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국민연금 ‘부적절’ 발표…"상당히 이례적"
지분 8% 보유한 현대차그룹
KT 백기사? 대주주 국민연금와 대립각이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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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모 케이티(KT) 대표이사는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단독 추대됐고,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통상적으로 주주총회 직전까지 의결권 향방에 대해선 함구하던 국민연금의 이례적인 명확한 의사 표현으로 주주총회까지 구 대표이사의 연임 여부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됐다.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가 기정 사실화한 상황에서 지난해 대주주로 올라선 현대차그룹의 표심이 구 대표의 연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지배구조개편을 비롯해 닥쳐올 현안에서 국민연금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한 현대차그룹의 셈법도 복잡해 질 것이란 평가다.
KT 이사회는 지난달 28일 구현모 대표이사를 올해 정기주총에서 추천할 최고경영자(CEO) 후보로 선정했다. 같은 날 국민연금은 "(지난 27일 취임한 서원주 CIO가 밝힌)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며 "앞으로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책임활동 이행과정에서 이러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새로운 CIO가 선임한지 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KT의 이사회가 끝난 직후 나온 국민연금의 이례적인 입장 표명은 KT가 다른 대안을 내놓지 않을 경우 사실상 반대표를 행사하겠단 의지로 해석된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개편, 대표이사 선임, 경영권 분쟁 등 포트폴리오 기업의이슈에서 국민연금이 즉각적으로 의사를 표명한 전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새 CIO의 의지가 반영된 비교적 명확한 메시지이기 때문에 사실상 반대표를 행사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KT는 국민연금의 발표에 앞서 "KT지배구조위원회는 검증된 13명의 사내 후보자에 대한 대표이사 적격 여부를 면밀히 검토해 심사 대상자들을 선정했고, KT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가 총 7차례의 심사 과정을 거쳐 구현모 대표를 차기 대표이사 최종 후보자로 확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KT의 주주는 현재 ▲국민연금 10.4% ▲현대차그룹 7.8%(현대차 4.7%, 현대모비스 3.1%) ▲신한은행 5.6% ▲소액주주 57.3%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 주식 가운데 170여곳의 기관투자가의 지분율은 약 37.3%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국민연금이다. 이사의 선임은 주주의 절반 이상이 동의해야하는 일반 결의 사안이다.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만으론 구 대표의 연임 안건이 부결할 것으로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기관투자가들의 반대표 행사가 이어질 경우엔 상황이 다르다. 실제로 지난해(2022년) 주주총회에선 사내이사 재선임을 추진하던 박종욱 당시 KT각자대표가 낙마할 당시 국민연금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사학연금,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BCI),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 등 기관투자가들도 과거 사내이사, 감사 선임 등에 반대표를 행사한 전례가 있다.
KT 이사회는 구 대표이사의 사법리스크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사회적책임투자(ESG) 기조를 강화하고 있는 기관투자가들의 판단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사실 다가올 주주총회에선 현대차그룹의 표결 방향이 가장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합산 지분율은 약 8%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KT와 자사주 교환을 통해 대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주식스왑의 과정에서 KT는 의결권이 없던 자사주를 활용해 우군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현대차 또한 KT 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향후 진행할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 KT의 의결권에 힘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국민연금은 현대차(7.6%), 현대모비스(9.3%)를 보유한 대주주로서 향후 주총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초반부터 강하게 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새 CIO와 일찌감치 대립각을 세우는 것에 대한 부담도 상당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