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20%에도 돈 빌리는 기업들
위기의 중소형 건설사만의 이야기?
대기업 계열 초대형 건설사들도 앞다둬 대출
더 큰 담보에 금융자문, 주선수수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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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에서 허용하는 가장 높은 금리는 연간 20%이다.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하는 이자 계약은 '무효' 그리고 이를 초과하면 '불법'으로 간주한다.
1980~1990년대 초반에서 볼 수 있었던 두 자릿수 금리, 이제는 사채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연 20%대의 대출 이자가 제도권 금융기관들 사이에서도 현실화했다. 돈을 빌리는 주체가 한계에 봉착한 기업들만은 아니다. 하반기부터 시중은행들이 돈 줄을 꽉 죄기 시작하자 초고금리를 감수하고도 당장 급한불을 끄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넘치기 시작했다.
가장 급한 곳은 역시 건설사들이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한 회사채 시장의 급격한 경색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직접적인 여파를 미쳤고 시공사와 시행사들의 돈 줄이 갑자기 마르기 시작했다. 시중은행들은 신규 부동산 대출은 물론 기존 여신을 빠르게 회수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채권 만기는 돌아왔는데 차환이 안되는 기업들, 어음을 막거나 단기사채를 갚아야 하는 등 급전이 필요한 기업들은 당장 돈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 연출됐다.
사실 급한 기업들에 돈이 흘러 들어가지 않을 뿐 자본시장에 유동성이 부족하진 않다. 오히려 기준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상황 속에서 금융기관들은 더 높은 예대마진을 기대할 수 있게 됐고, 일시적인 자금 경색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더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서라도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현재 한 가지 변수라면 정권 교체 이후 더욱 깐깐해진 금융당국,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규제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여수신 금리의 상승을 통제하고 매주 추이를 보고를 하도록 했다.
금리는 빠르게 상승하고, 고금리를 감수할 대출 수요는 많지만 금융기관들은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껏 금리를 높여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사실 대출 금리는 기업의 신용도와 자산, 담보 제공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최근 기업들이 M&A 과정에서 일으키는 인수금융의 평균 금리는 9% 남짓(지난해 7% 이하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최근의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들의 표면적인 조달 금리는 약 7~10% 수준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국내 도급 순위 10위권 내 대형 건설회사는 약 8%의 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바 있다.
실제로 이면을 들여다보면 7%대의 금리만으로 성사되는 계약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표면적으론 7~8% 이자로 제공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보다 더 많은 담보를 요구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란 설명이다.
여기에 시중은행들 보다는 비교적 자유로운 금융기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일부 증권사 또는 외국계IB를 포함한 금융기관들은 (금융)자문료, (인수단)주선 수수료를 추가로 받기도 한다. 자문료와 수수료의 규모를 합하면 금리와 유사하거나 더 높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기업이 100억원의 자금을 급하게 빌릴 때 연 10%의 이자를 내는 조건의 계약에 금융자문료와 주선수수료를 빌린 돈의 약 10%로 지불하는 식이다. 이자는 후불, 자문료와 수수료는 선불(선취)하는 경우도 흔하다. 즉 100억원을 빌려 20억원을 이자와 수수료로 지불하는 격이다. 최근 국내 대기업 계열 건설회사 한 곳 또한 자금 융통을 위해 빌린 금액의 총 18%를 비용으로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이 급한 기업들이 법정 최고 금리를 주면서 더 큰 담보를 요구하는 금융기관을 찾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채 시장에서 돈을 빌릴 경우 단번에 한계기업이란 꼬리표가 붙는다. 소문은 빠르고 돈은 더 빌리기 어려워 진다. 혼탁해진 금융시장, 그 속에서 기회를 노리는 기관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