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운용사는 韓시장 샅샅이 훑는데…국내 운용업계는 “내년도 막막”
입력 2022.12.06 07:00
    취재노트
    "한국 딜 다 검토해라" 분주한 해외 운용사들
    "이럴땐 가만히" 국내사 '올스톱'…전략 고민
    '롱텀' 투자 힘든 국내사…"LP 눈치보기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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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금 외국계 운용사, 기관들은 한국 시장을 눈에 불을 켜고 보고 있습니다. 딜(deal) 검토 제안서가 계속 들어옵니다”

      최근 운용업계 관계자들은 국내에 투자하는 자산운용사, 사모펀드 운용사 등을 포함한 외국계 운용사들의 분위기가 국내사들과 ‘정반대’라고 말한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외사들도 신규 투자는 쉽지 않지만, 다가올 ‘기회’를 잡기 위해 더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계 운용사들은 글로벌 본사 등 윗선에서 “한국에서 들어갈 만한 딜을 다 검토하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있다는 전언이다. “지금 검토해야 그중에 정말 좋은걸 찾을 수 있고, 미리 검토해야 가격이 더 떨어지거나, 금리 방향이 바뀌는 등의 기회가 왔을 때 바로 치고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모 글로벌 운용사는 국내에서 ‘동시다발’로 딜을 할 기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업계에 돌고 있다. 

      국내 부동산 시장이 침체한 사이 외국계 부동산 투자사들은 물밑작업이 한창이다. 물류센터에 대한 수요도 아직 남아 있고, 데이터센터는 입지 조건이 까다롭지만 여전히 ‘할수만 있다면 한다’는 분위기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스마트 팜(farm), 시니어 케어와 관련된 부동산, 글로벌 OTT에 유통할 콘텐츠를 제작하는 스튜디오 등 '미래'에 베팅할 고민에 분주하다. 

      분주한 외사들과 달리 국내는 올스톱 분위기가 감지된다. “안 좋을 때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 “이럴 때 사람 만나야 한다” “혼자 놀기보단 같이 놀아야 덜 불안하다”는 등 불황기의 격언(?)들이 오고 간다.

      지금 움직이니 않으니 내년 먹거리에 대해 언급할 것도 없다. 곧 새해가 오면 투자자들의 자금 곳간이 새로 열리고 시장 여건도 조금은 나아질 것으로 보지만 뚜렷한 테마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까지는 양호한 시장에 힘입어 비교적 손쉽게 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당장 3개월 이후도 예측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 국내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지금은 전략 수정을 하지 않고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운용사들이 한동안 시장이 좋을 때는 IPO(기업공개), 메자닌 등으로 손쉽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왔는데 지금 금리상황에선 주식, 채권, 부동산 어디 하나 쉬운 시장이 없으니 고민이 많다.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없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국내사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 오히려 ‘먹을 기회’가 많다는 시각이 있다. 기업들은 최근 자금 조달을 위해 CB(전환사채)를 발행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는데, 기초체력이 좋고 안정적인 캐쉬플로우를 내는 기업이라면 자금을 넣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의지가 있어도 투자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위기를 기회로’ 투자는 현실적인 벽이 높다. 개인도 기관도 여전히 지갑을 닫은 채 시장을 관망하고 있다. 새 투자 전략을 세우기 어려운데 기존에 하던대로만 하자니 미래가 없어 운용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여러 여건이 대규모 펀드 자금을 갖고 있는 외국계 대형사들과 비교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른 운용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좋지 않을 때 과감히 베팅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 보니 5~10년 길게 보고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지금 들어가기에 괜찮은 투자 기회들이 보이지만 자금 조달이 안되니 마땅한 방도도 없다”고 말했다. 

      투자 업계에선 국내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운용사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용 및 투자 철학’을 가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선 LP 등 ‘돈줄’을 쥐고 있는 기관투자가들의 간섭 수위가 너무 높다. 이렇다보니 ‘전문가’를 존중하는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기관들이 사사건건 간섭을 하기 때문에 운용사들이 각자의 전문적인 판단과 운용 철학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들의 구미에 맞는 물건을 찾아내고, 제시된 숫자를 ‘해치우는’ 식의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자금 모집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돼야 하니 운용사들의 최우선 목표는 기관들의 구미를 맞추는 것이 됐다”며 “IMF 때도, 금융위기 때도 외국 자본이 빠르게 치고 들어왔지만 한국 시장은 과거에서 '준비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교훈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