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율·유가 추이, 드릴십 재매각에 우호적인 상황
2척째 매각 중…후순위 출자자 삼성重 수혜는 지켜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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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은 올해 상반기 악성재고 드릴십(Drillship·심해용 원유 시추선)을 사모펀드(PEF)에 팔았다.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최종 성과는 드릴십 재매각 결과에 달릴 전망이다. 환율이 오르며 용선료와 선박 가격 상승 효과가 났고, 유가도 드릴십이 필요한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향후 시장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 후순위 출자자인 삼성중공업에게까지 온기가 돌아갈지 예단하기는 이르다.
삼성중공업을 비롯한 대형 조선사들은 2013~2014년 고유가 시기에 드릴십 물량을 대거 계약했다. 이후 국제 유가가 내림세에 접어들면서 해상 유전의 채산성이 하락했고, 선박 발주처들은 인도를 거부하거나 파산했다. 매각 불발로 드릴십 재고를 떠안게 된 조선사들은 매년 막대한 유지비용을 쓰면서 이를 대손충당금에 반영했다. 선박을 빌려줄 곳도 마땅치 않았다.
올해 들어선 후판 등 원자재값 상승과 인력난에 따른 인건비 상승 압박으로 조선업계의 경영 부담이 더 커졌다. 삼성중공업도 작년 1조원대 유상증자와 수주 선수금 유입 등으로 순차입금은 줄었다. 그러나 원가 부담으로 수익성 개선이 늦어지는 상황이라 추가로 재무구조 개선에 나설 필요성이 있었다.
지난 5월 삼성중공업은 드릴십 4척을 큐리어스파트너스가 결성한 PEF(이하 큐리어스PEF)에 1조4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인수자금은 삼성중공업과 선순위 투자자가 각각 5900억원과 1600억원을 출자하고 금융회사에서 3200억원을 차입해 마련했다. 회사 입장에선 악성 재고를 떨어내면서 45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굴지의 조선사도 정리하지 못해 애를 먹던 자산을 PEF에 매각하는 거래다 보니 우려섞인 시선도 있었다. 삼성중공업은 전체 투자금 절반 이상을 댔는데 사실상 드릴십 담보대출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드릴십 수요가 없어 매각이 잘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손실이 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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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우려에도 불구 큐리어스 PEF는 이익을 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올랐다. 조선업은 대부분의 거래가 달러화로 이뤄지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상승의 수혜를 보기도 한다. 큐리어스PEF가 드릴십을 인수하며 원·달러 환율 1185원을 적용했는데, 지금은 1300원 중반대를 오가고 있다. 척당 인수가격(약 2억1000만달러) 그대로 팔아도 환율만으로 15% 가까운 이익을 내게 된다.
최근 유가 상황도 드릴십을 매각하기에 나쁘지 않다. 올해 국제 유가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원유 금수조치 등으로 급등했다. 최근엔 유가가 하락하고 있지만 드릴십을 멈출 정도는 아니다. 업계에선 보통 유가가 60~70달러는 돼야 드릴십의 경제성이 있다고 보는데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당장의 유가나 수요를 차치하고라도 에너지 업계의 시추 장비,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어 증산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경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드릴십 용선료도 상승세다. 큐리어스PEF가 드릴십을 매입할 당시 용선료는 일 18만~20만달러였지만 최근엔 35만~40만달러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올라서 가만히 있어도 이익을 낼 수 있는 구간에 진입했다"며 "컨테이너선과 달리 드릴십은 요즘에도 수요가 견고해 하루 용선료도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큐리어스PEF가 인수한 드릴십 4척 중 1척은 2021년말 조건부 매매계약이 체결된 상태고 내년 1분기 중 인도할 예정이다. 또 다른 1척은 이르면 다음달 중 매각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2척이 팔리면 금융사에서 빌린 자금과 PEF 선순위 출자금까지 먼저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후순위 출자자인 삼성중공업에까지 수익 온기가 돌아가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큐리어스PEF는 매각 가능성이 커진 2척 외에 남은 2척도 꾸준히 원매자를 물색하고 있다. 우선 차입금과 선순위 출자자에 대한 회수 고민을 덜긴 했지만, 곧바로 비싼 가격을 들이밀 곳이 나타날지는 의문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및 에너지 수요 감소 우려, 중국 제로 코로나 정책 고수 등도 향후 매각에 영향을 미칠 중요 변수다.
삼성중공업이 애초에 설정한 매각 대금과 출자금이 회수하기에 적정한 수준이었느냐도 이후 매각 과정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회사는 전체 매각금의 절반 이상을 후순위로 댔다. 매각 가격은 당시 드릴십의 예상 잔존가와 비슷한 수준이긴 하지만, PEF 구조를 활용한 만큼 나머지 2척이 비싸게 팔리지 않거나 매각이 지연되는 이상 손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악성재고 고민을 잠시 PEF에 넘겨놨을 뿐 최종 성과에 대한 고민은 그대로 남는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삼성중공업 입장에선 상반기 매각 거래가 사실상 담보 대출성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재매각 성과가 특히 중요하다"며 "환율과 유가 덕에 투자 수익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회수 순위가 낮은 삼성중공업이 최종적으로 받아들게 될 실질적인 수익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