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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도 돈이 돌지 않을 땐 '낙수효과'를 기대한다. 위에서 누군가가 물꼬만 트면 그 돈들이 알아서 밑으로 흘러 내려가면서 경색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연초 회사채 시장에 그런 분위기가 돌고는 있다. 작년말 단기금융시장의 경색이 조금은 풀렸고, 연초 수요예측엔 많은 돈이 몰렸다. 동시에 이 '착시효과'에 대한 경계심도 만만치 않다.
"시장에 돈이 없는 건 아니다. 그 돈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뿐이다"
1월 첫째주부터 재개된 회사채 수요예측은 이 얘길 증명이나 하듯 뜨거웠다. 말 그대로 '뭉칫돈'들이 몰렸다. 지난해 11월에 일찍이 북클로징이 된 탓도 있고, 또 매년 연초 효과도 있다. 무엇보다 시장 최강자들인 KT와 포스코의 등장이 주효했다.
지난 4일, KT의 회사채 1500억원 모집엔 2조8000억원이 모였다. 2012년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이 도입된 이후 사상 최대치라는 얘기들이 나왔다. 하루만인 5일엔 이 기록이 깨졌다. 포스코는 3500억원어치의 회사채 발행을 목표로 잡았는데 3조9700억원의 '사자' 주문이 들어왔다.
기관투자가들이 금리를 낮춰 적극적으로 주문을 내면서 두 기업의 회사채 발행금리는 시장을 왜곡할 정도로 낮게 잡혔다. 인기에 보답하고자 KT는 3000억원, 포스코는 7000억원으로 증액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최고 신용등급 AAA를 보유한 KT, 그리고 비록 등급전망은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됐지만 AA+의 초우량기업인 포스코. 시장 내 '갑(甲)'으로 불리는 기업들이기에 수요예측 결과는 1분기 발행시장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분명 시장의 불확실성은 가득 차 있지만 우량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것은 확인됐다. 나머지 뭉칫돈들이 그 밑의 기업들로 흘러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실제로 AA의 이마트와 연합자산관리 수요예측에도 예상보다 많은 돈들이 쌓였다.
한켠에선 경계의 시선은 남아있다. 신용스프레드의 하락 속도가 예상보다 너무 빠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에서 단기금융시장 안정에 힘을 쓰면서 전반적으로 연초 시장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고, 기관들의 우량채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뭔가 '찝찝하다'는 분위기다.
부동산발(發) 단기금융시장의 차환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게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주택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 발생했던 문제들이 이젠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물류센터 등 비주택 PF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크고 작은 폭탄들이 있어 언제든 시장이 다시 얼어붙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들이 저변에 깔려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거다.
또 시장의 그 많은 돈은 '안전자산'만 쳐다보고 있다. 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져 A급 이하의 비우량채에는 온기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는 상투적이라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 AA급 이상의 기업들의 경쟁 상대는 공기업이나 은행들이다. 뛰는 리그 자체가 다르다. 낙수효과는커녕 크레딧 시장의 돈은 1부 리그 안에서만 돌 가능성이 농후하다. 산업 내 대장주가 아니거나 확실한 뒷배가 없는 기업들엔 남 얘기일뿐이다.
금리 인상 변수라는 불확실성이 사라지지 않다보니 시장에서 전망하는 '상고하저'도 단언하긴 어렵다. 매년초 내놓는 전망이 큰 의미가 없다는 건 다들 체감하는 중이다. 확실한 건 설 명절 전에 발행 계획을 잡은 기업들은 한숨을 돌렸다는 거 정도다.
입력 2023.01.09 07:00
취재노트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3년 01월 06일 10:43 게재