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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강한 기시감이다. 20여년 전에도, 또 10여년 전에도 시장의 겨울은 매서웠다. 올 겨울도 춥다. 강력한 레버리지장(場) 이후 맞닿뜨려야 하는 리세션(recession) 사이클은 그만큼 강력하다.
과거와 다른 점은 '정도'의 차이다. 20여년 전(동아시아 금융위기)에는 나라 전체가 무너질 뻔 했고, 10여년 전(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는 많은 금융사와 건설사들이 사라졌다. 경험에서 배워서인지 대기업과 은행의 평균 체력은 꽤 튼튼해졌고, 올해는 위기에 빠진 주체들이 이전보단 줄어든 게 사실이다.
또 다른 점은 중간에 낀 '전염병'의 변수다. 코로나는 꺼져야 할 거품을 2년간 유예시켰다. 경기 부양이 중요해진 각국의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막대한 유동성 공급을 풀어 그 거품을 더 키워야 했다.
리세션이 오기 전까진 모든 것들이 빚으로 지어졌다. 아파트들이 그렇고, 공장들이 그렇다. 최근 코인시장, 메타버스 등등 가상의 공간들도 실상 레버리지도 지어진 것들이다. 레버리지의 규모와 사용 주체들이 더 다양해질수록 리세션의 충격 여파는 더 커지게 된다.
국내외 평가기관들은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충분히 관리가 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얘기한다.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강하고, 시중은행들의 재무건전성 역시 우수해 과거와 같은 금융기관의 올스톱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시장의 '예민함'은 더 강해졌다. 코로나 기간 시장의 막대한 유동성을 1금융권에서만 소화를 하지 못하면서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주요 주체들이 더 다양해지고 건전성 역시 더 열위해졌다. 금융기법이 발전할수록 돈을 주고 받는 이들의 상관 관계는 더 밀접해졌다. 레고랜드PF 사태, 흥국생명 콜옵션 사태처럼 '작은' 이슈에도 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억지로 터지지 않게 막고는 있지만 '살얼음판 같다'고, '시장의 도미노 개수는 많아지고 길이는 길어진다'고 얘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분간 '현금이 왕(Cash is king)'인 시대는 이어질 것이다. 충분한 자본을 갖고 있는 이들은 리세션 기간 동안 새로운 기회를 찾고 투자를 하면서 그 다음 레버리지장을 준비하려고 한다. 반대로 이미 레버리지를 많이 일으킨 곳들은 그 효과는 충분히 누리지 못한 채 레버리지를 다시 줄여야 한다. 모두 경험을 해봤듯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자칫 고통만 느끼다 영영 사라지는 곳들도 목도한 바 있다.
경험에 비춰보면 리세션 과정에서 '정치'에 뭘 기대하긴 어렵다. 그들은 너무 모르고, 너무 관심이 없다. 긴축은 '표(票)'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결국 각 기업, 가계가 알아서 빚을 줄일 수 있을만큼 줄여야 한다. 소비침체와 기업의 실적 악화, 가계소득 감소로 악순환이 이어지겠지만 이 역시 경험을 해본 것들이고 피할 수 없다는 걸 모두 안다.
"채권, 대출 등과 같이 빚으로 인한 거품이 거의 언제나 더 규모가 크며 경제 전체에 더 큰 위협을 가한다. 역사를 살펴봐도 빚에 의한 자산 거품이 꺼질 때 경제 전체가 주저않은 사례는 많았다"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中
2023년은 각자가 스스로 키운 거품을 터뜨리는 데 매진해야 할 한 해가 될 것이다. 누군가가 강제적으로 하는 것보단 이게 그나마 덜 고통스럽다.
입력 2022.12.30 06:59
Invest Column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2년 12월 2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