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로' 인적분할, 물적분할과 동일한 효과에 오너 지배력도 강화
자사주 마법에 현물출자 양도차익 과세 이연까지
"일반 주주보단 오너에 유리한 방안" 불만에
인적분할 발표 기업들 주가 뚝뚝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물적분할 방식을 추진하기 어려워지면서 인적분할이 그 대안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올해 발표한 기업 구조조정 방안의 상당수는 '인적분할'이 중심이었는데 물적분할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주주권을 보호할 수 있단 장점이 점점 퇴색하고 있단 평가를 받는다. 내년 초부턴 지배구조 개편을 계획한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이어지는데 주주권 보호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선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일반주주 권익 제고방안' 내용이 담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의결됐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한 해당 법안에는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핵심이다.
주식의 매수청구가격은 주주와 기업 간의 협의로 이뤄지는데 협의에 실패할 경우 법원에서 매수청구가격을 정하도록 명시했다.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야당에선 매수청구가격을 시장 가치가 아닌 자산가치와 수익가치의 가중산술평균으로 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기업이 인위적으로 주가를 누를 수 없는 구조를 법제화 함으로써 구조조정 과정에 주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게끔 하겠단 의도이다.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과거의 사례를 비쳐봤을 때 물적분할 이후 모회사의 주식가치가 크게 하락하는 경우가 상당수 발생했다. 결국 기업은 다수의 주주가 반대할 수 있는 물적분할을 추진할 경우 확실한 주주보호장치를 마련하거나 이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르게 됐다. 물적분할과 재상장을 통한 자금조달, 지배구조 개편은 향후 추진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물적분할 대신 인적분할을 발표한 기업들이 급증했다. 지난해 하반기엔 한 곳이던 인적분할 추진 기업은 올해 들어 한화솔루션, 현대백화점, 현대그린푸드, OCI, 이수화학, 코오롱글로벌, 대한제강, 아주산업, AJ네트웍스, 동국제강 등 10곳에 달했다.
인적분할은 물적분할과 비교해 주주들에겐 상당한 호재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사실이다. 주주들이 동일한 비율대로 분할 회사의 주식을 나눠 갖는 탓에 지분가치의 희석 논란이 적었다. 그러나 최근 인적분할을 추진하는 기업들의 경우엔 물적분할의 논란을 피하면서, 사실상 물적분할과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고 동시에 모회사에 대한 대주주의 지분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들이 등장하면서 주주들의 불만도 상당히 커지고 있다.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에도 신주를 배정하면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일명 '자사주의 마법'은 기업이 인적분할을 활용하는 주요한 원인, 반대로 일반 주주들의 지분은 희석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단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오너의 지배력 강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년 2월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인적분할을 확정하는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는 분할 후 공개매수방식의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통해 각각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한다. 주식교환을 위한 공개매수 과정에서 대주주가 자회사가 될 회사의 지분을 내놓는 대신 모회사의 지분을 취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오너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단 평가를 받는다.
OCI, 동국제강 등 내년 인적분할 후 지주회사 체제를 완성하는 기업들도 이와 형태가 유사하다.
OCI는 화학 사업을 인적 분할해 신설하고, 존속법인을 OCI홀딩스로 사명을 바꾸며 지주사 전환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현물출자 공개매수를 통해 OCI홀딩스가 OCI 주식을 대거 취득할 계획인데 이우현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의 모회사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남아있다. 사업적으로 굳이 사업을 나눠야 하는 명분이 부족하단 지적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동국제강은 철강 사업을 열연사업과 냉연사업을 쪼개고, 존속법인인 동국홀딩스는 지주회사가 된다. 역시 분할 이후 공개 매수 방식,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추진한다. 오너일가가 신설법인 지분을 내놓고 지주회사 지분을 취득하는 방안은 매우 유력하다. 동국제강의 최대주주는 장세주 회장(14%)과 장세욱 부회장(9.4%) 등이다.
이들 모두 결론적으론 물적분할과 유사한 형태의 지배구조를 갖추게 된다. 오너일가가 여전히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지주회사의 대주주가 되고, 그 아래 사업회사가 나열되는 방식이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물적분할은 최초 지주회사의 100%의 자회사가 된다는 점이지만, 사실 재상장 과정을 거치면 지분이 분산하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
각 기업들이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르는 배경으로는 법인세와 주식을 현물출자할 때 발생하는 양도차익 과세 이연 혜택이 내년까지로 얼마 남지 않은 점이 꼽히기도 한다. 결국 지배주주는 큰 자금을 들이지 않으면서 지주회사 체체로 전환할 수 있고, 현물출자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인적분할 사례(193건)에서 지배주주의 존속회사 지분율이 15%포인트(p) 더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배주주에겐 상당한 이익이지만, 일반 주주들에겐 큰 호재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탓에 인적분할을 추진한 상당수 기업들의 주가는 발표 이후 큰 폭으로 하락했다. OCI와 동국제강, AJ네트웍스, 이수화학 등은 발표일과 비교해 약 10~20%의 주가 하락이 발생했다.
투자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 물적분할 이슈에 가려져 인적분할이 상당히 주주친화적인 방안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들어 투자자들은 이를 호재로 받아들이진 않는 분위기"라며 "(인적분할을 활용한) 구조개편 과정에서 명확한 주주환원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업의 분할은 주주총회의 특별결의 사안으로 주주들의 3분의 2이상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내년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갖고 있는 현대백화점(2월10일), OCI(3월22일), 동국제강(5월17일) 등은 최근 주주권 강화 목소리를 내며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예고한 국민연금의 지분율(현대백화점 12%, OCI 10%, 동국제강 7%)이 높은 편이다. 일부 기업은 주가 하락에 의한 주주들의 불만이 크기 때문에 주총이 끝날 때까지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란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