금자산을 확보하거나 금리 부담이 적은 회사채를 발행해 운영자금을 충당해왔다. 그러나 증시 분위기가 침체되며 주식자본시장(ECM)을 통한 자금 조달은 녹록지 않아졌다. 가파른 금리 상승에 기업들은 상환기일이 곧 도래하는 회사채를 차환(발행 채권을 새로 발행된 채권으로 상환)하기보단 상환해 이자 부담을 줄이고 있다.
채권시장의 발작은 '계열사 지원 부담 확대'로 불이 옮겨 붙었다. 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문이 타격을 받고 있는데, 건설사를 자회사로 보유한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롯데건설 유동성 이슈를 해결하고 있는 롯데그룹이 대표적 사례다.
자금 조달 길이 막힌 기업들은 이자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은행 대출을 받아 필요한 운영자금을 충당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산업은행조차 내부적으로 신규 대출 승인을 자제하라는 분위기가 퍼지는 등 은행들은 대출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3분기 기준 32.9%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한국전력의 적자가 지속하는 등 연말 기준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13% 방어가 어려워진 것이 하나의 유인이 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기업들의 현금 확보가 더 중요해졌다는 얘기인데 반대로 배당이나 자사주매입 등 주주환원정책과 ESG 관련 계획에 대한 세간의 기대감은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금번 3분기 실적발표에서도 투자자들은 기업들의 현금 창출 능력에 중점을 두고 있음이 명확히 드러냈다. 소위 '이익 체력 검증대'에 가까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여느 때와 같이 기업들은 컨퍼런스콜에서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들이 선호할 만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해외 기관들이 중시하는 ESG 관련 계획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관련된 투자자들의 질문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실적비중이 높은 사업부문의 향후 수익 전망과, 이를 위한 구체적인 투자 계획에 집중됐다.
또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표에 따른 세액공제 혜택의 구체적 수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이 대상이었다. 그간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던 사업부문의 이익 체력 유지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짙어졌다. 일례로 한화솔루션은 그간 조(兆) 단위 투자를 이어온 '신재생에너지 부문'의 호실적 유지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다수 받았고, 현대차는 전기차 판매 증가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며 세간의 우려를 일축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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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환원정책과 ESG 계획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짙어졌다. 실제로 3분기 실적이 부진했던 롯데케미칼이 2024년까지 자사주 3000억원을 매입하겠다고 밝혔는데 재무안정성에 미칠 영향은 없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시장에선 기업들이 제시한 주주환원책의 기본적인 목적이 달성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배당은 기본적으로 주가 상승을 꾀하기 위함인데 최근 주가의 하방 압력이 큰 데다, 지금 같은 고금리 상황에선 배당수익률을 높이더라도 주가 상승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통상 배당급 지금을 통해 주가 상승을 촉발시킨 다음, 유상증자 등을 통해 시장으로부터 자금을 마련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또한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올해 중순까진 하락장이 이어지다 보니 한때 배당주가 상대적으로 선방은 했었다"라며 "그러나 지금은 예적금이나 우량채권의 금리가 5%를 넘긴 상태라 배당수익률이 오르더라도 소외되는 등 배당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상장한 지 얼마 안 된 기업이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 배당을 높여 주가를 높이는 것보단 수익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는 평가다.
2년 전 증시에 입성한 하이브는 3분기 실적발표에서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상장한 지 얼마 안 된 기업이 배당을 실시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진 않다"라며 "하이브의 주가가 많이 빠진 상태여서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보다는 BTS(방탄소년단)가 군대를 간 이후에도 수익이 지속적으로 창출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일전에 배당성향을 높이겠다고 공언한 기업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올초 SK하이닉스는 2024년까지 고정배당금을 주당 1000원에서 1200원으로 올리고 잉여현금흐름(FCF)의 5%를 더 얹어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당장 SK하이닉스의 펀더멘탈에 영향을 주진 않겠지만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라며 "SK하이닉스는 특히 SK스퀘어에 배당을 해야하는 상황이라 주주환원 정책을 지켜야 하는 압박이 클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KT&G처럼 정체성이 배당주인 기업들이나 한샘, 카카오페이 등 주식담보대출의 담보로 주식이 제공돼 주가 관리 필요성이 있는 기업들의 고민은 커질 전망이다.
필수불가결한 방향성으로 거론되던 'ESG'에 대한 관심도 한풀 꺾인 모습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통에너지의 가격이 급등하고 금융시장 변동성으로 인한 관련주 수익률이 부진해지면서, 투자부문에서의 반(反)ESG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해외 기관들은 ESG 경영 여부를 투자시 고려하는 상황이어서, 외인 수급 측면에서 소외 받지 않으려면 관리에 있어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다만 특정 기업이 신사업으로서 ESG 관련 분야를 택해 투자 등을 이어가며 선도해나가는 데 호평을 쏟아내던 것은 과거의 트렌드가 됐다는 지적이다.
한 대형 운용사 주식 운용역은 "ESG 경영은 더이상 플러스(+) 요인이 되진 않는 분위기다"라며 "세 영역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마이너스(-)인 요소가 되어 해외 기관들로부터 외면받게 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